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생활 구석구석의 '이상한' 습관들. 그 속에도 우리 사회를 비춰보게 하는 거울 같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 생활 속 익숙한 것들을 뒤집어보고 캐물어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재발견'하는 '생활의 재발견' 시리즈입니다. <편집자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한 소절처럼 우리는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기 애매한 사이에서는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될' 수 있도록 호칭을 부른다. 그 애매한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호칭은 바로 '선생님'! 나이가 어린 사람이 연장자를 부를 때도 '선생님', 연장자가 어린 사람을 부를 때도 종종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닐 경우에는 선생님 대신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등이 쓰이기도 한다.

 


기자의 카자흐스탄 친구는 기자에게 한국사회에서 종종 쓰이는 이러한 호칭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왜 한국 사람들은 선생님이 아닌데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사장님, 사모님, 과장님, 선배님…. 왜 이렇게 호칭이 많은 거예요?"

 

카자흐스탄 친구의 질문에 기자는 "그러게 말이에요"라는 흐리멍텅한 답변을 했다. 항상 불러왔던 호칭들이기에 자연스럽게 써오기만 했을 뿐,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기 때문. 다만 이렇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쓰다보면 우리나라에 선생님이 넘쳐나겠다는 생각 정도를 했을 뿐이었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애매한' 사람?

 

카자흐스탄 친구의 질문에서 시작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왜 자주 쓰는지 이유를 물어봤다. 이누리(23)씨는 "부르기 애매한 경우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해요"라고 말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통용어이기 때문에 많이 쓰이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선생님은 사회적인 존칭어로,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존경의 의미로 쓰는 것은 좋다"고 덧붙였다.

 

2010년 대학 학보사에서 편집장을 하며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았던 박기훈(22)씨 역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썼던 편이라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가장 무난하고 부르기 편한 호칭이기 때문. 그는 "호칭을 잘못 불러서 실수할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결국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의 애매한 관계에서 실수를 피하고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유교에서는 정명사상이라 하여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이름에 걸맞은 실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유교문화권인 우리 사회에서는 실제 선생님이라는 실체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높여 부르는 것을 보면 참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이라는 호칭뿐만 아니라 사장님, 사모님 등 실제 그 사람의 지위보다 높여 호칭을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는 과거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손님과의 부드러운 관계를 위해 사용하던 호칭이 일상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대학교에서 동양정치사상을 가르치는 한 전문가는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렇게 호칭을 높여 부르다가도 이해가 엇갈리면 선생님, 사장님에서 '이 자식, 저 자식'으로 변신하는 건 한순간이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일단 '선생님'으로 부르고 보자

 

기자 본인은 대학 학보사 시절 호칭에 대한 개념이 서 있질 않아 취재원에게 호되게 혼난 경험이 있다. 기자는 취재원의 연령대를 알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 "○○○씨 맞으신가요?"라고 물었고 장년의 취재원은 파릇파릇하고 시퍼런 어린 여학생이 버릇없이 어른에게 '○○○씨'라고 부른다며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화를 냈다. 그 뒤로 기자는 처음 보는 모든 사람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습관이 생겼다.


유교문화에 잠재되어 있는 서열의식과 예를 중시하는 성향이 작용하여 이렇게 어른에게 호칭을 제대로 부르지 않으면 버릇없는 사람이 되곤 한다. 전문가들은 유교문화와 서구의 근대문화가 섞여서 나타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종종 이러한 시행착오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원활한 대인관계를 위해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잘 부른 호칭 하나 열 아부 안 부럽다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호칭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손자를 돌보고 계시던 한 할머니께서는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길을 물어보는 거야. 그런데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싫어서 길을 알려주지 말까 생각했어. 그래도 그냥 길을 알려줬지. '아주머니'라고 불러줬으면 좋았을 텐데."

 

옆에 계시던 다른 할머니께서는 옷을 사러 갔는데 직원이 '사모님'하며 다가오니 너무 부담스러웠다며 도리어 높여 부르는 호칭이 부담스럽다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아저씨는 "나한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편하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사람들의 호칭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대인관계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호칭은 이렇게 종류가 많은 만큼 불리는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반응들 속에서 우리는 상황에 적절한 호칭을 선택하여 부른다면 대인관계라는 옷 한 벌을 잘 입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웹진 <本>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CCC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