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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의 추억이 그리워, 또는 풀내음이 그리워 나는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앞 공원을 찾곤 한다. 사방에 난 잿빛 그림자와 메케한 연기를 내뿜는 자동차가 있어도, 초여름을 맞은 이곳은 온통 연둣빛과 초록빛 물결을 이뤄주기 때문이다. 온종일 집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에게도 이곳은 천국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조용하면서도 지저귀는 새 소리는 경쾌하게 들려오고, 바람에 넘실대는 나뭇잎은 스산함 대신 여유롭다.

처음 만들어본 것이라 어설프긴 하지만, 아이의 눈엔 엄마가 만든 꽃 왕관이 무척 예뻐보이나 보다. 아이의 머리 위에 살며시 씌워주고 사진을 찍었다.
▲ 토끼풀 꽃으로 만든 "꽃 왕관" 처음 만들어본 것이라 어설프긴 하지만, 아이의 눈엔 엄마가 만든 꽃 왕관이 무척 예뻐보이나 보다. 아이의 머리 위에 살며시 씌워주고 사진을 찍었다.
ⓒ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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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조용한 공원을 잠시 거닐어 본다. 철쭉과 산수유, 안개꽃과 목련은 진 지 오래, 공원 여기저기에는 긴 생명력을 자랑하듯 민들레 꽃과 토끼풀만이 가득하다. 이제 막 땅 위로 뻗기 시작했을 토끼풀은 날씨 변화 탓인지 벌써 꽃을 둥글게 피웠다. 만발해있는 토끼풀 꽃을 보며 아이들이 달려간다. 주변이 온통 풀밭이니 유독 하얗고 동그랗게 피어 있는 토끼풀 꽃이 너무 예뻤나 보다. 물론 나마저 토끼풀 줄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흙냄새와 꽃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냄새에 흠뻑 취하기까지 했다.

그 순간 취기 탓인지, 지금껏 간직해온 내 작은 소원 하나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어린 시절 내 작은 소원은 예쁜 꽃을 꺾어다가 왕관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맞이한 소녀 시절. 당시 풋풋했던 나는 '풀잎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고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워주고파'라는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가 내 머리 위에 예쁘진 않아도 정성스레 만든 꽃 모자를 씌워주길 바랐다. 하지만 작은 소원이라 여겨졌던 내 바람은 생각지 못하게 힘든 일이었을까 그 누구도 이루어주지 않았다. 이젠 오직 내 가슴 속 깊이 유년시절의 작은 소원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큰 아이에 비해 작은 아이의 두상엔 제법 큰 꽃 왕관이다.
▲ 토끼풀 꽃으로 만든 "꽃 왕관" 큰 아이에 비해 작은 아이의 두상엔 제법 큰 꽃 왕관이다.
ⓒ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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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이 서 있는, 토끼풀 꽃이 만발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쪼그려 앉아 길게 피어난 토끼풀 꽃을 꺾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도 꽃을 꺾어다 내게 바치기 시작했다. 한가득 모인 토끼풀 꽃에 뿌듯해하면서 나는 꽃과 꽃을 이어나갔다. 그동안은 만들지 못해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누군가가 만들어주길 바랐기에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이들과 쪼그려 앉아 한참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드는 내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유심히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 훼손해서는 아니 될 공원 풀숲 안에 들어섰다는 민망함도 버렸다. 그래서일까, 지나가던 사람들도 따가운 시선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듯했다.

처음 만들어본 꽃 왕관은 어설프기 그지없다. 하지만, 정성스레 만든 꽃 왕관을 아이들에게만 씌워볼 수야 있나. 다행이 아이가 조심스레 머리에 쓰고 온 까닭에 집에서 나도 한 번 머리 위에 씌워봤다. 그런데 이건 마치 주인공 없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뻥 뚫린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 토끼풀 꽃으로 만든 "꽃 왕관" 처음 만들어본 꽃 왕관은 어설프기 그지없다. 하지만, 정성스레 만든 꽃 왕관을 아이들에게만 씌워볼 수야 있나. 다행이 아이가 조심스레 머리에 쓰고 온 까닭에 집에서 나도 한 번 머리 위에 씌워봤다. 그런데 이건 마치 주인공 없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뻥 뚫린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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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꽃 왕관은 틀을 잡아 완성되어 갔다. 만들어가면 갈수록 풍성한 꽃 왕관을 지켜보는 아이들도 탄성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다 만들어진 꽃 왕관은 꽤 무겁기까지 하다. 나는 큰 아이의 머리 위에 살며시 꽃 왕관을 씌워줬다. 그러자 너무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꽃 왕관이 아주 예쁘다는 아이의 말에 만드는 내내 설렜던 내 마음은 구름 위로 치솟았다. 아이의 머리 위에 동그란 꽃잎이 옹기종기 모여 왕관을 이루고 앉아 있으니, 그 모습 또한 천사 같다. 아니, 천사 맞다.

나와 늘 함께하는 천사들의 머리 위에 꽃 왕관을 차례로 씌워주며, 나는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소원을 풀었다. 또, '너희가 자라 소녀에게, 또는 사랑하는 그 누군가에게 꼭 이런 꽃 왕관을 씌워주길…' 바라는 마음도 담아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진에 찍힌, 꽃 왕관을 한 자기 모습이 예쁘냐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나는 "아주 예뻐! 천사 같아! 최고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작은 아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를 보며 신기해하고, 큰 아이는 마치 꽃 왕관이 떨어질세라 아이는 사뿐사뿐 걸음을 걷는다. 유독 할머니, 아줌마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과 말을 주고받으면서 우쭐대기까지 하는 녀석이다. 그리곤 꼭 잊지 않고 하는 말, 그건 "이거, 엄마가 만들어준 거예요!"

'그래, 다음엔 꼭 네가 만들어서 엄마에게, 또 네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선물해주면 참 좋겠구나…….'

그리곤 저녁이 되어, 나 또한 꽃 왕관을 살며시 씌워보고 카메라 앞에서 씩 웃어본다.


태그:#토끼풀 꽃, #꽃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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