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부와 미군이 하는 조사방식은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은폐하고 숨기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민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구경북의 시민단체들과 야당은 29일 오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역 광장에서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매몰범죄 진상규명 촉구대회'를 열고 진상규명에 민간조사단이 참여할 것과 전국의 모든 미군기지에 대한 전수조사 착수를 촉구했다.

대구경북 43개의 시민가회단체와 야당으로 구성된 '왜관미군기지 고엽제 매몰범죄 진상규명 대구경북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주최로 열린 이날 촉구대회에는 왜관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수사와 신부 20여명 등 400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대책위는 "고엽제의 매몰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조사단에 시민단체와 칠곡주민들이 동의하는 민간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며 "매몰지로 의심되는 헬기장을 직접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경북진보연대 백현국 상임대표는 "단순한 반미감정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조사단을 구성해야 한다"며 "헬기장을 파헤쳐서 고엽제 유무를 밝혀야 하고 미군은 한미군사협정(SOFA)을 이유로 정확한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며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왜관 성 베네딕도 고진석 이사악 신부는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범죄 진상규명을 정의, 생명, 평화의 3가지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며 "평화를 빌미삼아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무력과 폭력을 확고하게 배격한다"고 말했다.

고 신부는 또 "고엽제는 인간의 원초적인 폭력성이 숨어있는 배트남전이 낳은 사생아"라며 구시대의 유물로서 영원히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국과 한국 정부가 진실을 외면하거나 은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밝히고 원래 그대로 되돌려 놓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국회의원은 "전국의 주한미군 기지내에 있는 환경폐기물 매립에 대한 즉각적인 전수조사와 함께 정부와 국회는 SOFA 재개정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농민회 경북도연맹 신택주 의장은 "칠곡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농민들은 고엽제 문제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고 이미지가 나빠져 무척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고 있다"며 "농민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사과도 한 번 받은 적 없다"며 정부와 미군의 보상과 사과를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왜관역에서 캠프 캐럴 후문을 거쳐 칠곡군청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캠프 캐럴 후문 앞에서는 미군 측에 영어로 작성된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고엽제 진상규명' 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기도 했다.

이날 백현국 대표는 캠프 캐럴 후문에서 미군측이 항의서한을 받아주질 않자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 땅에 파묻힌 독극물의 진실을 요구하는데 왜 안 받아 주느냐"고 항의하며 전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반바지를 입은 미군 병사가 서한을 받아 돌아서자 성의가 없다는 참가자들의 지적이 나왔다.

한편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는 오후 5시 30분부터 미군기지 주변의 주민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민들을 상대로 한 고엽제 매몰지에 대한 진실과 규명을 촉구하는 설명회를 개최하고 앞으로 주민대책위와 진상규명에 함께 나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