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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추바이와 루쉰 중국의 유명한 화가인 쉬페이홍(徐悲鴻)이 스케치한 것이다.
취추바이와 루쉰중국의 유명한 화가인 쉬페이홍(徐悲鴻)이 스케치한 것이다. ⓒ 원자이바오(文摘報)

굴곡진 중국현대사에서 드라마틱하고 비극적 삶을 살다간 이들이 많은데 취추바이(瞿秋白)도 그 중의 한 명이다. 중국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전한 선구자적 지식인이면서 중국공산당 총서기까지 역임했으나 국민당에 체포되어 36살의 젊은 나이에 총살을 당하고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홍위병에게 부관참시까지 당하는 치욕을 겪었으니 말이다.

"이제 익살스런 광대극이 막을 내렸고 무대는 텅 비었다. 어떤 미련도 부질없는 것이 되고 이제 내가 얻은 것은 '위대한' 휴식뿐이로다. 육신이여! 더 이상 내가 그 주인이 아니구나. 세계의 모든 것들에게 작별을 고하노라!(滑稽劇始終是完全落幕了。舞臺上空空洞洞的。有什么留戀也是枉然的了。好在得到的是"偉大的"休息。至于軀殼,也許不能由我自己作主了。告别了,這世界的一切!)"

총살되기 한 달여 전에 쓴 취추바이의 유서 <남겨진 말들(多餘的話)>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유서는 문혁 때 홍위병들에게 너무 감상적이고 조소적이라고 비판받았지만 취추바이는 형장으로 걸어가며 '홍군가(紅軍歌)'와 러시아어 혁명가를 부르며 '중국공산당 만세'와 '중국혁명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취추바이는 1899년 1월 29일, 장쑤성(江蘇省) 창저우(常州)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형편과 어머니의 자살로 불우한 성장기를 보내다가 1917년 베이징의 외교부 산하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러시아를 배우기 시작한다.

1919년 5.4운동에 참여하고 리다자오(李大釗) 등과 함께 마르크즈주의 연구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베이징천바오(北京晨報) 모스크바 주재 기자로 활동하며 192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극동민족대표대회 등에 참석하였다.

1923년 귀국하여 공산당의 간행물 등을 편집하고 공산당 강령초안 작업에도 참여한다. 1927년 국공합작 결렬 후 천두슈(陳獨秀)를 '우경기회주의'로 비판하며 코민테른에 승인 하에 28세의 나이에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다. 그러나 6개월 후 그는 다시 '좌경모험주의자'로 지목되어 당 최고 자리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1931년 취추바이는 기회주의자로 몰려 6기 4중전회에서 중앙정치국 지도자의 지위를 박탈당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사실상 마감했다.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상하이에 머물며 루쉰(魯迅), 마오둔(茅盾) 등과 교류하며 러시아문학을 번역하고 문예창작에도 전념하였다. 취추바이는 루쉰과 함께 좌익작가연맹을 이끌며 문예평론, 보고문학(報告文學)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1934년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였던 뤼진(瑞金)으로 갔으나 폐결핵을 앓고 있던 취추바이는 10월 홍군의 장정(長征)에 참여하지 못하고 결국 요양을 위해 홍콩으로 향하던 중 1935년 2월 24일 푸진성(福建省) 창딩(長汀)에서 국민당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국민당은 끝까지 그를 회유하여 전향을 권했지만 취추바이는 거절했다.

1935년 6월 18일, 창딩의 중산(中山)공원에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혁명가를 부르며 형장에 들어선 취추바이는 자신을 겨눈 병사에게 "여기도 나쁘진 않네!(此地也好!)" 라고 말했다고 한다. 루쉰은 취추바이의 총살 소식을 듣고 "비록 사람은 죽었으나 그의 작품과 혁명정신, 고상한 인품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고 그를 추도했다.

신중국 건국 후 마오쩌둥(毛澤東)도 취추바이를 높게 평가하여 1955년 창딩에 있던 그의 유골을 베이징으로 이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문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홍위병들은 취추바이가 국민당에 동조한 '반역자(叛徒)'라고 매도하며 그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유골까지 훼손하였다.

1980년 취추바이는 중국공산당에 의해 정식으로 복권되고 1985년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그의 고향에 설립되었다. 취추바이가 유서에서 말한 '위대한 휴식'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취추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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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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