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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스탄불문화원과 루미포럼, 터키의 평등구현변호사회와 '법과 삶' 변호사회, 그리고 터키기자작가재단이 공동주최한 '한국-터키의 민주화 경험 비교'를 주제로 한 워크숍이 2회에 걸쳐 터키의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각각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헌법'과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언론'을 주제로 열린 워크숍 주요 내용을 2회에 걸쳐 나누어 싣는다. - 편집자말

이스탄불 시내에 터키 국기와 함께 걸려 있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초상화. 터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터키의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 이스탄불 시내에 터키 국기와 함께 걸려 있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초상화. 터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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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케말 아타튀르크는 '알라의 현신'이나 다름없다.

그의 초상화는 모든 관공서와 공공건물 및 학교 교실은 물론 기업 사무실이나 심지어 가정집 거실에까지 걸려 있다. 또 앙카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그의 묘소와 박물관은 전국에서 온 참배객들과 터키를 방문한 외국 사절단의 행렬이 그치지 않는다. 동네 구멍가게에까지 붙은 초상화와 묘소의 참배 행렬을 보노라면, 그가 남북한 지도자(박정희의 5·16 쿠데타와 김일성의 우상화) 모두에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9일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헌법'을 주제로 워크숍이 열린 앙카라 경제기술대학(TOBB) 강당은 물론, 지난 7일 '한국-터키의 민주화와 언론'을 주제로 워크숍이 열린 이스탄불 교외의 터키기자작가재단 사무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과 터키 측 참가자들은 모두 '알라의 현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워크숍을 진행했다.

한국 언론자유, 6·10항쟁 이후 '자유국'에서 다시 '부분적 자유국'

나는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의 역할'에 대해 발제한 뒤에 주최측으로부터 기념패를 받았다.
▲ "한국 민주화 경험에 깊은 공감" 나는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의 역할'에 대해 발제한 뒤에 주최측으로부터 기념패를 받았다.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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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4·19와 5·18, 그리고 6·10을 중심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언론의 역할'을 발제한 나는 "한국은 반독재투쟁을 통해 언론 자유를 쟁취해 왔으며 특히 87년 6월 항쟁 이후 언론 자유의 지평은 계속 넓어져 왔다"고 전제하고, "인터넷과 SNS라는 의사소통 수단이 등장하면서 외연 확장을 거듭해온 시민단체와 인터넷언론이 기성 언론의 여론형성 독점권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면서 그동안 터부시해온 시민운동의 본격적인 정치개입과,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창간한 <오마이뉴스>의 등장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나는 또 "인터넷과 SNS를 통한 쌍방향 다중통신이 가능하고 직접민주주의식 참여정치가 가능한 시대를 맞게 되면서 한국 사회는 6월 항쟁이 남긴 과제들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만개한 언론 자유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다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면서 미국 프리덤하우스가 최근 발표한 '2011 언론자유보고서'에서 한국을 '언론자유국(free)'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partly free)'으로 강등시킨 사례와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이 노무현 정부 시절 30위권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 69위로 추락한 사례 등을 제시했다.

나는 이어 보수언론이 독과점한 신문시장에서 신뢰의 위기를 거론하며 "한국 언론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면서도 "힘(영향력)은 어느 집단보다 세지만, 그에 걸맞은 신뢰(권위)가 없다는 게 한국의 언론의 현주소다"고 진단했다.

장덕진,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에서의 소셜 선거의 탄생'

장덕진 교수가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에서의 소셜 선거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 소셜 선거의 탄생 장덕진 교수가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에서의 소셜 선거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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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발제자인 장덕진 교수(서울대 사회학)는 최근 한국의 재보궐 선거에서 드러난 '따끈따끈한 민심'을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분석한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에서의 소셜 선거의 탄생'이라는 발제로 터키 언론인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네트워크 이론 전문가인 장 교수가 집권당에게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할 만큼 전형적인 중산층의 베드타운인 분당 지역과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당 후보가 20% 이상 앞선 것으로 조사된 강원 지역에서 여당 후보가 패배한 현상을 선거기간 유권자들의 SNS 데이터 사용량과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만든 '리트윗 네트워크 맵'으로 설명하자 터키 언론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움을 표시했다.

