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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부산지역환경현장활동 프로젝트 공감 발대식 in 해운대
 2011부산지역환경현장활동 프로젝트 공감 발대식 in 해운대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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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9일 해운대역 앞에서 "신고리핵발전소에서 신리마을을 기억하다" 2011 환경현장활동 '로젝트 공감(약칭 공감)' 발대식이 있었다. 공감은 에너지정의행동, 대학생사람연대, 동아대 인문학회 카르마, 평화캠프 등의 주체로 부산·남 지역 대학생들이 모여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발전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자 만들어진 활동이다.

학생들은 5박 6일간 신고리핵발전소 근처 신리마을에 머물면서 발전소 근처에 살고 있는 주민의 얘기를 듣고 발전소의 문제를 고민하려고 했다. 그리고 곧 이주 될 신리마을 주민의 삶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포토 에세이 작업, 시민·환경 단체와 함께 울주군에 위치한 간절곶 까지 평화도보를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프로젝트 공감 발대식이 국제신문 사회면 메인

29일 공감 발대식이 진행 되었을 때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가 와서 식을 취재해 갔다. 당시 20여명 학생들의 핵발전소 문제 제기가 언론의 관심꺼리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취재는 했지만 신문에는 찾기 힘든 곳에 기사가 배치되거나 아예 배치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국제신문 기사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국제신문 기사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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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0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던 도중 국제신문 사회면 메인에 기사가 사진과 함께 대문짝하게"주민 밀어내는 핵발전소 건설 안돼" 라는 제목으로 배치되었다. 처음 기사를 읽지 않고 사진만 보았을 때는 모두 신기한 눈으로 여기 저기 폰을 꺼내 기사를 검색해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기사를 읽는 순간 큰일이 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핵 운동을 신리마을에서 시작한다는 얘기만 가득하여 주민이 보면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이 발칵 뒤집어 지다

고요한 어촌 신리마을이 발칵 뒤집어 지다.
 고요한 어촌 신리마을이 발칵 뒤집어 지다.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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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장님께 전화가 왔다.

"미안하지만, 너희 철수해야 할 수도 있겠다."

그 이유는 기사의 내용이 마을의 현재 상황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사를 보면 누구나 신리마을이 학생들과 함께 반핵 운동을 다시 본격 시작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현재 신리 마을은 고리원전본부와 이주대책에 대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신고리핵발전소 3,4 호기가 완공이 되면 신리마을 또한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이주 협상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다. 이런 중요한 협상 도중 마을이 협상을 중단하고 반핵 운동에 앞장서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언론을 통해 신리마을이 다시 반핵 운동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선언한 꼴이 되었으니 학생들이 마을에 계속 머무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을 이장님은 우리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조심스럽게 하셨다.

"너희 의도와는 다르게 기사가 이렇게 나갔으니 어쩔 수 없지만 마을 입장은 좀 난감하다. 너희들 어떡할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마을이 곤란해진 것 같아서.... 마을에서 철수 하겠습니다."


애초 6월 29일부터 7월 4일까지 신리마을에 머물며 활동을 하려 했으나 마을의 상황이 심각한 것을 느끼고 철수를 결정하였다.

핵발전소 앞 주민과 입장의 동일함을 위해

"우리도 말 할 수 있다. 외부단체는 대변인 빙자말라." 핵발전소 문제의 민감한을 보여주는 플랜카드
 "우리도 말 할 수 있다. 외부단체는 대변인 빙자말라." 핵발전소 문제의 민감한을 보여주는 플랜카드
ⓒ 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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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철수 결정이 내려지자 공감 대원들의 반응은 김빠진 콜라 같이 힘이 없었다. 핵발전소 주변의 마을 주민들과의 연대 활동을 만들어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을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원칙적인 '반핵' 구호만 내거는 활동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공감 대원 모두 30일 짐을 싸고 마지막 7월 4일에 끝나고 가려고 했던 뒤풀이 장소에 일찍 가서 활동을 정리하였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 한 잔을 먹으며 짧은 공감 활동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다.

"정말 아쉽습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마을 주민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큰 반성지점으로 남습니다. 연대 활동은 나의 의견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비추어서 활동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네요."

"신영복 선생님께서 관계에 대해 애정보다 연대를 연대보다 입장의 동일함 이것이 관계의 최선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가 딱 연대까지는 갔는데 신리마을 주민들과 같은 입장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입장의 동일함 까지 가봅시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핵발전소의 건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 갈등을 만드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2011 환경현장활동 '프로젝트 공감'은 7월 1일 정리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신리마을에서 짐을 쌀 때 마을 이장님께서 꼭 조만간 술 한 잔 얻어 먹으로 마을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마을 주민들의 입장에서 핵발전소 문제를 고민하고 문제 제기 할 수 있는 활동을 앞으로 계속 만들어 갈 것이다.

조만간 공감 대원들과 함께 신리마을 이장님께 술 한 잔 얻어먹으러 갈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리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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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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