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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승리했다. 몇몇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3년 8개월 동안 싸움 끝에 대기업으로부터 '사업 포기'를 이끌어 냈는데 기쁘지 않겠나. 찬성·반대로 나뉘어 갈등이 깊었는데, 앙금을 빨리 씻기 위해서는 잘못된 사업을 추진했던 대기업이 진심 어린 사죄부터 해야 한다."

'수정마을 STX 유치반대 주민대책위' 박석곤 위원장이 한 말이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수정마을 주민들은 3년 8개월 동안 STX중공업 반대 투쟁을 벌인 끝에 승리한 것이다.

STX중공업이 수정마을 매립지에 조선기자재 공장을 짓겠다고 나섰다가 '반대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 끝에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김종부 창원시 제2부시장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STX중공업이 수정산업단지 조성사업 포기 의사를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STX중공업은 창원시에 "지속적인 반대 민원이 있는 현재 수정지구의 환경은 개발을 진행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에 부합하지 않다"는 내용의 문서를 보낸 것이다.

박석곤 위원장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수정마을 매립지에 STX 조선기자재 공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 운동에 앞장서 왔다.
 박석곤 위원장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수정마을 매립지에 STX 조선기자재 공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 운동에 앞장서 왔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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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만 공유수면매립은 1990년 택지개발 목적으로 진행되었는데, 2008년 4월 옛 마산시(당시 시장 황철곤)와 STX중공업(회장 강덕수)이 산업단지로 매립목적을 변경하고, 이곳에 조선기자재 공장을 짓기로 했던 것이다.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옛 마산시는 2009년 6월 수정일반산업단지계획 승인을 냈다.

주민 1150여 명은 STX중공업 유치에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싸웠다. 갈등의 앙금이 계속 남아 있다. '수정마을 STX 유치반대 주민대책위'는 옛 마산시청 앞과 정부종합청사, 경남도청 앞 등지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2009년 6월 8일 경남도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수정마을 주민들은 도청 안으로 진입하려고 했으나, 경찰 등에 의해 막히자 주민 일부가 현장에서 옷을 벗고 항의하기도 했다.

박석곤 위원장은 3년 8개월 동안 반대 활동을 위해 들어간 경비만 2억5000여만 원이라고 밝혔다. 집회 등 여러 활동으로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등으로 벌금을 받은 주민도 많고, 기소유예까지 포함해 처벌을 받은 주민은 30여 명이다. 눈물겹고 피나는 투쟁 끝에 승리를 거둔 것이다.

"주민들의 승리, 눈물 보인 주민들 많다"

다음은 18일 오후 박석곤 위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 소감은?
"주민 승리다. 창원시의 발표를 듣고 눈물을 보인 주민들이 많다. 너무나 긴 세월 동안 힘들었다. 어렵게 해왔다 보니 회한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 STX중공업이 사업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는지?
"창원시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했다. 그 뒤에 STX중공업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창원시의 발표가 맞다는 의미다. 창원시가 발표하기 이전에 STX중공업과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먼저 문서를 받았지만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어 대화를 통해 확인했다고 한다. 사업 포기 상태다."

- STX중공업은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이라 보는지?
"지금은 상당히 가슴이 벅차고, 주민들은 만세라도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다. 그런데 아직 STX중공업이 직접 사업을 포기한다고 밝힌 게 아니고, 창원시를 통해서 내놓은 것이다. 기업이기에 어떤 잇속을 챙길 것이라 본다. 어떤 면에서는 아직 믿기 어렵다. 이전에도 보면 주민투표뿐만 아니라 여러 번 주민을 교란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불신감이 크다. 사실 지금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는 형편이다."

STX중공업이 수정마을 매립지에 조선기자재 공장을 짓겠다고 나섰다가 ‘반대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 끝에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사진은 2009년 6월 8일 수정마을 주민들이 경남도청 현관 앞에서 도청 진입을 시도했으나 막히자 옷을 벗고 항의하는 모습.
 STX중공업이 수정마을 매립지에 조선기자재 공장을 짓겠다고 나섰다가 ‘반대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 끝에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사진은 2009년 6월 8일 수정마을 주민들이 경남도청 현관 앞에서 도청 진입을 시도했으나 막히자 옷을 벗고 항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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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조선 기자재 공장 유치 반대에 나서면서 힘들었을 텐데?
"우리 마을 주민들은 대개 농사짓고 바다에서 고기 잡아 생계를 꾸려 왔다. 개발에 대한 큰 마인드가 있었던 게 아니고, 환경운동가나 전문가도 아니었다. 오로지 생존권과 직결되다 보니 나섰던 것이다. 처음 이곳에 조선기자재 공장이 들어서면 모든 생존권이 파괴된다는 것을 알았다. STX중공업이 있는 진해 죽곡동과 고성의 조선산업특구 등을 견학해 보고 더 확신을 가졌다. 우리 동네는 큰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일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생활을 지키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몇 푼 보상을 받는다고 해봤자 평생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생존권을 위한 눈물겨운 투쟁을 했던 것이다."

