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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은 깊은 산속이나 텔레비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을 타고 다니거나 기네스북에 오르지는 않았더라도,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재주로 우리를 웃게 하는 생활 속의 달인들은 얼마든지 있죠. 혼자만 알고 있기는 너무 아까운 '생활의 달인'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지하철에서 잠자는 고등학생들. 모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다.
지하철에서 잠자는 고등학생들. 모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다. ⓒ 엄지뉴스

전국의 모든 중고생들의 필수품인 '삼디다스'를 아는가? 우리나라 슬리퍼 중 가장 많이 팔린 국민 슬리퍼인 '삼선슬리퍼'는 어느새 청소년 제화패션의 명품으로 군림하며 일명 '삼디다스'로 통하고 있다. 군청색 몸체에 흰 줄 세 가닥만 두른 단순무식한 디자인이 이토록 절묘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삼디다스는 (어떠한 강요나 조치 없이도) 전국 중고생들의 실내화 패션을 획일화하는 데 일조하였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삼디다스는 화장실용 슬리퍼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사실 '아디다O' 상표를 그럴싸하게 흉내 낸 짝퉁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하지만 브랜드 저작권에 굴하지 않고 초중고 그리고 대학에서도 그 인기는 식을 줄 모르며 하물며 회사 사무실에서도 애용되고 있다.

일단 저렴한 비용으로 부담 없이 신을 수 있다. 또 훔쳐가거나 없어질 확률도 극히 적다. 설령 분실해도 패배감이나 상실감이 덜하다. 또한 디자인은 얼마나 깔끔한가. 기교를 부리지 않은 단순한 디자인, 정말이지 교복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학교에서 실내화 대용은 물론 화장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심지어 외출할 때도 애용되는 필수품인 삼디다스. 남녀노소 공용에 탁월한 착용감, 두툼한 밑창의 완충효과, 착한 가격, 적당한 미끄럼 방지기능을 자랑하는 삼디다스는 '실내화의 대명사'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하버드생도, 국가대표도 신는 '삼디다스'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컴퓨터 천재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 분)가 신고 나온 삼선슬리퍼는 정품이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컴퓨터 천재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 분)가 신고 나온 삼선슬리퍼는 정품이었다. ⓒ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의 창시자인 하버드대의 컴퓨터 천재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 분)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2010). 주인공의 평소 취향까지 고려하여 평소 즐겨 입던 의상과 아이템을 그대로 적용한 연출력은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특히 단연 돋보이는 장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마크 주커버그가 신은 삼선슬리퍼다. '갭' 티셔츠에 삼선슬리퍼를 신은 '찌질한' 모습이 왜 이렇게도 친근하던지…. 낯익은 소품, 너 정말 반갑다.

어디 그뿐인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독일을 대표하는 수영선수들이 삼선슬리퍼를 신고 우아하게 대기하는 광경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전해졌다. 품질과 가격 차이가 꽤 있어 보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신는 삼디다스와 일단 외형은 같지 않은가?

우리 학생들이 하버드생이나 국가대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지 않은가. 이유를 불문하고 삼디다스는 이젠 어김없이 세계적인 패션 트렌드다.

 베이징올림픽 당시 삼선슬리퍼를 신고 우아하게 대기하는 독일 국가대표 선수들
베이징올림픽 당시 삼선슬리퍼를 신고 우아하게 대기하는 독일 국가대표 선수들 ⓒ MBC

너희가 이토록 '엣지' 나는 튜닝 삼디다스를 아느냐? 

하지만 '순정품' 그대로 신으면 2% 부족한 법.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삼디다스를 만드는 유행을 타고 학교마다 등장한 것이 바로 '삼전'('삼'디다스 튜닝 '전'문가)이었으니….

슬리퍼는 짝퉁일지라도 달인의 자존심상 디자인까지 그대로 흉내 낼 수는 없다. 고심 끝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시원한 구조 변경을 고민한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삼디다스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개조하는 달인의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품격 높은 '나'를 표현해내는 슬리퍼 리모델링 및 개조 전문가라 불리는 이른바 슬리퍼 튜닝의 달인이 바로 그들이다.

 삼디다스 튜닝 종결자
삼디다스 튜닝 종결자 ⓒ 마아영
며칠 전 평범한 삼디다스를 장만한 마아영(전남 광양 K여고 1년)양은 오늘도 어김없이 튜닝을 준비한다. 교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삼디다스 튜닝의 '종결자'인 마양은 신발패션 감각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선생님이나 선배들한테 크게 찍히지 않고 적당히 튀는 수준(?)을 명확히 짚어내기 때문이다.

"삼디다스 튜닝 시 가장 유념할 점은 하얀색 삼선 고유의 매력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는 것이죠. 슬리퍼 위에 명품 브랜드 로고를 그려 넣는 짝퉁 방식은 튜닝 축에도 들지 못해요. 무턱대고 했다간 놀림만 당하기 쉽거든요."

삼디다스의 가격은, 싼 것은 2천 원부터 시작하지만 그래도 '엣지' 있게 튜닝하려면 5천 원짜리가 적합하단다. 2천 원짜리는 깔창 부분이 특히 딱딱하므로, 부드러운 착용감을 원한다면 최소 5천 원짜리로 준비할 것을 권한다.

