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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인지(The Change)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는 대규모 이벤트로서의 컨퍼런스가 아니라 매년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담아내고, 컨퍼런스를 계기로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컨퍼런스를 지향합니다. 이와 같은 컨퍼런스의 취지를 살리고 또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도 사전에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먼저 컨퍼런스에서 기조발표를 해주시는 분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기조발표를 해주시는 분들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15가지 주제 테이블의 호스트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과의 인터뷰도 기획 중입니다. 꼭 컨퍼런스의 발표자나 호스트가 아니더라도 컨퍼런스의 주제에 대해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와 상상력을 제공해주실 만한 분들과의 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 기조발표자 가운데 다섯 번째로, 영화배우 김여진씨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지난 4월 22일에 진행됐습니다.
영화배우 김여진씨.
 영화배우 김여진씨.
ⓒ 하승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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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재밌게 본 것 중에 하나가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의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이었는데, 그렇게 발전하리라고 생각하고 움직이신 것은 아니죠?
"전혀 아니었어요. 전 그냥 혼자 갔었잖아요? 일단 사람이 얼굴을 보면, 같이 밥을 먹고 하다 보면 정이 들고, 타인에서 '아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전에 JTS나 평화재단 활동을 하면서 배운 건데, 딴 거 없어요.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보는 게 최고다.'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사람을 봐야 안 까먹어요.

그냥 기사로 보고 책으로 봐서 분노하고 화내는 것은 정말 얼마 안 가요. 화낼 일은 정말 매일 생기니까요. 그곳에 가서 사람을 직접 만나면,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 되면 내 문제가 되죠. 그런 과정을 몇 번 겪어왔기 때문에, 그때 트위터를 통해서 청소노동자들 소식을 쭉 보고 있다가 홍대 같은 경우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반성 정말 많이 되었어요. 정말 모르고 있었죠. 사실은 정말 알은체 안 하고 살아왔다는 거죠. 어느 건물을 가도 옆에 계신 분들이잖아요? 그랬기 때문에 반찬 사들고 가서 같이 밥 먹었는데, 거기 또 홍익대 총학생회장이 오고, 그게 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에요. 청소노동자들이 총학생회장보고 밥 먹고 가라고 했는데 총학생회장이 못 먹겠다고 했잖아요. 밥 한 끼 먹자는데 왜 못 먹을까 싶었죠.

그 친구 말은 '자기가 학생들한테 비운동권이라고 해서 당선되었기 때문에 어머니들 못 도와드린다. 그런데 지금 밥을 먹으면 어떻게 안 도와드리겠냐. 그래서 못 먹는다' 하는 거였어요. 난 밥은 밥이니까 먹는 건 먹자고 했는데 끝까지 밥은 못 먹고 물만 마시고 가더라고요. 진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거예요. 이 아이가 처해 있는 상황도, 저 친구를 총학생회장으로 뽑고 도서관에서 외면하고 있는 저 많은 친구들도 가슴이 아팠어요.

총장은 없고, 모든 여론의 욕을 걔들이 먹고 있었잖아요? 그것도 뭔가 잘못되었고. 그날 홍대에서 나오면서 진심으로 그 생각을 했어요. '내가 조금만 유명했다면 좋았을 뻔했다. 그랬다면 오늘 왔다 가는 것이 기사가 되고 반향이 있을 텐데.' 그런데 그때 옆에 계셨던 분들이 이미 사진을 찍어서 트위터에 올리셨죠. 나중에 봤는데 멘션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블로그에 글을 쓰고, 다음 날 제 입장에서 보면 완전 난리가 났죠.

그리고 방송국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다 연락이 왔어요. 공중파 3사에서 다 왔어요. 다 할 수는 없어서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만 했죠. 사람들의 호응이 정말 뜨거웠고, 바로 다음 날 밤일 거예요.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뭘 좀 해보자고 해서 우리끼리 만나서 뭘 할지 의논하자고 했죠. 다음 날에 만났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40~50분 오셨죠. 번개였는데.

그날 밖에서는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었는데 저도 당장 집회는 못 가겠는 거예요. 약간 부담돼서. 사진이 나간다는 게 약간 꺼려지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집회가 싫은 거예요. 재미가 없어요.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비슷비슷한 말들을 계속 듣고, 똑같은 구호를 외치는 집회문화를 제가 안 겪어본 게 아니잖아요. 지루하고 춥고 힘들기만 하고, 힘이 나는 게 아니라 힘이 더 빠지고.

