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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저 전차 좀 봐" 앞서가던 일행의 아주 반가운 말투가 들려온다. 정말 운행되고 있는 전차가 밀라노시 한복판을 여유있게 오고 가고 있었다. 나도 진짜 반가웠다.

 

5월 21일 밀라노 두오모 성당을 나서 주차장을 가기 위해 큰 도로로 나왔다.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를 기다리던 중 우리 앞을 지나가는 전차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전차를 보자마자 언니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언니와 나의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언니 기억나지?" "그럼 기억나고 말고. 그때 전차비가 1원50전이었나? 2원 50전이었나? 아무튼 아침에 학교에 갈 때 엄마한테 너하고 나하고 전차표 두 장씩 받아들고 나왔잖니" "아마 1원50전이었을 거야. 3원에 두 장이었으니깐.  언니 난 아침에 학교에 가면 집에 돌아 갈 전차표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몇 번씩이나 확인 하고 또 확인 했었어. 언니는 어땠어?" "나라고 별 수 있었니. 마찬가지지"  

 

그땐 너나 할 것 없이 살기가 힘든 시절. 하여 지금처럼 용돈 문화가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전차표를 잊어버리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나는 언니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움직이는 전차를 응시하며 카메라셔터를 눌렀다. 47년 전쯤 내가 중학교 1학년, 언니는 고등학교1학년이었나보다. 난 대방동에서 명동신세계본점까지 언니는 종로3가(그당시엔 그곳이 종점으로 기억)까지 전차를 타고 통학을 했었다.
 
그땐 기차, 버스, 전차가 대중교통의 수단으로 많이 이용 되었었다. 그중 우리는 가격도 싸고 집에서도 정류장이 가까운 전차를 이용해서 통학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느린 것 같았는데도 그땐 그것이 느리다거나 답답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저만치에서 전차가 오면 달려가도 탈 수있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전차보다 달리는 사람이 더빠르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였다.
  
그런 전차였지만 오히려 아주 당연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잘모르겠지만 그런 정겨운 전차의 모습은 사라지고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있게 되었다. 그것도 정지 된 그림으로.
 

 

밀라노시가지는 보편적으로 조용하고 여유가 있어보였다. 복잡하지도 않았고 로마시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지도 않아 느긋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전차 노선이 시가지 한복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모습도, 그들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보여 주는듯했다.

 

어느새 어둠이 살짝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때 저만치에서 전차 전체에 전구를 달고 울긋불긋 불을 밝히며 오는 전차가 보였다. 버스를 타려고 움직이던 우리 일행은 다시 한 번 그 자리에 서서 화려하지만 소박한 전차가 사라질 때까지 놓치지 않았다.  "야 여기 사람들 아이디어 정말 좋다. 전차에다 저렇게 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과연 패션의 도시답다" 칭찬 일색이었다. 또하나의 명물로 인상깊게 자리 잡을 것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는 요즘. 어쩌면 그것에 맞지 않게 천천히를 잃지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 삶의 가치가 느껴지기도 했다. 두 개의 전차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난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47년 전 우리나라에서의 추억을 멀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잠시 꺼내어 볼 수있었던 행복한 짧은 시간이었다.


태그:#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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