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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하이, G20 기간엔 외국인한텐 영어로 인사해야 한대. 어? 아빠, 저기 쓰레기 있다. G20 기간엔 쓰레기 버리면 안 되는데."

 

딸 '매이'의 '호들갑'에 '쥐벽서' 박정수씨는 "매이야,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돼"라며 당황스러워한다. 그리고는 "우리 재밌는 거 하러 가자"며 매이의 손을 잡아끈다. 불이 꺼지고, '딸깍, 딸깍', '칙칙' 스프레이 소리와 함께 G20 포스터에 '쥐그림'이 그려진다.   

 

'딸깍, 딸깍', 스프레이를 흔드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자, 한 남성이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나타난다.

 

"고양아, 너 때문에 내가 잠을 잘 수 없잖아. 밤 고양이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시겠다고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다시 불이 꺼지고, '딸깍, 딸깍' 소리를 싫어하는 남성은 '검사'로 변신한다. 

 

'청사초롱의 꿈 강탈' 재현하자 웃음바다

 

3일 오후 7시경, 홍대 두리반 3층에서는 한 편의 연극이 공연되었다. 창작극의 제목은 <쥐와 벌>. 주인공은 '쥐그림 강사'로 유명한 박정수씨. '쥐그림 사건'을 재현한 이 연극에서 박씨는 쥐그림 강사 역할을 맡았다. '유명배우' 때문일까. 두리반 3층은 100여 명의 관객들로 가득 찼다.  

 

이날 창작극은 G20 그라피티 사건 후원행사인 '파티하쥐'를 위해 마련되었다.

 

행사를 주최한 수유+너머 측은 "이번 사건으로 동료들이 검찰조사 받을 때 가장 뒤끝이 남았던 말이 '너네가 부자들 잔치에 개 풀어놨다'는 말이었다"면서 "그렇게 따지면 두리반 역시 1년 넘게 부자들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참에 개를 확 풀어서 두리반의 싸움에 단 하루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파티장소'로 두리반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수유+너머는 박정수씨가 몸담고 있는 연구 집단이다. '파티장' 두리반 근처에는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합니다'라는 G20 포스터가 곳곳에 붙었다.  

 

 

다시 연극으로 돌아가, 불이 켜지자 '검사'와 박정수씨가 법정에 서있다. "예술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예술은 법 바깥에 있다"는 설전이 오고가고, 드디어 이날 공판의 하이라이트, '청사초롱의 꿈'이 나오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된다.

 

"피고 박정수는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로부터 청사초롱과 번영에 대한 꿈을 강탈한 것입니다."

 

그러자 박정수씨가 최후 진술을 한다.

 

"청사초롱의 꿈은 부자들만의 꿈입니다. 지금 국가는 강바닥을 파헤치고 산을 옮기는 꿈만 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이에 검사는 "그래, 아무것도 하지마라. 아무것도, 잠 좀 자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딸깍, 딸깍' 스프레이통 흔드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쥐'를 그려넣은 G20 포스터가 나타나고 딸 '매이'가 박정수씨에게 묻는다.

 

"아빠, 쥐그림이다. 그런데 저기 청사초롱 들고 있는 쥐는 누구야?"

 

박정수씨가 답한다.

 

"글쎄."

 

일본·중국서도 '파티하쥐' 찾아 '쥐와벌' 감상

 

 

'쥐와벌'이 공연되는 동안, 두리반 한편에서는 한 여성이 일본인 남성에게 '실시간'으로 통역을 해주고 있었다. 일본인 남성은 오사카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도미야마 이치로씨. 연세대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 참여했다가 '파티하쥐'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두리반을 찾았다.

 

쥐그림 사건을 잘 알고 있다는 그는 "이는 표현의 자유뿐만이 아니라 해석의 자유도 제한하는 것"이라며 "국가가 이러한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2008년 일본에서 G8 정상회담이 개최될 때도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개개인이 표현의 방식으로 패러디를 했다고 체포되는 예는 없었다"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두리반에서는 중국사회과학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순궈씨도 만날 수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쥐그림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순궈씨는 "싸움자체는 굉장히 혹독할 수 있겠지만 연극을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었다"며 "한국민주주의의 새로운 흐름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신선했다"고 평가했다. 

 

연극이 끝나자, 두리반 뒤편에 있는 공터에서는 '일일주점'이 열렸다. 술과 안주는 물론이고 '쥐벽티'도 한 장에 만 원에 판매되었다. 평소 두리반을 자주 찾았다는 고등학생 신아무개(18)씨는 쥐그림 사건에 대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며 쥐벽티를 하나 구입했다. 오후 9시부터는 늘푸른소리, 비아, 악어들 등 인디밴드들이 참여하는 공연이 열렸다.


태그:#쥐그림 사건, #쥐그림 강사, #박정수, #쥐벽티, #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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