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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또라는 은영이를 '언니 언니'하면서 쫒아 다닌다. 새날학교 안에서 셰계는 하나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은영이와 온또라는 친자매 같다.
▲ 만주에서 온 은영이(왼쪽)과 방글라데시에서 온 온또라 온또라는 은영이를 '언니 언니'하면서 쫒아 다닌다. 새날학교 안에서 셰계는 하나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은영이와 온또라는 친자매 같다.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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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직장을 퇴직하고 나서 다문화 대안학교인 광주 새날학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지도 어언 일 년 반이 다 되어 간다. 남들은 퇴직 후에 좋은 직함을 가지고 돈도 벌고 또 다른 사람들은 골프도 치면서 어울리며 다니지만 나에게는 그런 일은 맞지 않는 듯싶다. 나는 명예, 돈에 더 욕심 부리고 싶지 않고 다시 조직생활 같은 것에 얽메이고 싶지도 않다. 그냥 여기 새날학교를 내 놀이터로 생각하며 애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운동장에 풀을 뽑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보낸다.

남들은 은퇴 후에 삶이 외롭다는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 쌓은 인간관계가 점점 끊어지다 보니 은퇴자들은 우울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서운하기도 하고 그렇다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과 어울리니 외롭지가 않다. 그럭저럭 내 삶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 은영이와 온또라가 있다. 은영이는 만주에서 온 16살의 조선족 소녀이다. 그리고 온또라는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일하러 온 부모를 따라 왔다. 온또라는 7살의 여자 어린이다.

요즈음 우리 한국의 아이들은 어떤가. 애들이 너무 영악해 졌다. 길을 물어 보아도 퉁명스럽고 불친절하다. 왠지 학교생활에 피곤하고 찌든 얼굴들이다. 이렇게 된 게 애들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 아이들에 해를 끼치는 어른들의 범죄 등으로 인해 애들에게 낮선 어른은 경계의 대상일 뿐이다. 이에 우리의 애들은 더 이상 50년대 60년대의 나물 캐던 우리의 누이, 순박하고 고왔던 순이의 마음은 사라져 버렸다.

만주는 우리 고구려의 옛 땅이다. 나는 재작년에 백두산을 가는 길에 연길을 들렀다. 연길에서 백두산 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없는 너른 들과 산들, 무엇보다도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좋았다. 우리 땅은 사실 너무 난개발이 되어 어디를 가도 시멘트 구축물들로 꽉꽉 들어 찬 느낌이다. 답답하다. 그러나 만주에는 광활하면서도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우리 조선족들이 우리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며 살고 있었다.

북만주에서 온 소녀 은영이는 오염되지 않은 우리 50-60년대의 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순박하고 마음 씀씀이가 예쁘다. 은영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외할아버지가 중국에서 화가란다. 아마 외할아버지의 소질을 받아서 그림을 잘 그리나 보다. 내가 스케치북을 사다주면 다 그려 가져와서 이것저것 설명을 하며 보여준다. 은영이의 그림 속에는 동화속의 공주. 왕자, 궁전들이 다 나온다. 은영이의 그림들은 동화속의 나라다.

어제 밤에는 내 헨폰에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저 은영인데 뭐 해요.'

은영이에게서 온 메시지다. 울적하다가도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애들이 다 자라 부모 곁을 떠나고 우리 부부 둘이 사는 데 내가 낳은 애들도 저들이 바빠서인지 전화를 잘 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니 애들의 전화가 무엇보다도 그리운 게 사실이다. 은영이의 메시지가 울적한 마음을 달래 주었다.

또 한명의 방글라데세에서 온 온또라가 있다. 생긴 것부터 까무잡잡한 얼굴에 귀엽고 예쁜 인도인형같다. 우리 방에는 은퇴하시고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새로 온 애들에게 기본을 가르쳐서 반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온또라도 우리 방의 여선생님이 한글을 가르치시는 데 7살 먹은 애가 너무 열심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손을 잡고 졸졸 따라다닌다. 아침에 선생님을 보면 '선생님'하면서 품에 안긴다. 하는 것들이 왜 그리 귀여운 짓만 하는지 우리 방 선생님들이 모두 '너는 어데 가든지 예쁨 받고 살겠다'고 한다.

하루는 온또라 담당 선생님이 안 나오셔서 내가 좀 가르쳐 주었더니 나를 졸졸 잘 따른다. 온또라는 매일 사과에 포도를 섞은 간식거리를 싸온다. 그 날 온또라는 수시로 '선생님'하면서 그 것들을 내 입에다 넣어 주었다. 오후에는 내 차로 온또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온또라는 내비게이션이었다. 이리저리 손짓 하더니 어느 공장에서 '집, 집'이라는 것이다. 부모들이 일하는 공장에 딸린 집에서 사는 것이리라. 걱정스러워서 문안에 들어가는 것 까지 보고 차를 몰고 가는 데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온또라가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새날학교의 우리 방, 은퇴하신 선생님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7살 먹은 손녀 같은 온또라의 재롱 보는 재미로 산다. 웃을 일 별로 없는 우리에게 온또라는 자꾸 웃게 만든다. 온또라의 몸짓 하나하나가 우리 선생님들의 대화의 소재 거리다.

온또라는 오늘도 은영이를 '언니, 언니'하면서 쫓아다니며 개구쟁이 노릇을 한다. 북만주에서 온 은영이와 방글라데시에서 온 온또라가 친 자매처럼 잘 노는 것을 보며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온또라의 노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 아이들 웃음소리는 우리 중늙은이들에게 행복감을 안겨 준다.

은영이는 아마 한국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온또라는 부모들을 따라 방글라데시로 돌아 갈 것이다. 앞으로 은영이가 아름답고 순박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온또라는 방글라데시에 가서 자라며 한국에서의 삶을 좋은 추억으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방글라데시에서 성년이 되어서도 참 좋은 어른들이었다고 오래오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태그:#새날학교, #만주, #방글라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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