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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아침 7시. 농협 문을 열려면 두 시간이나 남았다. 하지만, 죽산농협 앞에 관광버스가 섰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입가에 미소 지은 걸로 봐서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맞다. 오늘은 효도 관광하는 날이다.

 

고구마 공동작업해서 번 돈으로 효도관광을

 

효도관광이라고 하니 농협에서 보내는 농협행사라고 생각해선 안 될 듯하다. 죽산농협에 속한 주부봉사대원들의 순수 작품이다. 그녀들이 고구마를 공동작업해서 판매한 돈을 모았다. 그동안 섬겨오던 죽산 지역의 소외된 어르신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벼르고 벼르던 여행이다.

 

"000어르신 오셨네요. 아니 000어르신 안 오셨네요. 무슨 일 있으시나?"

 

농협 의자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을 일일이 출석 체크하는 이종선씨(안성 죽산농협 여성복지담당자). 그녀는 대충 훑어보아도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단박에 알아본다. 평소 어르신들과 얼마나 잦은 교감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000 아버님 왜 이리 늦어셨엉?"

 

코맹맹이 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정겹다. 머리를 긁적이는 할아버지의 미소도 훈훈하다. 평소 흉허물 없이 가깝게 지냄을 그대로 드러낸다. 참 예쁘게들 산다.

 

주부봉사대원들은 어르신이 한 분이라도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택까지 모시러 가는 열성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르신의 팔짱을 끼고 출발 전 시간에 도착한다. 그제야 안심이다.

 

"서울 구경 처음 하시는 어르신들도 있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여행을 제대로 못 가본 어르신도 있대요. 오늘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시는지. 촌 어르신들을 서울구경 제대로 시켜드리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신 어르신들은 소위 취약농가 가정들이다. 기초생활대상자, 장애 등의 가정에서 34명이 참가한다. 인천공항, 한강유람선, 한강 둔치, 한강 드라이버 등을 하며 출세하시는 날이다.

 

주부봉사대원들은 평소 어르신들을 말벗, 청소, 식사, 병원 동행 등으로 섬겨왔다. 지역복지관이 따로 없다. 죽산지역 요양원에도 매월 둘째 주 수요일마다 목욕봉사도 간다. 42명의 회원이 열심이다. 해마다 김치, 쌀, 생필품 등을 지원하다가 올해는 여행을 보내드리기로 한 것.

 

농협은 순식간에 죽산 장날 되어

 

버스에 오를 시간이 다가갈수록 어르신들도 봉사자도 수다가 많아진다. 관광 가는 어르신들보다 함께 하는 주부봉사대원들이 더 유쾌하다. 서로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이다. 시끌벅적한 것이 흡사 죽산 장날이 농협에 옮겨와 있는 듯 하다.

 

그래도 농협을 통해 하는 행사이니 기념사진 촬영은 필수다. 신문에 나갈 거라며 할머니들은 제법 외모에 신경 쓰신다. 표정도 관리한다. 수 차례 다시 찍자고 기자가 말해도 모두 용서가 된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관광버스에 올라타는 어르신들의 움직임이 유달리 가볍다. 다른 날 같으면 버스에 겨우 올라타곤 하지만, 오늘은 가뿐하다. 여행 갈 곳을 머리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이제 출발이다. 죽산농협 윤택부 조합장도 흡사 자녀를 수학여행 보내는 심정으로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차가 멀찌감치 떠날 때까지 바라본다.

 

어쨌거나 출발이다. 고구마 팔아 떠나는 서울구경. 촌 어르신들에겐 고구마처럼 아주 맛있는 여행이 될 예정이다.


태그:#죽산농협, #죽산농협 주부봉사대, #효도관광, #이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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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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