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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의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개그맨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도 춤, 노래, 연기 등 점점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은 바로 '성대모사'가 아닐까 싶은데요. 성대모사 잘하는 개그맨은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밥 값'은 하며, 일상생활에서도 성대모사 잘하는 친구들만큼 분위기 잘 띄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특히, 성대모사와 풍자가 만나면 그 폭발력은 배가 되는데요. 각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대통령의 성대모사로 인기몰이를 한 개그맨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뒷받침해줍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로 큰 인기를 얻었던 심현섭씨가 있었으며, 참여 정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로 뒤늦게 인기를 얻었던 김상태씨가 있었습니다. 김상태씨의 경우, "맞습니다, 맞고요~"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물론, 두 전직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기가 막히게 했었던 다른 코미디언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나라 현존 대표 코미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개그콘서트>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MB 정부 들어 우리는 '성대모사의 달인'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개그맨 안윤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현재 <개그콘서트> 내 '슈퍼스타 KBS'라는 코너에서 노래를 부르며,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성대모사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명박 대통령의 성대모사는 뒤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개그맨 안윤상의 가치는 심협섭씨나 김상태씨보다 더 높게 평가받아야 하지만, 인기몰이 측면에서 안윤상씨는 두 개그맨보다 한참 뒤처집니다.

 

매우 어려운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제가 되지 못한 경우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바로 여기에 안유상이 비운의 개그맨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심현섭과 김상태씨처럼 안윤상 역시 정권 초기, 대통령을 패러디한 캐릭터를 만들어 개그프로그램에 선보이게 됩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2009년 안윤상은 봉숭아학당이라는 코너에서 MB라는 이름표를 달고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요. 방송에서는 편집이 돼서 어떤 말을 했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안윤상의 'MB 패러디'가 단 한번도 방송되지 못한 채 그냥 사라지게 되자 사람들은 그 배경에 궁금증을 갖았고, 당시 스포츠칸에서는 취재를 통해 그 이유를 밝혀내기에 이릅니다.

 

2009년 3월 2일자 <스포츠 칸> 기사

안윤상은 KBS 2 '개그콘서트'의 최근 두 차례 녹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패러디한 MB 캐릭터를 내세워 풍자 코미디를 시도했다. 당시 안윤상은 '봉숭아 학당' 코너에 정장과 'MB'라는 명찰, 특수 가발 차림으로 등장해 "사실 내 이니셜(MB)은 민박의 약자다. 난 민박집 주인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지난 달 22일과 3월 1일 방송에서 2주 연속 편집돼 사라졌고, 다음주부터는 다른 캐릭터로 대체될 전망이다.

 

방송 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왜 MB 캐릭터가 방송되지 않았느냐?"는 항의성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녹화 방송에서는 MB 캐릭터가 굉장히 호응이 좋았다고 들었는데, 왜 방송되지 않은 것이냐? 혹시 정치적 이유가 개입된게 아니나"는 의문의 글을 올려놨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안윤상의 개그 내용이 재미가 떨어져 편집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그 배경에 대한 의혹은 여전하다.

 

어쨌든, 앞선 두 정부와 확연히 성격을 달리하는 정부였기에 일어날 수 있는 뭐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성대모사 하나 만큼은 타고난(선척적인 재능인지 후천적인 노력인지는 모르겟지만) 개그맨 안윤상의 MB 모사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안윤상의 MB 성대모사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쵝오'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슈퍼스타 KBS' 코너 속 MB 성대모사는 결정적인 흠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풍자가 빠졌던 것입니다. 풍자없는 정치인 성대모사는 '앙꼬없는 찐빵'이요, '임재범 없는 나가수'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 대한민국 최고의 유행어로 자리 잡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활용하지 못하는 안윤상의 MB 성대모사는, 기껏해야 작년 말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패러디 수준에 머무르는데요. 이 보온병 패러디에 방청객과 국민들은 열광했고, 혹시나 외압으로 안윤상이 피해를 입게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안윤상은 안 대표의 패러디 직후 이명박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세계 제일의 경제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흉내낸뒤, "MB 파이팅 대통령 령 령"하고 '피구왕 통키' 노래를 불렀는데요. 작년 말이면, 이미 MB의 경제대통령 이미지는 허구였음이 들어난 때입니다. 그 상황에서 "세계 제일의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외치는 대통령의 모습은 사실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경향이 있지만, 별 생각없이 들으면 또 그렇게 흘려 보내는 무의미한 단어의 조합일 뿐입니다.

 

그래서 MB 성대모사를 하는 안윤상을 보고 있자면, '정말 대단한 재능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시대를 잘못 만나 그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것 만 같아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나름대로 돌리고 돌리면서 풍자 근처까지는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직접적인 풍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2011년 6월 5일 방송에서 그는 <안되나요>를 부르면서, MB 순서가 오자 "오바마만 생각하면서♪ 한미동맹 강화 된다면~♬, 정상회담 고고싱~" 이라는 가사를 만들어 냈으며, 6월 12일에는 <하늘을 달리다>노래를 부르면서, "백악관, 오바마 만나러 간다 해도♩"라는 가사를 보탰습니다. 19일 방송 역시 "오마바 초대해요. 오바마 컴온요"라는 가사를 통해 오바마를 등장시켰습니다.

 

정리하자면, 바로 미국과 오바마를 향한 MB의 일편단심입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고려치 않고, 미국이 하면 좋은 것이 되고, 오바마가 말하면 그게 곧 기준과 근거가 되는 MB식 사고를 노래가사로 풍자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김 빠진 사이다 같았던, 안윤상의 MB 성대모사가 모처럼 신선하고 재미있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은 안됩니다. 2011년을 살아가는 개그맨 안윤상의 한계는 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요? 누구도 시도하려 하지 않았던 MB 성대모사의 1인자가 되었건만, 비운의 개그맨으로밖에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 오늘이 슬픈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콘#안윤상#MB#개그콘서트#슈퍼스타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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