 삼선슬리퍼에 유명 브랜드  로고를 그려 넣는 짝퉁 방식은 튜닝 축에도 들지 못한다. '나이O' 상표를 그리지 않고 칼을 이용해 도려낸 튜닝방법이 오히려 반영구적이다.
삼선슬리퍼에 유명 브랜드 로고를 그려 넣는 짝퉁 방식은 튜닝 축에도 들지 못한다. '나이O' 상표를 그리지 않고 칼을 이용해 도려낸 튜닝방법이 오히려 반영구적이다. ⓒ 마아영
"그렇다고 5천 원을 넘어서면 그건 또 사치죠. 정품과 '비스무리해진다 해도' 그 돈이면 차라리 먹을 걸 사 먹겠어요. 어차피 (아디다O) 정품 가격은 10배도 넘으니까요. 혹시라도 몇 만 원짜리 오리지널 제품을 구입한다면, 하루하루를 분실의 위험과 불안 속에서 보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겠죠. 물론 튜닝할 필요도 없겠죠?"

마 양을 비롯한 튜닝의 달인들은 작업 시 주로 아크릴물감보다는 분무형 페인트를 더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준비물은 사실 별것 없지만 패션 감각이 튜닝 성공을 좌우한다. 세 줄로 된 삼선 하얀 부분을 투명 테이프로 정교하게 가린 후 나머지 부분에 락카를 뿌리거나 반대로 삼선 부분에만 뿌리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취향에 따라 스마일 무늬가 있는 압정을 슬리퍼와 발이 만나는 접촉면에 몇 개 박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포인트는, 슬리퍼가 고무재질이므로 탈색이나 변색을 방지하게 위해 마감재(니스) 락카를 뿌려준다.

이 방법으로 지난 올림픽 시즌 때는 금, 은, 동 3색의 삼디다스로 튜닝하여 친구들과 함께 신고 다니며 '올림픽 삼선 트리오'도 결성한 바 있다.

"가뜩이나 교복 모양도 똑같은데 슬리퍼마저 똑같은 걸 신고 다니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없잖아요. 요즘 고딩들 삼디다스는 분홍색이 대세죠. 오히려 남고딩들이 분홍색을 더 선호해요. 애들 반응도 장난 아니에요. 분홍색도 인기고 노랑색도 무난한데 특히 황금색이나 초록색은 사람들이 많이 안 신어서 신비주의죠."

블로그 세상의 튜닝 달인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개성표현

블로그 세상에는 더 많은 튜닝의 달인들이 있다. 이들의 번득이는 감각에 비하면 마 양의 실력은 그저 '특별한' 취미에 불과할 뿐이다. 간단한 검색만으로 찾아낸 블로그의 엽기 발랄한 삼디다스 튜닝 사진들은 감탄사를 자아낸다.

 블로그 세상에서 만난 튜닝의 달인들. 사진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흰색, 분홍, 노랑으로 삼선을 표현한 튜닝(http://blog.naver.com/on3696) ②바퀴를 달아 과학적 구상이 돋보이는 롤러 스케이트형. 실용성은 의문이다(http://blog.naver.com/myb07633_) ③스펀지 밥이 그리울 때(http://fhal67.blog.me) ④펄하트 매니큐어를 이용한 예쁜 삼디다스(http://blog.naver.com/assasweh)
블로그 세상에서 만난 튜닝의 달인들. 사진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① 흰색, 분홍, 노랑으로 삼선을 표현한 튜닝(http://blog.naver.com/on3696) ②바퀴를 달아 과학적 구상이 돋보이는 롤러 스케이트형. 실용성은 의문이다(http://blog.naver.com/myb07633_) ③스펀지 밥이 그리울 때(http://fhal67.blog.me) ④펄하트 매니큐어를 이용한 예쁜 삼디다스(http://blog.naver.com/assasweh) ⓒ 블로그

바퀴를 달아 과학적 구상이 돋보이는 롤러스케이트형 삼디다스는 '이게 과연 삼선슬리퍼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또 각각 흰색, 분홍, 노랑으로 삼선을 표현한 삼디다스나, 펄하트 매니큐어를 이용한 예쁜 삼디다스, 스펀지 밥을 그려 넣은 삼디다스 등은 그야말로 기발하다.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달인이 아니고는 상상도 못할 이 독특한 디자인과 강력한 포스는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혹시나 더러워지면 언제 어디서든 5분 내로 재작업도 가능하다. 게다가 똑같은 슬리퍼들 틈에 섞여 잃어버릴까봐 이름을 쓰는 수고까지 덜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일요일 밤 '아차~!'하며 뒤늦게 생각이 나 급히 빨아놓은 실내화가 행여 아침까지 마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도 없으니 금상첨화다. '달인'이라는 두 글자로 친구들 튜닝까지 책임지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게 친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뿌듯함까지 만끽한다.

'찍찍~' 소리를 내며 복도에서 소음공해를 유발한다거나 '찌~익' 하며 급정거라도 한다면 검은 고무 자국이 바닥에 남는다며 아직도 실내화를 고집하는 학교도 있단다. 튜닝의 종결자에 달인까지 등장한 삼디다스, 이젠 개성표현의 한 방법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리라.

삼디다스가 성장에 지장을 주거나 키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 주장도 별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슬리퍼 보행이 아이들의 성장판과 연관이 있다고 거론하는데, 글쎄다. 또 학생들이 삼선슬리퍼를 신으면 단정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편견에 불과할 뿐이다. 삼디다스 튜닝이야말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개성표현이리라.

그래도 삼디다스를 반대한다고? 그러는 당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천편일률적으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그 시절, 중학교 교복모자 모표가 번쩍번쩍 빛나도록 하루 종일 광약 바르고 천으로 닦고 손질하지는 않았었나.


#삼선슬리퍼#삼디다스#슬리퍼#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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