- 그동안 여러 사안마다 국토해양부와 낙동강유역환경청 등 기관과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환경정책에 있어 주민들의 피해에 대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 같다. 매립목적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과 싸웠는데 심지어 국토해양부의 2중대라는 말까지 했다. 환경평가 업체도 실제 권력을 가진 자로부터 용역을 받아 하고, 사업과 직결되다 보니 올바른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그동안 법제처, 국토해양부, 경상남도, 낙동강유역환경청, 옛 마산시, 창원시 등 어느 기관도 수정지구 문제에 대해 적정하게 하지 않았다고 본다."

- 그동안 야당 국회의원과 교수들도 수정지구에 조선기자재공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했다.
"서울대 백도명 교수가 나서서 현장조사도 벌이고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힘을 보탰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적극 나서서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지역 정치인들은 어땠는지?
"지역구가 아닌 야당 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만 도움을 주었다. 지역구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풀뿌리 지방의원들은 자기들이 힘쓸 일이 아니라거나 권한 밖이라고 했다. 민주노동당 송순호 창원시의원이 옛 마산시의원일 때부터 도움을 많이 주었는데, 지난해 지방선거 때 해당 선거구인 마산 내서지역에 가서 지지해 달라고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옛 마산시청 앞에서 1년 가까이 매일 1인시위를 해오던 마산 수정마을 주민들은 지난 1일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면서 최근 들어 창원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옛 마산시청 앞에서 1년 가까이 매일 1인시위를 해오던 마산 수정마을 주민들은 지난 1일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면서 최근 들어 창원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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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기자재 공장 유치 반대운동에 대해 여론은 어떠했다고 보는지?
"정말 주민들은 처음부터 어디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사실을 제대로 보도해 주지 않았다. 경영상 광고주를 무시할 수 없다보니, 권력에 자유롭지 않다 보니 그럴 것이라고 이해가 되었다. 또 반대는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했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제일 힘들었고, 분하고 억울했던 것이다."

- 집회며 1인시위도 많이 했는데?
"집회 횟수는 헤아리지 않아 잘 모르겠다. 옛 마산시청과 창원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오랫동안 했다. 여름에 한창 더울 때 했는데, 주민들을 오랫동안 세워놓을 수 없어 하루에 10여 명이 교대로 1인시위를 하기도 했다. 3년8개월 동안 반대활동에 들어간 경비만 따져보니 2억5000만 원이었고, 연인원은 2만 명이 넘는다. 서울에서 집회도 여러 차례 가졌는데, 돈을 아끼려고 주민들이 집에 있는 김치를 비롯한 반찬을 갖고 오거나 주먹밥을 해오기도 했다. 전체 인원에다 하루 일당 5만 원만 따져도 10억 원이 넘을 것이다."

"진실은 덮으려도 해도 덮어지지 않는다"

- 고소고발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옛 마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는데, 마산시청에서 고발해 벌금을 받은 주민이 많다.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등으로 벌금에다 기소유예까지 포함하면 해당되는 주민이 30명에 이른다."

'수정마을 STX 유치반대 주민대책위' 박석곤 위원장.
 '수정마을 STX 유치반대 주민대책위' 박석곤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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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아무리 진실은 덮으려고 해도 덮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변함없이 단결해서 끝까지 싸운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회사는 더 이상 해봤자 안될 것이 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추정하건대, 행정구역이 통합되면서 통합 창원시가 벌인 행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 개발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지역이 많은데, 다른 지역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려운 문제가 닥칠 때마다 여러 번 그만두고 싶은 좌절감을 느꼈다. 그동안 일부 언론사 기자들의 사실 보도를 보면서 용기를 얻기도 했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도움도 컸다. 무엇보다 원주민들이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 지역마다 특성이 다르기에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주민 의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 찬성반대 주민들의 앙금을 치유하는 게 급선무로 보인다.
"갑자기 화해하자고 하면 안 될 것이다. 찬성 측으로부터 폭언을 당하기도 했다.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치유하는 방법은 잘못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측에서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한다. 찬성 측 주민들도 내용을 잘 모르면서 대기업 이야기만을 믿었기 때문에 진솔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지금도 마을 안에 있는 공터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입장이 다르다. 앙금을 풀고 화해를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태그:#수정마을, #STX중공업, #창원시, #박석곤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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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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