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시장 입구
 전시장 입구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권기철, 김결수, 김난영, 김남희, 김영호, 김옥연, 김욱한, 김은호, 김준용, 김향금, 노금애, 노상동, 류종필, 박분자, 박위호, 서정원, 석용진, 안광식, 양대일, 양준호, 왕교환, 이미란, 이성훈, 이종용, 이태호, 임부열, 장만규, 전일주, 정경상, 정자윤, 정준호, 최수환, 그리고 선진 스님.

이렇게 쟁쟁한 33인의 화가들이 지난 5월 23일부터 무애(無碍)를 주제로 내걸고 연 '하루헌과 친구들전'이 내일(5월 30일) 드디어 끝난다. 대구광역시 동구의 문화체육회관 전시실에서 손님들을 맞이한 지 여드레만이다. 그렇다면, 전시회를 열면서 33인의 화가들이 내걸었던 '주제'도 덩달아 막을 내리는 것일까.

전시회에 참가한 화가가 33인이라는 사실이 먼저 호기심을 끈다. 왜 그렇게 33인으로 맞추었을까? "33"하면 대뜸 연상되는 기미독립선언문과도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전시회를 주도한 선진 스님에게 여쭙는다.

"맞습니다. 독립을 선언한 33인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독립을) 선언하셨듯이 우리도 무엇인가를 기원하자는 취지가 내포되어 있지요. 무애(無碍)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함께 나서자는 것입니다."

선진 스님의 '點心'. 2011년 작품이다.
 선진 스님의 '點心'. 2011년 작품이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할 때 누가 동참하였는가. 특정 세력만이 아니었다. 천도교,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학 등 모든 갈래의 지사들이 대동단결하여 일어섰다. '하루헌과 친구들전'도 그 정신을 이어받자는 것이다. 팸플릿의 '모시는 글'을 읽어본다.

생명 환경 평화를 모토로 작은 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하루헌과 친구들이 '무애'를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종교, 빈부, 좌우, 남북, 미추, 거래의 갈등과 대립, 시비, 분별을 넘어 둘이 아닌[不二]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융섭(融攝)으로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무애전'을 갖고자 하오니 두루 동참하시어 연화장법계의 장엄세계로 다함께 유희삼매 이루시기를 기원하나이다.

어렵다. 그래도 전혀 모르는 채 넘어갈 수는 없으니, 스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대강을 헤아려 본다. 아마도 서로 다투고 헐뜯고 파괴하는 사이가 아닌, (대동단결로 독립선언을 했던 것처럼) 모두가 하나되어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뜻이리라.

양준호 화가의 'WE HAVE 4 COPPER'. 54*63cm. 2011년 작품. 사진은 팸플릿에 실려 있는 작품을 스캔한 것이다.
 양준호 화가의 'WE HAVE 4 COPPER'. 54*63cm. 2011년 작품. 사진은 팸플릿에 실려 있는 작품을 스캔한 것이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전시회에 참여한 '친구들'이 33인인 까닭도 이제는 어슴프레 이해가 된다. 우리 나라에서 숫자 3이 가지는 각별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다. '삼'신할미, 만세'삼'창, '삼'박자, '삼'복(초복, 중복, 말복), 시조의 '삼'장(초장, 중장, 종장), '삼''세'번, 고구려의 '삼'족오, 훈민정음의 '삼'재(하늘, 땅, 사람), 조선조의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3은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셀 때의, 둘보다 하나 많지만 넷보다는 하나가 적은, 그 단순한 '셋'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있으면 우주 '삼'라만상이 된다고 믿었다. 2(음양)에 하나(1)를 더 보태어야 3이 된다는 것은 그 3이 곧 무한이라는 의미 아닌가. 하루에 세번 반성하라[一日三省]는 격언도 그저 '3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성찰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시회 참여 33인의 화가는 세상 사람 '모두'를 상징한다. 우리 '모두'가 생명과 환경,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무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함께 동참하자는 뜻이다. '모시는 글'에 나오는 '두루 동참'이라는 표현은 결코 의례적 언어희롱이 아니다. 공간적 제한 때문에 '친구들'을 33인으로 한정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김준용 화가의 작품 '자연image'. 116.8*116.8cm. 2011년 작품. 사진은 팸플릿에 수록된 작품을 스캔한 것이다.
 김준용 화가의 작품 '자연image'. 116.8*116.8cm. 2011년 작품. 사진은 팸플릿에 수록된 작품을 스캔한 것이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보현암 주지인 선진 스님은 1959년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이미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연 전문 작가이다. 2006년과 2007년에는 '앞산 살림을 위한 문인화전'과 '앞산 살림을 위한 옴 부채전'을 열기도 했다.