배우 김여진씨가 1월 22일 오후 홍익대 앞 놀이터에서 열린 홍익대 청소·경비 해고 비정규노동자들 돕기 '우당탕탕 바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배우 김여진씨가 1월 22일 오후 홍익대 앞 놀이터에서 열린 홍익대 청소·경비 해고 비정규노동자들 돕기 '우당탕탕 바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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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린 진짜 날라리다. 괜히 무리해서 들어가서 구호 외칠 생각 하지 말자. 외부에 있자. 외부세력 맞다. 외부세력 나가달라 그래도, 싫다고, 외부세력인데 있을 거라고 뻔뻔스럽게 있자' 하면서 이름을 '날라리 외부세력'이라고 지은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가볍고 경쾌해지고, 저쪽에서도 외부세력 나가달라고 말을 못하는 거예요. 무슨 불순세력으로 몰아야 되는데 그렇게 안 되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부지런히 왔다 갔다 했어요."

- 자연스럽게 발전한 거네요?
"네. 다 자발적이었어요. 하나에서 열까지. 전 왔다 갔다 하면서 소식을 전했죠. '전기장판 필요하답니다' 하면 전국각지에서 전기장판이 오는 거예요. '설 되어 가니까, 놀까요?' 하면 '윷놀이하자', '떡국 먹자', '세배하자' 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분은 한복까지 입고 와서 세배도 하고, 윷놀이 해서 저희가 다 따버리고 그랬죠."(웃음)

- 그때 되게 행복했나 봐요.
"네. 되게 즐거웠어요. 어머니들 분위기도 보통 때는 결연하잖아요. 사실 비극을 자꾸 떠올리시잖아요.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서럽게 살았던가? 얼마나 아팠던가?' 그게 투쟁의 원동력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슬프게만 지내다 저희가 가면 웃으시는 거죠. 저희가 가면 그냥 노래 부르고 어깨춤 추고 노시는 거고, 분위기도 밝아지고, 이렇게 어영부영 하다 보니까 투쟁이 끝난 거예요. 김장하고 영화 보고 딱 여기까지였어요."

분노가 아니라 행복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

- 근데 배우가 사회문제 현장에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거든요.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농성하는 데도 가고 4대강 현장에도 가셨죠? 운동가 이상으로 열심이신 것 같아요. 그런데 혹시 배우로서 겪는 갈등 같은 것은 없나요?
"지금까진 없어요. 배우들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다른데요, 일이라는 건 이러나저러나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요. 저도 1~2년씩 일 못하는 거 예사였거든요. 그리고 톱스타도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게 이 바닥이고, 아무리 노력하는 배우도 못 뜨는 게 이 바닥이에요.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작품 섭외에) 영향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할 말을 안 해도 섭외 안 될 수도 있고, 할 말을 해도 섭외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저는 김제동씨가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예가 된다고 생각해요. '할 말을 하면 찍혀서 짤린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렇게 함으로써 뭘 얻었는가를 봐야 되는 거예요. 김제동이란 사람이 갖게 된 아우라는 굉장히 커요. 유재석, 강호동이 갖지 못한 아우라를 갖게 되었잖아요. 오피니언 리더가 되었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어요.

'토크콘서트'라는 것은 그전에 그렇게 인기 있는 분야도 아니었는데, 내 생각엔 혼자서 전국을 휩쓸고 다니면서 돈을 더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웃음) 저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는 그냥 평범한 조연배우였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이런 일이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명성이라는 것은 얻었어요."

- 김여진이란 배우의 목소리가 사회로 전달되고 있다는 걸 느끼시는 거죠?
"네. 분명하게 느껴져요. 하지만 대단한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솔직히 저는 전에도 이 일을 쭉 해왔어요. 3~4년 전부터 어떤 식으로든 해왔는데, 도움이 된 거라면 트위터라는 아주 좋은 도구가 생긴 거죠. 기자를 통하지 않고 제가 직접 제 말투로 얘기할 수 있는 게 달라졌죠."

- 박혜경과 레몬트리 공작단도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생긴 것인데,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사람들이 주는 목소리에서 어떤 욕구나 변화에 대한 갈망을 느끼시나요?
"날라리 외부세력, 이분들 정말 신이 났어요. 못 말리겠다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면, 재미도 있는데 의미도 있을 때거든요. 재미만 있어도 안 되고, 의미만 있어도 안 되는 거예요. 그 둘을 결합한 방식을 홍대에서 맛보신 거죠.

