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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지기들의 텃밭을 방문할 때는 마음이 설렌다. 내 텃밭만 너무 단순하고 남성적이지 다른 분들의 텃밭은 아주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며 볼 것도 많다. 이 텃밭은 대청호 옆에 있다. 우리밭에서 오미자 뿌리를 조금 가져가서 심었기에 그물망도 가져다주고 지황도 얻어 올 겸 해서 방문했다.

길 없는 땅을 샀다기에 걱정했는데 자동차 길만 없을 뿐이지 호적한 숲길이 아주 좋다. 지금은 찔레꽃이 피어있어 꽃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살짝살짝 멈추며 걸었다. 200m쯤 걸어 들어가니 산으로 감싸 안은 복조리 모양의 넓은 땅이 나온다. 이웃 농부도 세 명이나 있을 정도로 넓다.

사람들은 이 땅을 맹지라고 한다.그래도 꿈꾸는 농부에겐 세상에서 제일 멋진 땅이다.
▲ 깊은 숲 속의 땅 사람들은 이 땅을 맹지라고 한다.그래도 꿈꾸는 농부에겐 세상에서 제일 멋진 땅이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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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은 축성의 달인이었단다. 그 텃밭에 갔더니 거기 고구려인의 후예가 있었다. 쌓아놓은 돌 축대를 보고는 지황을 캐기 위해 간 목적도 다 잊을 정도였다. 작년 이 밭을 개간하며 나온 돌로 요모저모 쌓았다는데 혼자 했다는 게 믿기질 않을 정도다.

사람 한 명의 몇 달 노동으로 이 정도 해 낸다면 공동체가 힘을 합하면 피라미드도 만리장성도 거뜬하게 쌓고도 주리가 남을 정도다. 우리가 고대 유적지를 볼 때 드는 한결같은 생각이 '오늘 날과 같은 기계장비도 없이 도대체 이 거대한 돌덩이를 어떻게 옮겼을까? 혹 외계생명체의 도움을 받았을까?' 하는 등등인데 이런 의심이 다 사라질 지경이다. 오직 손과 간단한 도구만으로도 동료들과 힘을 합하면 못 만들 게 없겠다. 삽 한 자루로 이렇게 성을 쌓는 농부도 있지 않은가!

하나 하나 주워서 올려놓다 보니 이렇게 성이 되었다.
▲ 축성의 달인 나시다. 하나 하나 주워서 올려놓다 보니 이렇게 성이 되었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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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대를 만들면서 갈비뼈 세 대에 금이 갔고 삽 세 자루가 못 쓰게 되었다는 이웃 농부. 지름 1m도 넘어 보이는 이 바위는 4m를 옮겼는데 삽 한 자루와 작은 돌의 도움으로 물리적 법칙을 적용시켜 옮겼단다. 너무 힘들어 하루 일 미터를 옮기고 나면 일주일 쉬고 또 일 미터 옮기고…. 해서 근 한 달 만에 제자리를 찾아주었다고 말한다.

물이 자꾸 새는 바람에 여러 번 손을 봐야 했다.
▲ 손수 다듬은 연못 물이 자꾸 새는 바람에 여러 번 손을 봐야 했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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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은 집을 지을 때 연못도 만들었다. 우주를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을 만들고 가운데 봉래산을 의미하는 봉긋한 작은 동산도 만들었는데, 이 농부는 그런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냥 내키는 대로 만들었다는데 천지사방 품은 네모난 연못지에 돌과 흙으로 둥근 섬도 앉혔다. 가운데에는 대나무를 심을 것이란다. 뻗어나가는 대나무 뿌리가 감당이 안 될 것 같기에 물로 경계를 삼아주면 좋을 것 같아 그 곳을 대나무 자리로 삼았다.

나무를 심는 농부는 십 년,이십 년 내다본다.그래서 나무심는 농부는 미래를 산다.
▲ 꿈꾸는 농부 나무를 심는 농부는 십 년,이십 년 내다본다.그래서 나무심는 농부는 미래를 산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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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텃밭이 있는 곳은 구석기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대전시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보는 구석기 유적지다. 이곳에서 슴베찌르개도 나왔다. 그 옛날 이 땅을 지키며 살던 사람들도 이렇게 주먹도끼나 나무로 만든 간단한 도구만으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어 땅을 개척하며 살았을 것이다.

텃밭이라고 부르기엔 제법 넓은 이 땅을 장만하는데 15년이 걸렸단다. 뭉텅이 돈을 가지고 투기를 하는 것이 아니면 땅을 장만하기 쉽지 않다. 땅은 농부가 되려는 사람에게 가혹하리 만큼 비싸다. 전업농부가 되어 이 땅을 일궈보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다. 아이들을 키워내야 하고 생활도 해야 한다.

텃밭농사를 짓는다면 남들은 호사 부린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꿈을 쫒아 사는 것이다. 십 년, 이십 년 뒤를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땅을 일구는 거다. "일주일에 5일은 가족을 위해 일하고 이틀은 나를 위해 일하니 힘들지 않아요" 들일 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우리도 이만하면 중독자다.

걸인의 찬에 황후의 밥상이다.
▲ 풀밭위의 식사 걸인의 찬에 황후의 밥상이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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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쯤에는 심어 논 온갖 나무와 꽃들이 자리를 잡고 피어날 것이다. 그때는 손수 다듬은 연못에서 피어난 연꽃으로 만든 차를 대접받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화살보다 빠르게 흐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다.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면 시간을 쫓아가는 삶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곳에서 도끼자루가 섞는 줄도 모르고 산들 뭐 대수겠나!


태그:#텃밭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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