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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출간 7개월만에 200만부를 돌파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한국어판(임희근 역, 돌베개)의 표지.
 프랑스에서 출간 7개월만에 200만부를 돌파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한국어판(임희근 역, 돌베개)의 표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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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93세 할아버지가 쓴 31쪽짜리 책 한 권이 화제다. <분노하라>. 이 짧은 제목과 함께, 레지스탕스 출신의 인권운동가라는 저자 스테판 에셀의 이력만 알아도 이 책의 내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치와 비시정권에 맞선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출발이 '분노'였듯이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부조리들(부의 양극화나 여전한 인권의 문제에서부터 팔레스타인 문제에 이르기까지)에 맞서 저자는 일단 분노하고 비폭력 봉기에 나서라고 '선동'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생뚱맞게도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한 구절이었다. 11권 '종말의 시작'편에 보면 시오노 나나미는 제정으로 접어든 1세기의 로마를 간략히 설명하면서 "제정 시대 최고의 역사가로 꼽히는 타키투스의 저술은 무엇이든 비관적으로 보는 시점 때문에 질려버릴 정도지만, 그래도 우국지사의 외침인 것은 사실이다. 분노는 걸작의 어머니다"라고 썼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보더라도, 내가 쓴 <오마이뉴스> 기사들 중에서 '나만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은 모두 그 어머니가 '분노'였다. 물론 그 분노를 잉태한 것은 타키투스에게는 가면을 쓴 제정황제였고 나에게는 부조리한 한국 사회였다.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한, 불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바꾸어 온 출발점이 대중의 분노였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물론 이때의 분노는 개인적인 원한이나 이해관계에서 생기는 분노가 아닌, '공분'이나 '의분'이다). 비시정권 아래서 레지스탕스를 했던 에셀이 그랬고, 그보다 150여 년 전 루이16세의 목을 기요틴으로 내려친 그의 선조들이 그랬다.

에셀과 그의 선조들이 느꼈던 분노를 우리는 멀게는 동학혁명군이나 3·1운동과 항일무장투쟁에서 이미 느껴보았고, 4·19혁명와 5·18광주항쟁, 6·10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고비마다 우리의 가슴과 함께했다. 맨주먹 말고는 가진 게 없는 피지배 민중들의 가장 큰 무기는 단합된 분노일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분노는 단지 작가에게만 걸작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 자체에도 걸작의 어머니임에 틀림없다.

민중의 무기 '분노'...그리고 분노를 잠재우려는 지배층

피지배층의 분노가 인류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어 온 한편으로 지배계층은 이들의 분노를 무력화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개발해왔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에 크게 두 가지 무기가 효과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대중들의 분노가 조작되었다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광주항쟁이 "북의 지령을 받은 일부 빨갱이들의 선동에 의한 반란"이었다고 생각한다. 전두환의 계엄확대와 공수부대의 만행에 분노를 느꼈을 법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좌익세력의 선동에 의한 폭도들의 난동"이라는 여론조작은 분노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효한 술수였다.

"지금 당신의 분노는 빨갱이나 좌익 혹은 좌파에 의해 배후조종된 것이다"라는 속삭임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한반도를 휩쓸었을 때도 큰 힘을 발휘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내 생각을 조종한다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MB의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려 한때 70%를 넘나들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은 <조선일보>가 작심하고 좌우파 편 가르기에 뛰어든 결과 진정되기 시작했다.

흔히 보수언론은 노무현 정부가 편 가르기를 심하게 했다고 하지만, 사실 자기들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좌파나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편을 가른 것은 그들이었다. "나도 MB 지지자이지만 이건 잘못된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그런 분노는 조작된 것이며 결국 당신은 좌파의 편에 서는 것이라는 협박은 잘 먹힌다.

우파이면서도 MB의 정책을 비판하는 영역을 완전히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MB의 한두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이제부터 나는 저쪽 편에 서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 기획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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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무력화하는 확실한 방법... "그놈이 그놈"

