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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만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

 

 

미조만과 미조항은 한국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미조 해안도로를 따라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29호)이 펼쳐져 있고, 그 끝에 미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미조항 앞에는 호도, 조도 등 크고 작은 섬이 10여개 있어 그 멋을 더해준다. 이곳에는 또 무민사와 미조진성 같은 문화유산도 있다. 무민사는 최영장군을 기리는 사당으로, 조선 중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최영장군은 고려 우왕 때 이곳 남해의 평산포를 방문한 적이 있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에 의해 제거된 바 있다.

 

미조진성은 미조진을 지키는 첨사가 방어용으로 쌓은 성이다. 주세붕이 쓴 『무릉잡고』에 보면 "미조진(彌助鎭) 앞에는 작은 섬이 있다. 근세에 첨사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는 미조 북항 쪽을 살펴본다. 양식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항도도 보인다. 항도는 어찌 보면 형제섬 같다. 항도에는 최근 선착장을 만들어 배를 댈 수 있게 만들었다. 양식장에는 배를 타고 작업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미조만을 조망하면서 만난 또 하나의 이상한 풍경은 굿을 하는 사람이다. 미조 앞바다 조망을 위해 만든 정자에 부부가 나란히 앉아 징을 치며 뭔가 주문을 왼다. 이들 앞에는 제물도 차려져 있다.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대로변에서 하는 주술행위로, 그들의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 그들만의 절박한 사정이 있겠지 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남해에 와서 보고 듣게 된 기이한 광경이다.    

 

이걸 차창관광이라고 하는 거지

 

이들을 보고 우리는 해안 관광도로를 따라 남해의 비경을 감상한다.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는 바다풍경이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마을 풍경이 이어진다. 먼저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해오름 예술촌이다. 산동면 물건리에 있는 폐교를 활용해 만든 창작 예술 스튜디오다. 예술촌을 지나자 독일마을이 나온다. 독일마을은 1960년대부터 간호사와 광부로 독일에 간 사람들이 2000년대 노년을 보내기 위해 만든 마을이다. 200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 현재 33가구의 집이 있다. 앞으로 20호가 더 지어져 모두 53호가 될 예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마을을 차장으로만 보아야 했다. 비도 오고 내릴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도로 오른쪽으로는 천연기념물 제150호인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펼쳐진다. 방조어부림은 해풍을 막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숲으로 지금부터 300년 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니 무성한 녹음이 바다를 가리고 있다. 이들 숲의 길이는 1,500m, 폭은 30m 정도라고 한다. 

 

방조어부림을 이루고 있는 식물들로는 높이가 10-15m 정도인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같은 낙엽활엽수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상록수인 후박나무도 있다. 그리고 이들보다는 키가 작은 구지뽕나무, 모감주나무, 생강나무, 쥐똥나무, 보리수나무 등이 있다. 그 외 넝쿨식물로 청미래덩굴, 복분자딸기, 노박덩굴, 개머루 등이 있다.

 

멸치쌈밥, 별 거 아니네.

 

 

그러나 방조어부림 역시 그냥 눈으로 보면서 지나갈 수 밖에 없다. 안타깝다. 우리는 이제 점심을 먹으러 삼동면 금송리에 있는 멸치쌈밥 집으로 간다. 멸치쌈밥이라? 나온 음식을 보니 멸치에 된장 고추장을 넣고 파를 넣은 다음 끓인 것 같다. 일종의 멸치 찌개인 셈이다. 찌개 속의 멸치를 상추나 깻잎에 올리고 된장이나 젓갈을 얹어 먹는 것이다. 상추쌈 안에 양념에 익힌 멸치를 넣어 먹는다고 보면 된다.

 

반찬은 생각보다 빈약한 편이다. 숫자상으로 일곱 가지인데 그중 독자적으로 반찬이 될 수 있는 것은 다섯 가지다. 밥 한 그릇을 비우는데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반찬이 푸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옆에서 '멸치쌈밥, 별 거 아니네'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봐도 대단해보이지 않는다. 이 지방에서 멸치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멸치를 넣어 끓인 찌개에 불과하다. 멸치쌈밥을 뭔가 다르게 바꿔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밥을 먹고 시간이 남아 나는 바다 쪽으로 걸어가 본다. 그것은 바다 가운데 죽방렴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후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죽방렴이다. 죽방렴은 창선교의 이쪽과 저쪽에 여러 개 설치되어 있다.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가 좁고 길어 물살이 아주 빠르기 때문에 이곳에 죽방렴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물살이 빠른 곳에서 멸치 등 어류는 자연스럽게 죽방렴 안으로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원리를 이용했다.

