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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들의 고민은 역시 육아 문제이다. 국악 방송에서 몇 년 동안 데일리 생방송 원고를 쓰면서 가장 큰 고민은 아이 문제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난해엔 일을 쉬기까지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가 아홉 살이 되면서 아주 조금씩 고민이 풀려가고 있다.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두어 시간씩 '맘껏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홉 살, 인생을 알만한 나이지. 아홉 살 인생이라는 영화도 있잖아"라고 한다. 집에 돌아와 생각난 김에 물었다.

"아홉 살 민재, 인생이 뭐라고 생각 하냐?"

레고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던 아이가 무심코 대답한다. 

"나그넷길이요."

푸하하 터지는 웃음. 아홉 살 민재가 최희준의 <하숙생>을 들었을 리는 만무. 몇 가지 취조(?) 끝에 만화책에 나온 대사라는 실토를 받아냈다.

지난 일요일(5월 29일), 아홉 살 민재가 아침 식탁에 앉아 말했다.

"일요일 시간이 너무 시시해요."

아빠가 일요일에도 출근을 하니 여행도 가지 못하고 영화도 보지 않는 일요일이 너무 심심하다는 얘기다. 마침 경복궁에서 세종 때의 행사를 재현한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한 마디 건네 보았다.

"그럼 우리 시간 여행하러 갈까? 옛날에 임금님들이 사시던 경복궁에 세종대왕이 나온대."

순간 아이의 눈이 반짝하고 빛난다. 과연 시간 여행을 다룬 동화나 탐정이 나오는 만화는 화장실에서도 못 놓는 아이답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경복궁으로 나선다.

경복궁으로 떠난 시간여행... 세종조 '아악'을 만나다

회례연에는 300여명의 악사와 무용수가 등장한다. 앞쪽으로 보이는 것이 편경. 세종 7년, 남경에서 발견된 경석으로 만든 악기이다.
 회례연에는 300여명의 악사와 무용수가 등장한다. 앞쪽으로 보이는 것이 편경. 세종 7년, 남경에서 발견된 경석으로 만든 악기이다.
ⓒ 문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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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는 조선 시대에나 봄 직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높다란 용상 위에 앉아 계신 대왕의 모습, 화려한 예복을 입고 근정전에 도열해있는 300여 명의 악사와 무용수들,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악기들…. 시간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580여 년 전의 어느 날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여기서 잠깐 580여 년의 어느 날이라 함은, 정확히 세종 15년 1433년 정월 초하루였다. <조선왕조실록>과 <악학궤범>에 따르면 세종은 이날, 경복궁 근정전에서 회례연을 거행하였다. 설날이나 동지에 궁중에서 왕이 벌이는 잔치인 회례연. 그 이름처럼 술잔을 들고 돌아다니며 왕과 신하가 인사하는 잔치인 것이다. 오늘날의 시무식이나 종무식인 셈.

기왕 말을 꺼낸 김에 이 회례연의 의미를 한 번 짚어보자. 세종은 한글 창제와 과학 진흥의 업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궁중 아악을 정리하고 악기를 제작한 수준 높은 음악가이자 예술가이기도 했다. 중국의 한자 대신 쓸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한 것처럼 중국의 음을 버리고 스스로 조선의 기준 음을 만들었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세종 7년. 황해도 해주에서 검은빛을 내는 거서가 나고, 지금의 수원 부근인 남양에서 경석(옥돌)이 발견된 것이었다. 거서와 경석. 한낱 검은 기장과 석재가 어찌 음악의 기본이 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그것은 모르시는 말씀.

이쯤에서 솟아오르는 지루함을 살짝 누르고, 일단 한 번 들어보시라. 소리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 만든 원통형 대나무 관을 '율관(律管)'이라고 불렀다. 검은 기장을 대나무 관에 넣어, 용적을 알아내 기준 음, 즉 황종음(중심을 나타내는 '누르 황'자를 쓴다. 서양의 '도'보다 약간 높은 음이다)을 정하는 방법을 쓰는 것인데. 문제는 땅의 비옥한 정도에 따라 검은 기장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었다.

편경 역시도 기준 음을 정하는 악기인데, 이 악기의 재료인 경석(옥돌)은 소리가 맑을 뿐만 아니라 온열과 습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기준 음으로 삼을 수 있었다. 중국의 기장이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것과 크기가 다르고, 경석은 아예 나오지도 않으니 중국의 악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중국에서 만들어진 악기가 정확한 우리의 음을 내지 못하는 것이 고민이었던 것이다.

