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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일대의 모습이다.
 소사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일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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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는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정치적 고향이다. 그는 소사구에서 내리 3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지난 2006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63.9%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부천의 이 같은 지지는 2010년 김문수 지사가 연임에 성공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

이 같은 지지는 뉴타운 공약에서 나왔다. 김문수 지사의 대표 공약인 경기 뉴타운 사업의 1호가 부천 소사지구다. 인구 87만 명의 부천시에는 뉴타운·재개발 구역만 109곳에 달한다. 차명진(부천 소사)·임해규(부천 원미갑) 한나라당 의원 역시 뉴타운 공약을 통해 2008년 총선에서 큰 어려움 없이 당선됐다.

그렇다면, 이들을 지지해준 시민들은 뉴타운으로 행복할까? 지난달 26일 만난 부천시민들 사이에서는 '타운돌이' 정치인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뉴타운·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과 반대하는 주민들간에 갈등이 격화되고 있지만, '원죄'를 지은 정치인들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평생 바지락 캐며 산 집, 빼앗긴다니"

원미구 심곡3동에서 만난 권명희(가명·71)씨는 최근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계단에서 쓰러졌다. 척추뼈에 금이 갔다.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잠도 못 잔다. 권씨는 "이제 죽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노년의 그에게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은 재개발 때문이다.

권씨는 평생 인천 옹진군 영흥도에서 바지락을 캤다. 그는 남편과 사별하고 몸이 불편해지자, 7년 전 아들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이곳 대지 122㎡ 규모의 단독 주택을 2억4000만 원에 샀다. 고향 대대로 내려온 영흥도 땅(6600㎡)을 팔았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들이 몸이 아파 일을 못하는 탓에, 170만 원가량의 월세 수입이 권씨 가족에게는 유일한 수입이다.

권명희(가명·71)씨는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 될 자신의 주택을 가리키며 "재개발이 진행돼 철거가 시작되면, 시청에서 굶어죽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명희(가명·71)씨는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 될 자신의 주택을 가리키며 "재개발이 진행돼 철거가 시작되면, 시청에서 굶어죽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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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의 집이 포함된 심곡1-3구역은 재개발 사업의 마지막 단계인 관리처분 인가만 남겨두고 있다. 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조합 쪽에서는 권씨에 대한 보상 금액이나 추가분담금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철거 직전 추가분담금을 공개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사례를 감안하면, 최소 1~2억 원에 추가분담금을 내야 한다. 권씨는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전세보증금 6000만 원도 없다"며 "빚을 내 추가분담금을 내고 105㎡형 아파트에 들어간다고 해도, 우리 가족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재개발이 진행돼 철거가 시작되면, 시청에서 굶어 죽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입자의 고통도 크다. 목욕탕에서 청소 등을 하는 전명자(가명·55)씨는 남편, 세 아이와 함께 43㎡ 규모의 빌라에서 살고 있다. 전세 보증금은 5000만 원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전씨는 갈 데가 없다. 그는 "동네에는 서울 뉴타운·재개발 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다"며 "이곳엔 전세 자체가 없고, 있어도 1억 원을 넘는다"고 전했다.

되돌리지 못하는 뉴타운 사업... 한 번 동의하면 끝?

경기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의 한 건물에 뉴타운·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내걸려있다.
 경기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의 한 건물에 뉴타운·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내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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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뉴타운·재개발 사업은 사업 추진 절차와 내용이 불투명할 뿐 아니라, 최근의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사업성도 담보되지 않는다.

재개발 조합 쪽도 이를 인정한다. 장재욱 부천시 정비사업 총연합회장은 "시장 침체, 정부의 규제, 세입자 보상비 증가, 임대주택건설비율 상향조정 등으로 사업추진이 지연되거나 표류하는 현장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왜 뉴타운·재개발 사업을 중단시키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뉴타운·재개발 사업을 되돌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75%의 동의로 조합이 설립되면, 이후 조합은 형식적인 총회를 통해 사업을 강행한다.

집값이 폭등했던 시기에 개발업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뉴타운·재개발 사업에 동의했다면, 이후 반대를 한다고 해도 조합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뉴타운 촉진법'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사업성을 높이기 위한 이들 법안들은 조합으로 하여금 사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지난달 19일 임해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에는 용적률 상향 조정안이 담겼다. 차명진 의원은 3월 대표 발의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에서 용적률 상향 조정에 따른 임대주택 건설 부담을 축소시키기로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뉴타운 지구를 해제하게 된다면 난개발을 막기가 어렵다, 장기적으로, 그리고 국가 단위에서 본다면 손해"라며 "사업성 있다고 보이는 곳에는 사업성을 높여주는 쪽으로 제도 개선을 하는 것이 뉴타운 출구 전략"이라고 밝혔다.

이옥경 부천뉴타운·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연합 회장은 "용적률을 높여줘도 그만큼 건설비가 더 들어가기 때문에 사업성이 없다"며 "지역 국회의원들은 주민 갈등만 부르는 법안 대신 주민들이 반대하면 조합 청산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타운 문제 해결 못 하면 민란 일어난다"

뉴타운·재개발 사업이 야기하는 문제는 최소한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에서 개발 세력의 지지를 받은 '타운돌이' 의원들이 섣불리 입장을 바꿀 수 없고, 그렇다고 뉴타운·재개발을 반대하는 다수 주민들의 주장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뉴타운 특혜법'에 주민동의 강화나 조합 청산 시 국고 지원 조항을 넣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도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김만수 부천시장(민주당) 비서실 관계자는 "뉴타운·재개발 사업은 최대한 주민 의사를 묻는 방법으로 진행돼야 한다"면서도 "한나라당이 다수당인 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부천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백선기 부천시민연합 이사는 "한나라당은 뉴타운이 자신들의 공약이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립서비스만 하고 있다, 민주당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내년 총선에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만난 한 주민은 "뉴타운·재개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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