스님은 보현암을 스스로 '하루헌'이라 부른다. 어찌何(하)에 좁을陋(루)와 집軒(헌)을 붙인 이름이다. '어찌 누추한 집(이라고 하겠느냐)' 정도의 뜻이다.

'보현암 주지'라고 하니 통상의 작은 사찰 주지스님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암'에 가보면 출입문 좌우에 보현암 현판과 함께 '마음청정 국토청정'이라는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앞산 살림을 위한' 개인전을 두 번 연 이력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스님은 '어찌 누추한 집이라고 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지만, 보현암은 정말 좁고 남루한 집이다. 밖에서 얼핏 훔쳐보아도 비바람이 자유자재로 드나들 형편인 게 단숨에 짐작될 지경이다. 담장과 집채가 붙어 있고, 지붕과 처마는 삭아 있으며, 마당도 제대로 없다. 스님은 '(집은 비록 남루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그렇지 않으니) 어찌 (보현암을) 누추한 집(이라고 하겠느냐)'며 자족하고 계실 뿐인 것이다.

스님의 '하루헌'. 어찌何에 좁을陋와 집軒이 이어졌으니 대략 '어찌 누추한 집(이리오)' 정도의 뜻이다. 경제적으로는 누추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스님의 뜻인지, 여쭈어 보지 않아 알 수 없다. 실제로 보현암은 큰 교회 건물 사이에 (비가 새는 옛날집 그대로) 있다. 오른쪽 사진의 동그라미 안이 스님의 하루헌인 보현암이고, 좌우의 높은 빌딩은 교회 건물이다.
 스님의 '하루헌'. 어찌何에 좁을陋와 집軒이 이어졌으니 대략 '어찌 누추한 집(이리오)' 정도의 뜻이다. 경제적으로는 누추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스님의 뜻인지, 여쭈어 보지 않아 알 수 없다. 실제로 보현암은 큰 교회 건물 사이에 (비가 새는 옛날집 그대로) 있다. 오른쪽 사진의 동그라미 안이 스님의 하루헌인 보현암이고, 좌우의 높은 빌딩은 교회 건물이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하루헌과 그 친구들전'은 곧 막을 내린다. 하지만 33인의 무애 세상에 대한 꿈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앞으로 더욱 활활 뜨겁게 타오를 게 자명하다. 그리하여, 어느 누구도 감히 그들의 숭고한 뜻을 누추한 춘몽(春夢)에 불과하다고 허투루 폄하할 수 없도록 세찬 불기둥이 되어 솟구치리라.

일찍이 허균은 '陋室銘(누실명)'에서 '집은 겨우 벽만 세웠지만 온갖 책 갖추고 차 반 사발 따르고 향 한 대 사르며 그 속에서 마음 안온하고 몸 편안하다.'면서 '정말 누추한 것은 몸과 명예가 모두 썩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선진 스님도 아마 같은 생각일 것이다.  
.
박위호님의 작품. 전시장에 걸려 있는 작품을 촬영한 것이니 원작과는 이미지가 같을 수 없다.
 박위호님의 작품. 전시장에 걸려 있는 작품을 촬영한 것이니 원작과는 이미지가 같을 수 없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태그:#하루헌, #선진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