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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앞에서
 전시장 앞에서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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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쉬(Karsh), 돌아오다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그들의 마음, 내면, 영혼에 담긴 위대함을 찍는 것이다."
유섭 카쉬(Yousuf Karsh, 1908~2002)에게 카메라 렌즈는 마음을 읽는 도구이다. 그의 렌즈를 거치면, 화려한 여배우는 여린 영혼을 내보이고 냉혹한 사업가는 천진한 소년으로 탈바꿈한다. 화가 나 으르렁거리는 정치가는 자신의 억센 내면을 드러낸다.

인물의 마음이 드러난 사진이기 때문일까. 관객들은 카쉬의 사진을 통해 살아 숨쉬는 역사 속 인물을 만난다. 미시간벤처캐피탈(주) 대표 조일형씨는 "윈스턴 처칠의 강한 카리스마 앞에 숨을 죽이고, 오드리 햅번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회상한다. 카쉬의 렌즈를 거쳐 인화된 사진은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그가 우리의 가슴을 울리러 또다시 찾아 왔다. 지난 2009년 3월 카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 전시회가 열렸던 때로부터 딱 2년 만이다. 카쉬의 당시 한국전시는 큰 성과를 남겼다. 그는 당시 거의 무명에 가까웠지만, 사진전 개막 한 달여 만에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관객들은 보던 사진 앞에서 쉽게 발을 띠지 못했다. 머무는 시간이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았던 그동안의 전시장풍경과는 달랐다.

유섭 카쉬는 이번 전시에서 2년 전보다 더 깊은 작품세계를 한국 관객에게 선보였다.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4000여장의 카쉬 작품 중 대표작 중심으로 엄선된 총 100여 점의 작품이 선을 보였다. 특히 전시작들은 디지털 프린팅이 아닌 카쉬가 직접 만든 오리지널 빈티지 필름으로 소개되었다. 관객의 입장에선 카쉬가 의도한 메시지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다.

사진전은 오드리 햅번, 윈스턴 처칠,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20세기 인물들의 내면과 열정, 그리고 영혼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지난 2009년 전시에선 공개되지 않았던 앤디 워홀, 넬슨 만델라, 샤갈, 레오너드 번스타인,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시대를 대표하는 명사들의 사진도 등장했다. 20세기 영웅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재조명해 볼 수 있다.

유섭 카쉬, 인간의 내면을 향한 따뜻한 시선

카쉬는 20세기 영웅들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던 캐나다 사진작가이다. 전세계 사진가로부터 '인물사진의 교과서'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영혼을 찍는 사진작가'였다.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인물의 내면을 사진에 담아냈다. 그의 독창적인 조명 기술도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스튜디오 조명과 자연광을 조화시켜 인물을 부각시켰다. 그는 전세계를 무대로 수많은 인사들을 그의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세웠다. 향년 93세로 눈을 감을 때까지 5만 여장의 인물 사진을 찍었다.

카쉬의 사진을 보면 인물의 영혼이 느껴진다. 그의 재능은 카쉬의 어린 시절에 있다. 카쉬는 터키령(領)의 아르메니아(Armenia)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터키인으로부터의 박해와 수많은 대량학살을 목격했다. 그의 슬프고도 참담한 경험은 인물에 대한 시각을 길러주었다. 인물의 눈을 통해 영혼과 마음을 바라보는 천부적인 자질을 길렀다.

카쉬는 캐나다에서 인물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터키인들의 박해를 피해 카쉬는 시리아를 거쳐 캐나다에 있는 외숙부에게 갔다. 외숙부 조지 나카쉬(George Nakash)의 카쉬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인물사진가 존 가로(John Garo)에게 카쉬를 보냈다. 카쉬는 존 가로 밑에서 조명, 디자인, 구성뿐만 아니라 인화법까지 상세하게 공부하며 위대한 영웅들을 카메라에 담는 사진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카쉬가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치르게 되는 계기는 윈스턴 처칠을 찍은 일이다. 카쉬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맥켄지 킹(Mackenzie King) 당시 캐나다 수상은 카쉬가 1941년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당시 영국 수상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카쉬가 촬영한 처칠의 사진은 <LIFE>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사진 속 윈스턴 처칠은 고집스럽지만 다부졌다. 사람들은 처칠에게, 그리고 처칠의 내면을 표현한 카쉬에게 매료되었다. 

카쉬의 사진은 역사 그 자체이다. 그는 캐나다 시사주간지 <맥클린>에서 2차 세계대전 후의 사회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에 참여했다. 1950년대 산업혁명 시기의 캐나다 경제성장 모습을 포토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그의 필름, 슬라이드, 인화를 포함한 모든 자료는 연대별로 정리되어 1987년 캐나다 국립 문서국에 보관되었다.

카쉬전 사진도록 이미지
 카쉬전 사진도록 이미지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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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눈을 통해 영혼을 바라보다

카쉬 인물사진의 주요특징은 사진 속 인물과의 '소통'이다. 그는 사진 속 인물과의 소통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담아냄으로써, 관람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길 원했다. 카쉬 작품의 핵심은 두 가지다. '관람객이 사진을 보고 어떠한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와 '사진 안의 인물들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길 있느냐'이다.

그만큼 카쉬는 사진을 통해 말을 거려 노력했다. 촬영 전에는 인물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파악했다. 촬영을 진행하면서는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대한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무의식에 깃들어 있는 인물 고유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카쉬의 철학은 그의 작품이 살아 숨쉬도록 만들었다. 관객들은 그의 사진을 통해 쉽게 볼 수 없었던 위대한 인물들의 이면과 대화할 수 있다.

인물사진 컬렉션에서 피사체를 바라보는 카쉬만의 창조적인 시각에 주목해보면 전시회가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카쉬는 전통, 상징, 이야기를 조화시킬 수 있는 아이콘을 포착하여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모델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사진을 완성했다. 인물들의 손짓, 얼굴의 움직임, 몸짓, 응시방향으로 카쉬만의 '인물'을 창조해냈다.

그의 조명효과도 관전포인트다. 카쉬는 초기의 스튜디오 조명효과를 탈피했다. 그는 백라이트 조명을 사용하는 등의 실험을 했다. 인물의 머리 뒤에서 비추는 태양광과 같은 효과를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게 될 명사들은 한국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길 건넬까. 카쉬가 직접 만든 오리지널 빈티지 작품을 통해 카쉬의 중계방송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새롭게 선보이는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KARSH)展'은 5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최된다.


태그:#카쉬, #카쉬전, #유섭 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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