장덕진 교수가 선거기간 유권자들의 SNS 데이터 사용량과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만든 ‘리트윗 네트워크 맵’으로 설명하자 터키 언론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움을 표시했다.
▲ SNS의 위력 장덕진 교수가 선거기간 유권자들의 SNS 데이터 사용량과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만든 ‘리트윗 네트워크 맵’으로 설명하자 터키 언론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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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언론인들은 한국과 터키의 군사쿠데타 및 정치발전 주기의 유사성에 호기심을 나타내면서 한국의 민주화 경험이 주는 교훈에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 한국과 터키, 이렇게 닮을 수가 터키 언론인들은 한국과 터키의 군사쿠데타 및 정치발전 주기의 유사성에 호기심을 나타내면서 한국의 민주화 경험이 주는 교훈에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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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프라인의 정치현실과 결부된 트위터를 포함한 새로운 사회적 기술들이 한국정치의 구조와 역동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면서 "그 직접적 결과는 이미 지금 나타나고 있고, 2012년의 총선-대선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분석과 전망을 근거로 최장집 교수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빌린 '트위터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해 "한국인들은 디지털 마인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한국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터키 측 참석자들은 대체로 한국과 터키의 군사쿠데타 및 정치발전 주기의 유사성에 호기심을 나타내면서 한국의 민주화 경험이 주는 교훈에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터키는 2010년 헌법 개정으로 과거 청산의 길을 열어두었으나 국민들은 여전히 군부 쿠데타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이들은 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언론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냈다.

터키 측 "한국의 쿠데타 경험과 언론 환경이 너무 닮아 깜짝 놀라"

왼쪽부터 터키의 유명한 정치 칼럼니스트인 아르단 젠투르크(Ardan Zenturk)와 터키기자작가재단 '미디어로그 플랫폼'의 부총장인 파티 제란(Fatih Ceran), 아르메니아계 칼럼니스트인 흐란트 토파키안(Hrant Topakian), 이슬람계 <자만(Zaman)> 신문사의 외신 에디터 엠라 윌케르(Emrah Ulker).
 왼쪽부터 터키의 유명한 정치 칼럼니스트인 아르단 젠투르크(Ardan Zenturk)와 터키기자작가재단 '미디어로그 플랫폼'의 부총장인 파티 제란(Fatih Ceran), 아르메니아계 칼럼니스트인 흐란트 토파키안(Hrant Topakian), 이슬람계 <자만(Zaman)> 신문사의 외신 에디터 엠라 윌케르(Emrah U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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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계 신문인 <자만(Zaman)>(터키어로 Time이라는 뜻)의 정치 칼럼니스트이자 텔레비전 프로듀서인 아르단 젠투르크(Ardan Zenturk)는 "<자만>지는 통상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적이나,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한 터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이슬람계 신문"이라면서 "재정수입은 광고보다는 이슬람계의 자원봉사 그룹과 지원의 힘이 크다"고 소개했다. 그는 "<자만>의 성공 사례는 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에서 발표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출생한 아르메니아계로 터키에서는 소수자인 흐란트 토파키안(Hrant Topakian)은 "지난해 터키 시민권을 받았다"고 전제하고,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터키는 자기 중심적인 데가 있고 그런 영향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주로 '터키에서의 소수자'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히잡을 쓴 여인들이 자유롭게 가고 싶은 데로 가야 한다"면서 "우리는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근본적인 개혁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만>의 칼럼니스트 케림 발지(Kerim Balci)는 터키의 진보적 신문인 < Taraf >(Side, '편'이라는 뜻)를 예로 들며, "이 신문의 기자와 스탭은 적지만 민간 영역에서의 군부의 간섭에 대해 반대를 분명히 하면서 다른 신문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면서 "터키에서도 대중지와 달리 진보지는 가난하다"고 밝혔다. 터키기자작가재단 '미디어로그 플랫폼'의 부총장인 파티 제란(Fatih Ceran)은 "한국과 터키의 과거 쿠데타 경험과 언론 환경이 너무 닮아 깜짝 놀랐다"면서 지속적인 교류를 희망했다.

한국 측 참가자들은 터키기자작가재단에서의 위크숍에 앞서 <자만> 신문사를 방문해 이 신문의 외신 에디터 엠라 윌케르(Emrah Ülker)와 간담회를 했다. 이 신문사는 터키어로 발행하는 일간지와 주간지 외에도 < Turkish Review >라는 영문 격월간지를 내고 있는데, 그가 제시한 최신호(3-4월호)의 한 아티클 제목은 '어떻게 정치로부터 군부를 철수시킬 것인가 : 남한의 교훈'이었다.