허나 세종 7년 율관을 만들기에 적당한 검은 기장이 나고, 편경의 재료가 되는 경석이 발견되어 우리만의 악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중국과 다른 우리만의 기준 음을 만들려는 세종의 노력이 하늘에 가 닿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악기의 제작을 바탕으로 세종은 조선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나아가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 음악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니까. 회례연은 우리 음악을 세운 세종 나름의 이벤트가 아니었나 싶다.

아홉 살 인생이 2011년에 만난 세종... "칫, 진짜 사람이잖아"

무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면서도 회례연 촬영에 여념이 없는 아홉 살 인생.
 무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면서도 회례연 촬영에 여념이 없는 아홉 살 인생.
ⓒ 문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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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아픈 '아악' 생각에 빠져 있을 즈음, 아홉 살 인생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칫, 진짜 사람이잖아."

용상에 앉은 세종이 자기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것에 실망한 눈치가 역력하다. 시간 여행을 하자는 엄마 말에 진짜 세종대왕을 만날 수 있다는, 정말이지 아이다운 기대를 한 것이 후회가 되는 모양.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드넓은 근정전에 펼쳐진 진기한 풍경에 아이는 연방 자신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하교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사준 휴대폰은 580여 년 전의 회례연을 연속 촬영으로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움짤(움직이는 영상)이라도 만들려는 것인지!

그 사이 나는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아줌마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아이에게 회례연의 의미를 설명해주고자 오늘날의 시무식 같은 것이라고 하려다, 아홉 살 눈높이에 맞춰 입을 열었다.

"새 학기 되면 1년 동안 학교 생활 잘하라고 개학식 하잖아. 회례연도 1년 동안 신하들하고 임금님하고 나랏일 잘하자고 하는 거야."

다소 거칠고 용감하기까지 한 설명. 사진을 찍던 아이가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물어본다.

"그런데 왜 지금 해?"

정곡을 찌르는 아홉 살 인생의 질문. 아마도 그 질문의 대답은 이 회례연 행사의 연출가에게서 찾는 것이 나을 듯한데, 국악원 직원을 통해 총연출을 맡은 김석만 감독의 인터뷰를 부탁했다. 아홉 살 인생도 그 뒤를 졸졸 따라온 것은 당연지사.

'세종, 하늘의 소리를 열다.' 총연출을 맡은 김석만 감독.
 '세종, 하늘의 소리를 열다.' 총연출을 맡은 김석만 감독.
ⓒ 문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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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행사의 의미를 살리려면 1월에 해야겠지요. 국무위원들까지 참석해 본연의 뜻을 살리면 회례연이 박제된 문화가 아닌 일상의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김석만 감독)

'세종조 회례연'은 2009년 국립국악원의 국가 브랜드 공연으로 개발된 것이다. 2009년 국립 국악원 무대에 올려진 뒤, 올해에는 국립국악원 창립 60주년을 맞아 실제 회례연이 벌어졌던 경복궁 근정전으로 무대를 옮긴 셈인데…. 5월 하순의 오후 4시,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그 시간은 회례연을 재현하기에 그다지 적당한 때는 아니었던 듯싶다. 오히려 그윽한 달밤이었더라면 아악의 선율이 더 유려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익숙지 않은 우리 문화 회례연을 한 번에 다 이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아쉬움은 크지만 박제된 문화가 아닌 살아 있는 일상으로 고궁이 활성화되었으면 합니다." (김석만 감독)

회례연 재현 행사에는 수많은 내국인과 외국인 관객들이 함께 했다. 미국에서 온 크리스티는 국악원에서 사물놀이를 배울 정도로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회례연에 관한 설명이 부족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회례연 재현 행사에는 수많은 내국인과 외국인 관객들이 함께 했다. 미국에서 온 크리스티는 국악원에서 사물놀이를 배울 정도로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회례연에 관한 설명이 부족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 문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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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휑하니 빈 근정전에서 스태프들이 악기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홉 살 인생은 그제야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데. 히죽 웃는 아이의 모습을 담는 엄마의 카메라에는 연속 촬영 기능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 하지만 다음번에도 고궁에서 시간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두말없이 따라올 거란 믿음이 생겼다.

580여 년의 시간 여행, 그 귀한 경험을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태그:#세종조 회례연, #아이, #아홉살 인생, #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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