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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진 씨 혹시 나 좋아해요?"
"띵똥. 그래서 수치스러워. 지금은 고백이 아니라 자백이야. 네가 끈질기게 찌질찌질 알짱알짱거려서 울렁울렁거리게 고문하니까 버티고 버티다 자백한 거야"

"못돼 처먹어서 그 나이에 겨우 하는 첫사랑 끝까지 짝사랑일거에요! 나는 독고진을 절대로 절대로 좋아해 주지 않을 거니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수치스러운 천상천하 유아독존 톱스타 독고진(차승원 분)의 자백. 하지만 한물간 전직 아이돌이자 생계형 연예인 구애정(공효진 분)은 꿈꾸면서 설레고 싶지 않아 절대로 좋아해주지 않을 거라 협박한다. 전 국민이 사랑하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국민 호감 1위 남자와 모두가 욕하는, 매도된 국민 비호감 여자 두 사람의 순탄치 않은 최고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5월 4일 처음 전파를 탄 MBC 수목 드라마 <최고의 사랑>은 비슷한 시기 시작한 지상파 3사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들 중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엇비슷한 윤은혜표 로맨스가 지겹다는 반응의 SBS 월화드라마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비롯해, 돌아온 장나라 파워가 무색한 KBS 2TV 월화드라마 <동안미녀>, 성유리의 신데렐라 신파 수목드라마 <로맨스 타운> 모두 4-6회 방영을 마친 현재 로맨틱 코미디를 기다려 온 시청자의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여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들이 주춤하는 가운데 <최고의 사랑>이 두각을 나타내는 건 상대적 반사효과가 아니다. 노래나 프로그램은 제목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최고의 사랑>은 5,6회가 방영된 지난주 AGB닐슨 리서치 수도권 기준 시청률 16.2%, 17.5%로 방송 3주 만에 2위를 기록했다. 5월에 쏟아져 나온 로맨틱 코미디들 중 왜 <최고의 사랑>일까.  


똥고 독고진을 탄생시킨 홍자매의 뻔뻔한 로맨틱 코미디 감각

독고진과 구애정의 로맨스도 갈등과 오해로 뒤섞인 위기를 극복하면서 더욱 공고해지는 사랑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따르고 있다. 초절정 훈남에 완벽한 스펙의 바로비터 남 윤필주(윤계상 분), 애정과 함께 국보소녀로 활동했지만 확연히 다른 처지로 잘나가는 연예인이 된 강세리(유인나 분)가 형성할 4각 관계 역시 멜로에 빠져서는 안 될 공식요소다.
 
식상해질 대로 식상해지고 번번이 시청자들의 짐작가능한 수준에서 아옹다옹하는 로맨틱 코미디. 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이 이 '뻔하다'는 평가에 동력을 잃어 지지부진해지기도 하지만 <최고의 사랑>은 오히려 이 '뻔함'을 쿨하게 인정한다. 연애와 사랑이란게 저마다의 색은 다를지 몰라도 결국은 비슷비슷한 모양임을 안다는 듯, 되레 더 뻔뻔하게 나간다. 

사실적 표현이라는 한계를 허물고 온갖 드라마적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오히려 진짜 코믹과 리얼 로맨스를 구현하며 뻔한 로맨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6회분에서 애증 관계인 애정과 세리의 닭싸움 장면에 '홀리데이'를 배경으로 깔아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속 박중훈과 안성기의 비장한 대결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처럼 로맨틱 코미디이기에 때문에 가능한 재미들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보소녀'의 조금은 유치한 듯한 노래 '두근두근'이나 애정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독고진의 마음을 대변하는 MBC 종영 드라마들 제목들의 등장 등 능수능란하게 패러디를 감행하고, 극적인 상황들을 더욱 극적이고도 재미있게 만드는 감칠맛 나는 대사들 모두 시청자들이 더 이상 드라마의 현실성을 놓고 가타부타 하지 않음을 알아챈 홍자매의 감각이다.
 
2005년 <쾌걸춘향>을 비롯해 <환상의 커플>, <미남이시네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등 홍정은, 홍미란 자매 작가가 쓴 작품들 모두 리얼리티 보단, 재미를 극대화하면서도 이질감이 들지 않게 만드는 센스로 인기를 끌었다. 이는 <환상의 커플> 속 안나조 (한예슬 분)이나 <미남이시네요> 속 황태경 (장근석 분)처럼 로맨틱 코미디물의 캐릭터가 한층 더 자유로워지면서 결국 드라마 자체가 탄력을 받을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최고의 사랑>에서 똥고 독고진의 지분은 실로 막대하다. 

아~암, 독고진도 사랑은 어렵지

유치하든 비현실적이든 로맨틱 코미디에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을 허락한 만큼 진정성 있는 사랑, 로맨스는 필수적이다. 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이 탄탄한 캐릭터와 코믹한 요소로 유쾌하고 흥미롭게 드라마를 끌어갈 수는 있지만, 그 장난스런 요소들을 통해 시청자가 공감하는 사랑을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구애정이 어려워. 하나도 안 쉽고 아주 어렵다고". 6회분 <최고의 사랑>은 한 줄의 대사로 이 로맨틱코미디가 결국 진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데 성공했다.  팬들 앞에서는 완벽한 이미지 관리로 자상하고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독고진은 자신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구애정에 대한 마음이 수치스럽다고, 고백이 아닌 자백을 한다.
 
 물론 자신의 고백을 당연히 영광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뻑왕자 독고진의 마음을 나타내는 대사이기도 하지만 사랑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혼란스러워지는, 이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사랑의 심리를 제대로 묘사한 대사이기도 하다. 시청자 모두 독고진이, 구애정이 되는 순간 드라마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시작된다.   


<최고의 사랑>은 독고진의 고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 5회분에서 시청자로 하여금 진정성 있는 사랑을 공감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자신의 사랑을 거절한 구애정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들려준 독고진의 '동백꽃'은 홍자매가 보여주는 사랑의 또 다른 패러디다.
 
독고진은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소년이 건넨 감자를 소녀가 뿌리치자, 심술이 난 소년이 소녀집 애꿎은 닭을 괴롭히는 '동백꽃'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괴롭힐 구애정의 닭을 찾겠다 선포한다. 똥꼬 독고진의 사랑이 동백꽃 속 소년의 순수한 감정으로 대변되는 순간이다. "난 기럭지만큼 뒤끝이 길어서 쿨 하지 못해, 비위가 약해 잘 해줄 마음도 없어. 내가 가장 잘 하는 방법으로 구애정 네가 떨리게 해줄 거야". <최고의 사랑>은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시청자의 공감도 최고로 이끌고 있다.
16부작 드라마의 1/3이 지나가는 시점에 주인공들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 정석이듯, 6회를 마친 <최고의 사랑> 속 완만했던 4각 관계에 오해가 생겨나고 갈등이 시작됐다. 이 과정이 더욱 심화되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아가다 결국 해피엔딩을 만들어가는 로맨틱 코미미디의 뻔한 수순이 <최고의 사랑>역시 기다리고 있지만, 구애정에게 똥꼬 독고진이 동백꽃이 됐듯 그 과정은 시청자에게 더 이상 뻔하지 않다. 세상의 모든 뻔한 사랑이야기도 자기 이야기가 됐을 땐 가슴 졸이고 마음 아픈 '유일한' 로맨스가 되듯 말이다.

태그:#최고의 사랑, #독고진 , #구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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