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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학비면제와 장학금이 생활비로 쓰이는 유럽 친구들의 경우, 한국교육제도에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이들은 K-pop, 한국어 빼고 흥미가 별로 없는 모양이다. 특히 한국의 대학교는 더욱. 한국 수준의 대학교는 필리핀, 일본, 홍콩, 싱가폴에도 있어서 그렇단다.

지난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독일대사관 소속 토마스 슈뢰더 교육참사관은 "한국과 독일의 교육제도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라고 언급하고 "장학금은 생활비"라며 "장학금 혹은 대출금을 독일 학생 중 20% 정도가 신청하고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 개인 면담에서 독일연방과 지방정부 교육예산은 별도라고 언급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기 다른 시스템을 구사하고 있어서 독일의 16개 주(州)의 입장에 따라 지원형태가 다르다는 것. 두 예산을 합쳐 비교하면 한국보다 상당히 많은 예산이 교육·연구비로 지출된다고 했다.

교육은 미래세대에 대한 국가적 투자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서는 만18살이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을 한다. 때문에 대학교에 입학하면 학생들은 자기가 가진 소득에 맞춰 생활한다. 부모가 더 이상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독립적이고 계획적인 경제생활을 그 때부터 시작하는 게 사회적 통념(혹은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독일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저소득층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부모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독립한 자식에게 학비까지 대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그러나 한국에선 좀 다르다. 등록금 문제를 놓고 학생은 물론 가족까지 저소득층 논의를 한다. '선진화'를 외쳐대며 선진국 사정은 수박겉핧기로 훑은 결과다.

외국인, 특히 국내거주 유럽인들이 바라본 한국의 등록금 시위는 이채로울 수밖에 없다. 이들에 따르면, 우선 한국 학비가 너무 비싸단다. 특히 한국 대학교에서 학생 1명당 한학기 등록금이 300만~1000만 원대의 거액이라는 사실에 이들은 "아예 학교를 다니지 말라는 것과 진배 없다"고 씁쓸해 한다.

중고교도 마찬가지란다. 아이들이 무슨 수로 그 많은 학비를 대가며 학교를 다니냐고 되묻는다. 사실 연간 80만 원 미만의 교육세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독일이나 프랑스, 혹은 북유럽 나라들 같으면 한국 대학교에서 요구하는 금액에 대학교를 보내고 다닐 가정은 거의 없을 거란 이야기다.

"1000만 원대 등록금, 다니지 말라는 거지"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이들 유럽 대학에 비해 강의나 연구의 질적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 대학교를 납득할 수 없다는 거다. 좀 심하게 말해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것 빼고 한국의 교육기관들이 뭘 내세울 게 있나? 그럼에도 최근 모임에서 이 친구들이 했던 대화 중 몇 가지는 경청할 만한 것이었다.

이들이 바라보는 한국대학교는 이런 문제가 있단다. 첫째가 1년 1회 치르는 수능시험으로 대학 입학능력 평가를 받고 점수에 따라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는 거다. 점수를 못 얻으면 다시 1년을 기다렸다 수능시험을 봐야 하는데 젊은이들이 1년 혹은 3년씩을 대학입학시험에 바친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독일처럼 자격증제로 해서 반영구적으로 입학과 전학을 하면 안되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외국인들에게 지난 7일 <오마이뉴스>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국회의원회관에서 펼쳐진 '반값을 넘어 등록금폐지로'라는 토론회를 설명하며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역시 이해불가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실행해야할 제도개선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건 반값등록금을 최근 "안된다"며 거부해 학생과 시민의 분노가 폭발한 점이 그렇다.

한 외국인 친구는 "소득이 열악한 학생들을 상대로 등록금 공약을 했으면 지켜야지 무슨 사람이 그러냐?"고 언급하고는 "그(이명박)가 대학등록금을 대주지 못하면 일자리라도 마련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과연 저 시위가 끝날 것 같은가?"라고 짜증을 냈다.

대학입학자격증시험 혹은 고등교육졸업시험

또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친구는 구동독에서 온 독일인이다. 그는 "한국이 대학입학자격증 시험을 제도화시키면 학생들들이 편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그는 이유로 몇가지를 들었다.

첫째, 자격증이기 때문에 다시 시험 볼 필요가 없다. 독일처럼 대학입학자격증 시험을 보게 되면 1회가 아니라 1년 동안 보게된다. 기간이 긴 만큼 쉬운 시험은 아니다. 하지만 일단 대학입학 자격증을 합격하게 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다시말해 한국처럼 다시 대학입학시험을 보며 재수·삼수를 할 필요가 없다.

둘째, 자격증이 있으면 원하는 대학교로 입학 혹은 전학이 가능하다. 원하는 대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고 들어갔어도 다녀보고 '아니다'라고 판단되면 1학기 뒤 혹은 1년뒤 타학교로 재입학하거나 전학으로 마무리하면 굳이 비싼 돈 내가며 원하지 않는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다.

셋째, 대학입학 자격증으로 취업도 용이하다. 대학입학자격증 시험을 치루고 대학교를 다니기보다 자격증을 이력서에 기재해 취업부터 한 친구를 본 적이 간혹 있었다. 듣자하니 이 경우는 독일에서 흔한 일이다. 즉 현재 기업체들은 학력보다는 경력사항을 우선시 한다. 유럽·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그런 추세로 가고 있다. 4년 동안 배운 게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사회에서 무용지물이 되기십상이기에 그렇다.

입학제도 바꾸면 대학구조조정은 덤

따라서 졸업장보다 대학졸업이 가능한 재원을 갖춘 친구들을 기업체에서 더 선호하게끔 정부와 기업이 유도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체가 바라는 인재를 키우기 쉽고, 학생들 혹은 인재들과 더 많은 소통을 통해 미래기업의 비전을 마련할 수도 있다. 핀란드와 독일이 대표적이다.

넷째, 이렇게 해서 대학구조조정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능력없는 학교가 원서와 등록금 장사를 더는 못하게 막으려면 우선 대학입학을 원하는 한국의 학생들이 대학입학시험을 재응시하지 않게 자격증제로 바꾸고 마음놓고 학교와 학과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만 한다.

이럴 경우 향후 몇년간 특정학교 입학에 열을 올릴 수도 있다. 즉 일부 학교는 한정된 입학생들 때문에 수요를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학재단측이 학생유치를 위해 대학 적립금을 풀고 등록금을 대폭 인하하는 것도 모자라 생활비로 쓰라며 장학금 제도를 활성화시키지 않을까?

이마저도 못하면 망하는 거다. 엉터리 학교라면 수요가 없는데 무슨 공급이 존재하겠는가? 사람들이 말하는 혁명이란 1%의 기득권이 아닌 나머지 99%가 두루 잘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이건 거대담론이 아니다. 심각한 생존의 문제다.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입학을 하고 억지로 돈 내가며 '개고생' 한다고 봐야 한다.

"공공투자와 복지는 다른 개념이다"

자꾸 시장자본주의 논리를 앞세워 복지를 엉뚱한 어젠다에 꿰맞춰놓으니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거다. '보편적 복지'라고 말들 하는데 '보편적'이란 곱씹어 보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해석하는 게 맞다.

복지는 국민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교육은 복지가 아니라 국가를 이끌어나갈 예비 사회구성원들을 위해 수행해야 할 공공투자다. 사회간접자본(SOC)이 토목건설만 있는 게 아니라 교육도 포함한다는 철학이 없는 이상, '반값등록금'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모양이다.


#등록금폐지#교육투자#대학입학자격증#정동영#대학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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