분노를 무력화하는 또 다른 수단은 분노를 일으켜 세상을 뒤집어봐야 결국 새로운 분노가 생길 뿐이라는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를 유포하는 것이다. 지금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도 결국 권력을 쥐고 나면 똑같은 모순과 부조리에 빠지고 만다면, 분노하여 봉기에 나선 사람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노를 잠재우는 허무주의를 유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부정한 권력을 비판하는 세력에게 비슷하거나 더 심한 혐의를 덮어 씌우는 것이다. 미국의 노동운동이 몰락한 데에는 여자와 돈이 있었다. 보수언론이 386 출신들의 도덕성을 유난히 물고 늘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시절에 경찰청장까지 오르며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현재 철도공사 사장에 오른 허준영은 "소주 먹던 청와대 386이 곧 양주만 찾더라"고 고발했고 <조선일보>는 이를 사설로 옮겼다. 보수 세력의 이런 계략이 절정을 이룬 것은 물론 노무현에 대한 비리수사와 이에 저항한 그의 죽음이었다. 노무현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명숙은 "의자가 돈을 받았네", "국기를 모독했네" 하면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요즘은 택시를 타면 현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이나 모두 다 도둑놈들이라고 언성을 높이면서도 꼭 말끝에는 "민주당이 돼도 다 똑같아요. 어차피 그놈들이 그놈들이잖아요"라는 결론이 붙어 다닌다. 물론 민주당이 믿음과 희망을 주는 정당이 아닌 면도 많지만, 설령 그 어떤 뛰어난 야당이 있다고 할지라도 비슷한 결론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노무현이 살아서 계속 검찰에 불려 다니고 재판정에 서고 수갑 차고 수의라도 입고 수감까지 되었다면, '그놈이 그놈'이라는 결론은 훨씬 더 큰 힘을 얻었을 것이고, 그만큼 현 정부나 기득권에 대한 분노는 큰 힘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사람들은 기를 쓰고 없는 죄라도 만들어 내려고 했다. 노무현이 몸을 던진 이유는 그게 싫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 그들은 '제2의 노무현' 탄생이 싫었다).

분노와 봉기 사이의 '두세 발자국'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에셀은 <분노하라>에서 "불의에 맞서는 우리의 분노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호소한다.

그러나 사실 분노와 봉기 사이에는 엄청난 심연의 강물이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이 일단 우리의 분노를 무력화시킬 막강한 이데올로기와 매체와 수단이 저편에 존재한다. 또한 분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기는 반면 봉기에 나서려면 목적의식적인 기획과 큰 용기가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분노와 봉기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는 대단히 좁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선배들과 함께 처음으로 데모라는 것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점은 시위대와 구경꾼 사이의 거리가 불과 두세 발자국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도심에서도 그랬지만 같은 대학생들이 함께 있는 교내 시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 또한 신입생 때는 시위대일 때보다는 구경꾼일 때가 훨씬 많았다. 구경꾼이라고 해서 시위대가 느끼는 의분을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분노를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구경꾼과 시위대를 가르는 그 두세 발자국의 거리는 분노의 공감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이다. 분노와 봉기의 그 좁고도 큰 간격은 이후 학생운동을 하는 내내 나의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2008년의 촛불시위는 봉기가 얼마나 즐겁고 평화로운 비폭력의 축제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스마트폰과 SNS가 급격하게 퍼지면서 작년과 올해에는 그 축제가 또 다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중동을 휩쓴 자스민혁명은 수십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역사적 과업을 불과 몇 달 며칠 만에 해치워버렸다. 한국에서는 김여진이 이끄는 '날라리패'나 문성근이 주도하는 민란이 봉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분노와 저항과 창조가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에셀이 <분노하라>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쓴 것처럼 말이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김여진과 문성근을 (우연히도 둘 다 배우다) 봉기에 나서게 한 분노가 그들이 '날라리'와 '민란'이라는 최고의 걸작 다큐멘터리를 찍게 만든 어머니일 것이다.

분노를 간직한고 있다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100만 민란' 국민의 명령 문성근 대표와 배우 김여진.
 '100만 민란' 국민의 명령 문성근 대표와 배우 김여진.
ⓒ 남소연·노동과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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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봉기로 이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대체로 두 가지 갈림길에 들어선다. 하나는 분노를 잊지 않고 선량한 부채의식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다. 2008년 5월, 고등학생들이 시작한 촛불시위를 뒤에서 끝까지 지켜주었던 것은 언젠가는 행동에 나서지 않은 마음의 빚을 갚고자 했던 어른들이었다. 지금의 반값등록금 시위에 동참하는 학부모들도 비슷한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분노가 남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잊어버리거나,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그렇게 잊히는 당신의 분노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망각된 분노는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은폐하면서 확대재생산할 뿐이다.

따라서 분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분노를 잊지 않는 것, 그렇게 선량한 부채의식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의 분노를 우리가 가슴 한 켠에 간직하고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 값어치를 할 기회가 온다.

날라리들과 함께 김치를 싸들고 청소 아주머니를 찾아갈 수도 있고 외롭게 높은 크레인에서 아직 내려오지 못하는 어느 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해줄 수도 있고, 주권자인 우리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민란의 힘'을 보여줄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과 진보가 '깨어 있는 시민'들과 만나면서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단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분노가 다른 어느 누구의 소유물이 아닌, 우리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 인생 최대의 걸작이 그 속에서 꿈틀대고 있음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옥동자가 이 세상에 태어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타키투스가 로마시대 최고의 역사가가 될 수 있었던 그 비결과 함께.

"분노는 걸작의 어머니다."


태그:#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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