터키는 지금도 쿠데타 음모 혐의로 300명가량 구속 중

5월 8일자 <Taraf>의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야당(GHP)이 쿠데타에 이용될 수 있는 정보 제공’이었다.
▲ 터키는 아직 쿠데타중? 5월 8일자 <Taraf>의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야당(GHP)이 쿠데타에 이용될 수 있는 정보 제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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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군부는 지난 50년간 네 차례에 걸쳐 쿠데타를 일으킨 뒤 권력을 민정에 이양했고, 1997년에는 헌법재판소에 압력을 행사해 터키의 첫 이슬람 정부를 와해시킨 바 있다. 이스탄불공항에서 본 5월 8일자 < Taraf >의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은 '야당(GHP)이 쿠데타에 이용될 수 있는 정보 제공'이었다. 제목에 인용부호도 없이 검사가 기소했다는 '팩트 기사'였다.

터키는 지금도 쿠데타 음모 혐의로 300명가량이 구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는 언론인들도 포함돼 있지만 이들이 체포된 까닭은 기사 때문이 아니고 쿠데타 집단과의 연계 혐의 때문이라는 것. 터키 경찰은 이들이 에르게네콘(Ergenekon)이라는 극우파 네트워크를 조직해 정부 요인 암살, 테러 등을 통해 정치적 혼란을 일으켜 세속주의 세력의 보루를 자처하는 군부 개입을 이끌어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정의개발당(AKP)이 이끌고 있는 친(親)이슬람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터키 정국이 안정될수록 언론 자유의 현실적 위협은 군부 쿠데타보다는 가족을 중시하는 전통에 입각한 검열의 존재로 보였다. 그 정점에 '아타튀르크 보호법'이 있다. 터키어로 '아타'가 아버지이고 '튀르크'가 터키인이니 '아타튀르크'는 말 그대로 터키의 아버지(국부)다. 터키는 세속주의 국가여서 학교에서 이슬람 종교교육 시간은 없지만, 케말리즘(케말 사상)은 공식적으로 가르친다. 그래서 정부와 이슬람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삭제되지 않지만 아타튀르크에 대한 비판은 삭제된다고 한다.

프리덤하우스는 '2011 언론자유보고서'에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32점으로 전 세계 196개국 가운데 홍콩과 함께 공동 70위로 평가하면서 그 배경을 이렇게 적시했다.

한국과 터키는 쿠데타 주기까지 서로 닮은 형제국인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언론자유지수까지 '부분적 자유국'으로 같은 쌍둥이 형제국이 된 셈이다(사진은 내가 PPT로 발제한 내용의 일부다).
▲ 언론자유지수도 '형제국' 한국과 터키는 쿠데타 주기까지 서로 닮은 형제국인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언론자유지수까지 '부분적 자유국'으로 같은 쌍둥이 형제국이 된 셈이다(사진은 내가 PPT로 발제한 내용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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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인은 관의 검열 증가와 함께 미디어가 보도하는 뉴스와 정보 내용에 정부가 영향을 미치려고 한 기도가 포함된다. 지난 수년간 다수의 온라인 논평이 친북견해라든가 반한국적 견해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현 보수정부는 또한 기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큰 방송사 경영진과 대형 미디어의 고위직에 이명박 대통령 측근을 임명함으로써 언론에 개입했다."

나는 간담회에서 "언론 자유국이었던 한국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부분적 자유국'으로 전락했다"면서 "한국과 터키는 쿠데타 주기까지 서로 닮은 형제국인데 이제 언론자유지수까지 같은 쌍둥이 형제국이 되었다"고 농반으로 얘기했다. 그러자 < Zaman >의 외신 에디터는 "한국은 부분적 자유국에서 자유국을 거쳐 다시 부분적 자유국이 되었지만 터키는 처음부터 줄곧 부분적 자유국이다"고 받아넘겼다.

그래도 터키가 한국보다 더 나은 점은 "인터넷 검열을 하지만 재판을 통해 삭제할 수 있다"는 거였다. 또 법으로 아타튀르크에 대한 조롱이나 모욕을 금하고 구멍가게에도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만, 시장에서 파는 화장실용 '발닦개'에도 그의 초상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를 더없이 존경하지만 밟기도 한다는 것이다. 터키는 한국처럼 '쥐그림 포스터'를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태그:#터키, #쿠데타, #케말 파샤, #케말 아타튀르크, #쥐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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