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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까지 쫄깃쫄깃 맛난 색입니다.
 빛깔까지 쫄깃쫄깃 맛난 색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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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몰래 훔쳐보고, 들키지 않게 엿듣는다는 건 역시 재밌습니다. 신행 첫날밤을 치르는 큰누이의 신방을 손가락에 침 묻혀가며 뚫은 창호지 구멍으로 훔쳐보던 어른들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고, 짚단 너머에서 속삭이던 처녀총각의 속삭임을 엿듣던 추억이 재밌습니다.

이유 없이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있고, 두근거리던 가슴을 잠재우지 못해 훅하고 거친 숨소리로 쏟아낼 때도 있지만 몰래 훔쳐보고, 들키지 않게 엿듣는다는 건 손가락이 오므라들고, 가슴이 방망이질을 할 만큼 재밌습니다.

포도송이 같은 송알송알 맺힌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장마가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햇살이 잠깐 비춘 틈새를 놓치지 않고 실개천으로 나가 엿듣고 훔쳐볼 것을 찾아 서성입니다. 뭔가 빨간 덩어리가 눈에 띕니다. 고양이 걸음으로 숨소리까지 죽이며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가지만 알 수가 없습니다.

우렁이알
 우렁이알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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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도 매달려 있습니다.
 바위에도 매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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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송이 같은 너, 정체가 뭐냐?
 포도송이 같은 너, 정체가 뭐냐?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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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알
 우렁이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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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송알송알 열매 맺은 작은 포도송이 같고, 어떻게 보면 알알이 영근 오미자 송이 같습니다. 풀뿐 아니라 바위와 나무에도 맺혔습니다. 뭐지? 저게 뭐지? 연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식과 기억에 물음표를 던져 보지만 언뜻 답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를 헤집듯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 까치발을 돋듯 가까스로 다가가 살펴보지만 도대체 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맴돌이를 하듯 빙빙 돌며 자리를 뜨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그거 우렁이 알인데'하며 누군가가 툭하고 답을 던져 줍니다. 

그러고 보니 실개천에서 서성이는 우렁이들이 보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지만 모성이 담긴 우렁이의 서성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깔까지 쫄깃쫄깃 한 우렁이 알

포도송이처럼 송알송알 맺혀있던 그것은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 된장에서 건져먹던, 그 쫄깃쫄깃했던 우렁이 알이라고 합니다. 모내기를 한 논에 직접 들어가 잡기도 했고, 가장 촌놈임을 자처하며 살아 왔지만 정작 우렁이 알을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우렁이알을 먹고 있는 거미
 우렁이알을 먹고 있는 거미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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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모성으로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렁이, 모성으로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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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다닐 때, 무릎까지 빠지는 무논을 헤집으며 잡아다 먹던 그 우렁이와 같은 종의 알인지 아니면 수입된 우렁이 종의 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렁이 알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다시금 들여다보며 입맛을 다시게 됩니다. 

한 발을 옮겨 다른 송이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등껍데기가 덜 영글어 아직은 연약해 보이는 작은 거미가 우렁이 알에 매달려 포도즙을 빨아먹듯 뜯어먹고 있습니다. 청력과 시력을 다 동원해 염탐해보지만 씹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거미가 빨간 알갱이를 뜯어먹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냥 지나치면 보이지 않을 생태계의 먹이사슬, 생존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현장입니다. 한참을 바라보다 허리를 펴고 눈을 돌리니 이런저런 곤충들이 즐비합니다.

여려 보이지만 영혼까지 맑을 것 같은 실잠자리
 여려 보이지만 영혼까지 맑을 것 같은 실잠자리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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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임에도 갈증이 나는지 물로 다가서는 곤충
 장마철임에도 갈증이 나는지 물로 다가서는 곤충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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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은 해바라기에 매달려 채밀을 하고, 또 다른 어떤 곤충은 장마철임에도 목이 마르는지 대롱에 맺힌 물방울로 다가가 빨대를 꽂았습니다. 여려 보이지만 영혼까지 맑은 것 같은 실잠자리는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훔쳐보고, 엿들은 것 솔직하게 고백

꿀꺽거리며 넘어가는 물소리가 들리고, 달콤한 꿀 냄새가 나는 가 했더니 채밀을 하던 벌이 찰칵거리는 셔터소리가 시끄럽다는 듯이 커다란 눈을 홱 부라리며 바라봅니다. 거미도 그랬고, 물을 먹던 곤충도 짜증을 내듯이 바라보더니 벌은 뭘 훔쳐보고 엿듣느냐며 화를 내듯이 더 노골적으로 부라리며 바라봅니다.

채밀 중인 벌
 채밀 중인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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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려보듯이 홱 하고 바라보는 벌
 째려보듯이 홱 하고 바라보는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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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듣고, 훔쳐보다 들키니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놀랬습니다. 그렇지만 난 시치미도 떼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거미와 곤충 그리고 벌이 알아들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나 니들 사는 게 궁금해 엿듣고 훔쳐봤어'하고 중얼거리며 훔쳐보고 엿들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솔직하게 고백을 하였으니 메모리를 감출일도, 카메라를 바꿀 일도 없을듯합니다. 정직이 최선의 정치라고 했습니다. 감춘다고 해서 감춰지지 않는 것이 진실인데 온갖 의혹을 오이비락으로 덮으려고 하는 인간사의 행태가 측은해 보일 뿐입니다.  

채밀을 하는 벌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작금의 의혹에 대해 두 눈 부라리며 '홱' 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우렁이알, #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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