거기다 아주 자발적이고 창의적이고 엉뚱 발랄한, 뭐든지 다 해도 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놓질 않아요. 저는 지금도 저 혼자 다니잖아요? 강정마을도 혼자 가고, 한진중공업도 혼자 가려고 했는데, '나도 따라갈래요' 해서 같이 간 거였어요. 그분들도 저 없이 혼자 막 다니세요. 밴드도 만들고 책도 쓰고 사진전도 하고 그러고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근사한 방향으로 나갈 것 같은 거예요. 이걸 운동이라고 하기에도 놀이라고 하기에도 좀 뭐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거든요. 분노가 아니라, 행복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거죠. '니네가 돈이 많아? 난 행복해!' 이걸로 싸우는 거죠. 돈이 많아 봐야 지루한 건 마찬가지거든요. 근데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세상을 요만큼씩 바꿔가는 맛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아주 즐겁게 해내는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억지로 해서는 절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 계속 즐겁게 하는 그 과정들을 지켜보고 있죠. 저는 그렇게 살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그 방법이 너무 유치하거나 잘 모르겠으면 다른 방법대로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 다음에 어디서 또 만나면 되는 거고."

영화배우 김여진씨는 '날라리 외부세력' 회원들과 함께 지난 4월 10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았다. 사진은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과 전화통화하고 있는 김여진씨의 모습.
 영화배우 김여진씨는 '날라리 외부세력' 회원들과 함께 지난 4월 10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았다. 사진은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과 전화통화하고 있는 김여진씨의 모습.
ⓒ 최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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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사람들이 날라리를 뭐라 평가할까요?
"저희도 몰라요. 우리끼리 책을 같이 쓸 거거든요. 누군가 그랬어요. '날라리의 미래'라는 챕터에는 한마디, '알 게 뭐야'라고 쓸 거라고."(웃음)

국민 모두가 한 가지씩 과제를 가졌으면

- 5월 13일에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하게 되어 있는데, 김여진씨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제 블로그 제목이 '무조건 행복'이에요. 행복에는 조건이 없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꾸 뭐가 되면 행복할 것 같고, 이거 하면 행복할 것 같고, 이건 이래서 행복하지 않고, 저건 저래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요. 물론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은 조금 다르죠. 사회구조적 모순은 분명히 있죠. 고쳐나가야 되는 거고요. 대신 조건이 나쁘다고 해서 나는 불행한가? 그건 다른 문제 같아요.

돈이 있어야 행복한 것도 아니고 꼭 뭐가 되어야 행복한 것도 아니죠. 의사들이 행복한가요? 성형외과 의사가 되어서 매일 수십 명 눈 찢고, 코 세워주면서 행복할까요? 사람들이 제일 되고 싶은 게 연예인이잖아요? 그런데 톱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잖아요. 행복하지 않다는 거거든요. 환상이란 거죠. 우리가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거예요. 행복해 보이는 것, 근사해 보이는 것.

내가 정말 언제 행복한지 따져보면 돼요. 잠 푹 잤을 때, 맛있는 것 먹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이런 때잖아요. 사실 그 과정에 분명히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이 들어가요. 내 옆의 누군가가 부당한 일로, 또는 먹지 못해서 울고 힘들어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데 그걸 외면한단 말이죠. 외면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도망가요. 두려워요. '내가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겨서 더 움츠러들어요.

그게 지금의 상태인 것 같아요. 부당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세상에 굉장히 많은데, 나는 못 하겠다는 거죠. 왜? 무서워서. 내 코가 석 자라서. 모든 사람들의 코가 석 자예요. 모두 다 같이, 개별로 떨어져서 각자 두려움에 떨게 되는 거죠. 정말 단순하게, 배고픈 사람과 빵 나눠서 먹고, '너 억울한 일 당했어? 같이 가줄게' 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한 거죠.

그 순간 '내가 나서는 일이 잘 안 되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면 다시 움츠러들어요. 그게 욕심이라는 거죠. 내가 한다고 꼭 잘 되리란 보장은 없어요. 그저 최선을 다하는 거죠. 실패하면 방법을 바꿔서 또 해보는 거죠. 그래서 저는 모든 국민이 세상에 기여할 한 가지 문제를 자기 과제로 삼으면 좋겠어요.

한 가지를 정해서 평생 그거만 하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두 시간이라도 내서 그거를 했을 때 자기 마음이 얼마나 부자가 되겠어요. 세상의 주인으로 서는 거잖아요.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는 거잖아요? 돈 많이 벌어서 골프만 치면 뭔 재미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거 하면서 노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길고양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막 싸우기도 하면서 노는 거예요. 그게 노는 거예요."

- 마지막에 물어보려고 했던 질문이 '그래서 배우 김여진은 행복한가'였는데, 쓸모없는 질문을 적어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날라리 외부세력은 쭉 계속됩니까?
"지금 사실 살면서 제일 행복한 때인 것 같아요. 도망다니던 면을 정면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것도 여러 사람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날라리 외부세력은 '재미없다. 그만하자' 할 때까지 어쨌든 계속 가지 않을까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thinkcafe.org/conference 에도 실려 있습니다.



태그:#씽크카페, #오마이뉴스10만인클럽, #김여진, #날라리외부세력, #씽크카페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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