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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시장이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지정된 결정적 요인은 주변에 골목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다는 점이다. 통 좁은 골목길에 있는 할머니 칼국수, 아줌마 김치찌개, 아저씨 만두가게가 상생을 이어가고 있다. 141곳의 각 점포 상인들은 이처럼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을 존중하면서 오늘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힘찬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또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23일 월요일 오전 10시께,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을 마주하고 있는 송현시장을 찾은 느낌이다. 말로만 들었던 인천의 추억의 현장을 눈으로 담고자 직접 방문했는데 역시나 1960년대 풍경 그대로의 후덕한 인심과 사람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좁고 복잡한 도로를 지나 한참을 헤맨 후에 찾은 송현시장 입구는 '송현시장 시장투어 관광사업 선정 경축'이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채소와 나무 모양의 예쁜 입간판에 '햇살이'라는 푯말이 정겨움을 더해주었다.

 

이어 눈에 띈 것은 가지런히 정렬된 상점의 목재 간판과 상점을 상징해주는 갖가지 모양의 그림 간판이었다. 송현 재래시장의 2008년도 이전의 모습은 여느 시장과 마찬가지로 낡고 칙칙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후 중소기업청이 국비를 들여 지역문화와 주변 관광자원을 연계한 전통시장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육성, 지원하는 것에 선정돼 총 48억 원을 지원받아 시설 현대화 사업에 착수했다.

 

2008년 10월에는 이와 연계해 인천시와 동구가 추가로 시·구비 32억 원을 들여 1960~1970년대 인천의 서민 생활상을 보존·전시하고 있는 수도국산 박물관과 배다리 헌책방거리 및 전통공예상가와 연계한 워킹-투어 코스로 개발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한 주의 첫 날을 맞아 상인들은 저마다의 아침을 준비하면서 상품을 진열하며 음식을 데우고 있었고, 조금 어두운 날씨에 형형색색의 미등을 켜놓은 시장의 모습이 더욱 로맨틱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마치 대형마트의 크고 화려한 네온사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상점을 상징하는 목재간판에는 각각의 상품에 따라 가마솥·돼지 얼굴·배추·떡 그림 등이 손님을 먼저 맞이하였으며, 길게 늘어져 있는 상점을 비집고 앉은 할머니들이 막 수산물 시장에서 떠온 것 같은 바지락과 꼬막 살을 발라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동서남북에서 들어올 수 있는 출입구가 있는 송현시장의 중앙 통로를 지나자 '우리가 바라 본 송현시장'이라는 타이틀의 사진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은 송현시장의 옛모습과 바뀌어가는 중간 모습, 그리고 지역주민 및 상인들과 함께 했던 공동체 작업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걸려 있는 사진 중에는 '대책없는 개발사업 가정해체 웬말이냐', '억울해서 못나간다, 생계대책 책임져라', '강고한 연대투쟁으로 생존권 쟁취하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온 동네 주민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싸우는 모습의 역사적 현장도 담겨져 있어 한참 재개발 문제로 갈등을 빚던 예전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여기저기 시장을 둘러보아도 역시나 재래시장의 재미는 흥정의 현장이다. 큰 미역 하나에 7000원에 판다는 할머니의 말에 '뭣이 7000원이오, 5000원이면 되겠구만'하며 깎아달라는 손님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시장 곳곳을 얼추 구경한 후, 아는 지인이 벽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현장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생각보다 쉽게 찾은 현장은 벌써부터 나온 한 예술가의 땀방울이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이곳은 송현시장의 사랑방인 '솔마루'가 있는 곳으로 3일전부터 외벽 벽화작업이 한창인 현장이었다.

 

그 곁으로 마주하고 있는 솔마루사랑방은 고즈넉한 조용함을 머금고 시장 상인들의 쉼터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고요한 음악, 작은 도서관, 1000원의 찻값은 누구보다 상인들을 위해서 만든 공공의 카페였다. 이곳이 바로 1000원의 행복이 그대로 풍겨나는 공간이리라.

 

외벽에 칠해놓은 자연 채색의 바탕 그림과 그 앞으로 피어난 녹색 바탕의 나무 색깔이 묘한 대비를 이루어 보기가 좋다.

 

모퉁이를 돌아 시장 한 복판으로 가보니 우물터 설치물이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여기가 바로 송현시장 50년 역사를 증명해주는 곳이라고 인근 상인이 안내해준다. 어느 길로 들어와도 자연스럽게 만나는 이 우물터는 1960년대부터 상인들의 주요한 식수이자 빨래터로 쓰여진 곳이다. 현재는 설치미술작품으로 대체되어 있지만 아직도 그 물은 흐르고 있단다.

 

우물터는 지나자 도로 한 쪽 벽면에 빨래터에서 아이들 들쳐 업고 빨래를 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예전에는 한 겨울에도 이런 모습으로 상인들은 생활고를 이겨내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을 것이다.

 

송현시장을 구경한 후 잠시 바깥 도로로 나와 쉬고 있는데 반대편 중앙시장 오른쪽으로 건물 부수는 소리가 눈길을 잡는다. 이곳은 동인천역 북광장 세입자들이 얼마전까지 생존권 싸움을 하며 처절하게 투쟁했던 현장인데, 다행히 얼마 전 민주노동당 출신의 조택상 동구청장과 합의를 보며 새로운 보금자리로 탈바꿈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옆쪽으로 자리 잡은 중앙시장을 잠깐 가보니 그야말로 송현시장과는 대조적으로 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은 지금도 양키시장(수입의류)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좁디좁은 골목길에 나있는 순대 거리가 특이해 보였다.

 

인근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던 한 상인이 기자에게 한 말이 많은 여운을 남겼다.

 

"1936년 송현동에 양철지붕을 얹은 '송현 일품시장'을 열었는데 6·25전쟁 직후 그 인근에 미제 물건을 파는 '양키시장'이 들어서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양키시장에서는 탱크만 빼고 다 살 수 있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웃음)

1950년대 가장 큰 시장이었던 중앙시장은 동인천역에서 배다리까지 이어져 동인천역 뒷 편의 송현 자유시장과 송현 삼거리에 자리한 송현시장과 함께 큰 상권을 자랑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철거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동인천역 북광장 조성사업으로 중앙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태그:#인천 송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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