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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8일 오후 순천 조계산에 다녀왔습니다. 고교시절 친했던 친구와 계모임을 하는데 동네 뒷산만 오르면 재미없다며 조계산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모임이 단출합니다. 저와 친구 녀석 달랑 두 명 뿐입니다.


시작은 세 명이었는데 한 녀석이 사정으로 나오질 않네요. 결국, 둘이서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회비도 열심히 내고 회칙도 만들며 나름대로 알차게 모임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모임을 가볍게 보는 눈칩니다. 아내는 두 명뿐인 모임이 무슨 모임이냐며 눈을 흘기지만 저와 친구는 각오가 단단합니다. 비록 두 명 뿐이지만 모양새는 다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또 모임에서 정한 일은 꼭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세상일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사는 사십대이기에 모임만큼은 우리 뜻대로 끌고 가려고 애를 씁니다.

 

한번 무너진 약속, 반복된다

 

이번 산행도 그런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었지만 한번 무너진 약속은 반복된다는 사실을 서로 잘 알기에 기어코 조계산을 향했습니다.


장소를 정하기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산행이 간절합니다. 처음 산행 장소를 꺼내자 친구 녀석은 얼굴에 싫은 표정을 그리며 반대했지요. 멀기도 하고 높은 산이라고 갖은 핑계를 댔지만 결국 제가 장소를 정할 차례라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산행 할 날과 장소는 정해졌건만 바쁜 세상이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출장이 잡히고 개인사정이 생깁니다. 그러나 세상일 뜻대로는 안 될지라도 능숙하게 처리할 줄 아는 나이가 사십대인가 봅니다.

 

아무생각 없이 앞장 선 길, 이 산이 아닌가 봐


이런 저런 걸림돌을 모두 해치우고 우린 조계산으로 향했습니다. 비록 시간이 조금 늦긴했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오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선암사 주차장 인근 밥집에서 점심을 챙겨 먹고 정상을 향합니다.


오랜만에 친구와 한적하게 산을 오르니 나누는 모든 대화가 즐겁습니다. 저는 몇 달 전 두 아들과 함께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조계산을 넘어온 경험이 있는 터라 자신 있게 앞장을 섰습니다.


물론 목표는 정상이었죠. 그런데 굴목재에서 우리가 오른 산이 정상과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선암사에서 조계산 정상을 밟으려면 가파른 산길을 곧추 올라야 하는데 우리는 빙 돌아서 가는 길을 택한 겁니다.


그 길은 많은 산행객들이 오르는 잘 알려진 길입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나드는 길 중 가장 많이들 이용하는 산길이지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 길을 택했는데 알고 보니 정상을 향하는 가장 먼 길이었습니다.

 

 

굴목재에서 정상까지 4Km 넘는 길


멋모르고 뒤따르던 친구는 인터넷을 통해 알아 본 정보와 다르다는 말을 굴목재에 와서야 꺼내놓습니다. 자신감에 넘쳐 호기롭게 산에 오르던 저는 친구에게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굴목재에서 정상까지는 가까운 줄 알았는데 거리가 무려 4Km 이상입니다. 저는 정상까지 오르기엔 무리라며 쌍향수 있는 암자나 다녀오자고 옆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면서 뒤따르는 친구는 힐끗 봅니다. 군소리 없이 천지암을 향하는걸 보니, 정상까지 가보자고 무모하게 외치지 않는 저를 보고 그나마 안심하나 봅니다. 그렇게 천지암을 향하는데 고갯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한참을 헉헉대며 오르는데 조금 가다보니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예쁜 똥 무더기를 만났습니다. 무심코 지나는데 몇 걸음 떼지 않아 또 찰진 무더기를 발견했습니다.


돌아보니 좁은 산길에 그런 똥 무더기가 다섯 곳이 넘습니다. 조그만 굴 앞에 무더기가 있는데 어느 동물의 배설물인지 참 예쁘게 생겼습니다. 색깔은 검은색이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손으로 만져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친구도 그 모양을 보고 참 기름지다고 한마디 합니다. 어떤 동물인지 모르나 인상깊었던 배설물을 뒤로 하고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개만 넘으면 있으리라 짐작했던 암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친구와 저는 슬슬 걱정이 됩니다. 다시 돌아올 길을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체력도 바닥입니다. 결국, 천지암 가는 길 고갯마루에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올 때 힘들 거라며 되돌아섰습니다.


천지암 가는 고갯마루에서 조계산 정상을 바라보며 생각하니, 아무런 준비 없이 한번 다녀온 길이란 생각에 그 길만 고집하며 산엘 올랐습니다. 마치 동네 뒷산 오르듯이 말입니다. 이런 제 모습이 한심합니다.

 

준비 없이 오른 산행, 대가는 혹독했다

 

정상을 가려면 애초에 다른 길로 접어들었어야 했는데 오로지 자신의 경험만 의지한 채 산을 오른 겁니다. 또 한 가지 천지암에서 굳이 되돌아오지 않고 아래로 가는 길이 있음을 내려오면서 알게 됐습니다.


준비 없이 오른 산행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산행이라 망정이지 인생에 중요한 길을 걸어갔더라면 큰 낭패가 맛볼 뻔 했습니다. 돌아와서 친구와 밥 먹으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힘들게 잡은 산행에서 제가 길을 잘못 인도 하는 바람에 정상은 밟아 보지도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너그러운 친구는 다음에 정상가면 된다며 위로하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이 가라않질 않습니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걸어가며 생각합니다. 인생길 걷다보면 어려운 고갯길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그 힘든 고개를 넘을 수 있는 바탕은 철저한 준비뿐이란 생각입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움직이기 전에 세밀히 준비하는 마음이 필요함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조계산 정상을 밟지 못하고 돌아오니 그 생각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월요일, 기름진 똥 주인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더니 사진과 비슷한 똥을 누는 녀석은 오소리인 듯합니다.


태그:#오소리 똥, #조계산,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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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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