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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열강에 벌인 중국의 마지막 전쟁 의화단운동 의화단운동은 반제국주의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양열강에 벌인 중국의 마지막 전쟁 의화단운동의화단운동은 반제국주의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계기가 되었다. ⓒ 후둥(互動)백과사전

'근대화'라는 '시간과의 경쟁'에서 중국은 그야말로 느린 거북이였고 20세기 접어들며 결국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을 앞세운 '서구문명의 밥'으로 전락했다. 중국인의 전통적 중화사상은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도 서양열강에 대한 위기의식을 둔화시켰고 변화에 대한 동력 또한 더디게 작동하게 만들었다.

태평천국운동(1851~1864년), 양무운동(1860~1894년), 무술변법(1898년) 등의 근대화운동이 차례로 실패하는 동안 서양 열강의 침탈은 갈수록 심화되어 갔다. 1900년 서양열강의 침탈과 가뭄과 홍수로 비참한 상황에 내몰린 민중들이 들고 일어섰다. 급증한 교회와 기독교신도들이 외국세력의 보호를 등에 업고 권세를 부리면서 일반 민중들과 충돌이 빈번해지면서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은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 중국에서 교회건립과 선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기독교도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1894년 선교사가 2천 명에 달했고 신도수도 60만 명에 달했다. 중국인들은 기독교를 중국을 침탈하는 서구세력의 첨병으로 파악하며 적대감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반기독교 민중운동으로 점화된 의화단은 기독교 선교활동이 가장 왕성한 지역이었던 산둥성(山東省)을 기점으로 점점 그 세력을 키워 톈진(天津), 베이징 등지로 확대되어 갔다. 의화단의 구호는 '부청멸양(扶淸滅洋)', 즉 위기에 처한 청나라를 돕고 서양을 멸하자는 것이었다.

백련교의 분파인 의화권(義和拳)에서 출발한 의화단은 권법과 샤머니즘이 결합된 종교적 색채를 띠고 주문을 외우면 칼이나 총알로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刀槍不入)는 믿음으로 서양과 관련된 철도, 교회 등을 파괴하고 선교사들을 살해하였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서태후는 의화단의 폭동을 활용하여 어떻게 서양을 견제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의화단 세력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보고 1900년 6월 21일, 서양열강에 대하여 선전포고 조서를 반포한다. 청나라가 서양열강과 벌인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전쟁이었다.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이었고 우리의 통일된 영토를 침범했고 우리 백성을 짓밟았다. ……그래서 용감한 의화단의 추종자들은 교회를 불태우고 기독교인을 죽였다." - 조너던 D.스펜서, <현대중국을 찾아서2> 중에서

자금성으로 진군하는 서양 연합군 일원화된 지휘체계가 없던 의화단은 빠르게 서양 연합군에 진압되고 말았다.
자금성으로 진군하는 서양 연합군일원화된 지휘체계가 없던 의화단은 빠르게 서양 연합군에 진압되고 말았다. ⓒ 후둥(互動)백과사전

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의화단은 선교구역과 외국인을 공격하며 기세를 올렸으나 청군과 조직적인 연대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또한 열강의 이권을 노린 세력과 청나라의 신식군대는 추이를 지켜볼 뿐 적극적으로 의화단을 지원하지 않았다.

1900년 8월 러시아,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군은 추가 병력을 투입하여 톈진에서부터 의화단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일원화된 지휘체계가 없는 의화단의 저항은 오래지 않아 진압되었고 자금성은 외국 군인의 주둔지로 사용되었다.

1901년 9월 의화단 의정서가 체결되었는데 청조는 200명이 넘는 서양인이 사망하고 서양인의 재산 피해에 대한 보상금으로 4억 5천만 냥이나 되는 거금을 지불해야 했다. 당시 청조의 연간 총세입이 2억 5천만 냥이었으니 얼마나 큰 금액인지 알 수 있다.

'부청멸양'을 주장했던 의화단운동의 처참한 패배는 중국인들로 하여금 무능력하고 부패한 청나라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접게 하였으며 이후 한족을 중심으로 한 민족국가 건립에 대한 열망이 빠르게 확산되게 하였다. 

의화단운동은 비록 실패했지만 민중들이 보여준 그 역동적인 에너지는 다가올 신해혁명(1911년)과 신중국 건국(1949년)이라는 대폭발을 위하여 조금씩 그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의화단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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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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