 

그런데 이 죽방렴이 바다 한 가운데 설치되어 있어 가까이서 볼 수가 없다. 멀리서 보니 삼각형 모양으로 나무발을 세우고 삼각형의 꼭지점 부분을 둥글게 만들어 그곳에 물고기를 모이게 하는 형태다. 원리는 알겠는데, 잡힌 고기가 어떻게 도망가지 못하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따 해설사의 얘기를 좀 들어봐야겠다.

 

죽방렴 보기

 

 

모든 사람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죽방렴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창선교로 간다. 창선교는 남해 삼동면 지족과 창선면 지족을 잇는 다리다. 이 지족해협은 시속 13-15km의 거센 물살이 지나는 좁은 물목이다. 이곳에서는 멸치 등의 어류가 죽방렴이라는 전통 어업방식을 통해 잡힌다. 현재 창선교 주변에는 23개의 죽방렴이 설치되어 있다.

 

죽방렴(竹防簾)은 대나무 발 그물을 세워 고기를 발 안으로 모이도록 한 일종의 어구다. 대나무 어살이라고도 하는데, 물때를 이용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어항 같은 곳에 모이게 해 필요한 때 건지는 방식이다. 민물에서 어항으로 고기를 잡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곳에서 잡힌 생선은 그물에 걸리는 생선처럼 긁히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선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1++(prime) 소고기보다도 비싸다고 한다.

 

 

우리는 삼동면 지족에서 출발해 창선교를 건너가면서 죽방렴을 보고 창선면 지족으로 넘어갈 것이다. 다리 한 가운데쯤 가니 죽방렴이 코앞에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죽방렴 안으로 들어가는 고기도 볼 수 있을 텐데, 물빛이 탁해 고기를 볼 수 없다. 비가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조혜연 해설사가 죽방렴의 원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런데 비만 오는 게 아니라 바람까지 불어 조 선생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이틀 동안 그녀는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창선교에서의 마지막 인사

 

창선교 다리를 건너니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이제 남해 역사연구회 팀원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정말 아쉽다. 이틀 동안 그들과 한 시간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답사의 정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구성, 문화유산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적극성, 최고의 잠자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려는 정성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이번 글을 통해 가끔 문제점과 아쉬움을 지적하려니 마음이 아프다. 기자의 입장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작별인사를 한다. 그렇지만 그들과 9월에 다시 만날 수 있다. 9월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간 한국향토사연구 전국협의회 제24회 학술대회가 이곳 남해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때의 주제는 고려대장경에 대한 조명이다. 고려대장경이 이곳 남해에서 판각되었다는 사실에 근거, 고려대장경을 재조명하려는 학술대회다. 그때는 학술대회뿐 아니라 대장경 판각성지 탐방, 경판 목재 이운 재현, 대장경판 이운 뗏목 젓기, 대장경 판각 및 경판 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우리 차는 창선면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3번 국도를 따라 단항에 이른다. 단항에서 삼천포 굴항 사이에는 3개의 섬이 있고, 4개의 다리가 있다. 그 다리 이름이 창선대교, 늑도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다. 그래서 크게는 창선-삼천포 대교라고 부른다. 삼천포대교를 건너니 삼천포시내에 건어류 가게들이 즐비하다. 우리는 그중 한 곳에 들러 멸치와 미역 그리고 젓갈류를 산다. 죽방렴 멸치는 못 사더라도 국거리 멸치나 볶음용 멸치는 아무래도 이곳이 신선하고 값이 싸기 때문이다.

 

 

차에 타도 비는 여전히 쏟아진다. 그렇지만 이제는 오거나 말거나다. 차에 타고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사천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간 다음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을 거쳐 청주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차안의 TV에서는 영화 <시>가 나온다. 이창동이 감독하고 윤정희가 주연을 맡아서 유명해진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주연배우들보다 엑스트라로 나오는 시낭송회 회원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웃음이 더 감동적이다. 그들은 청주에 실재하는 시낭송회 회원들이다. 이 영화를 보느라 나는 잠을 잘 수도 쉴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답사란 이처럼 예술과 함께 할 때 더 의미가 있다. 


태그:#미조만, #물건리 방조어부림, #멸치쌈밥, #지족죽방렴, #창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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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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