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주말에만 다녀가는 시랑헌 일정은 언제나 쫒기고 바쁘다. 철이 늦었지만 과일나무들과 정원수에 새로난 잡초를 제거하고 퇴비를 주다가 허리를 펴보니 보름달과 햋님의 임무교대시간이다.
▲ 시랑헌의 배꽃과 보름달 주말에만 다녀가는 시랑헌 일정은 언제나 쫒기고 바쁘다. 철이 늦었지만 과일나무들과 정원수에 새로난 잡초를 제거하고 퇴비를 주다가 허리를 펴보니 보름달과 햋님의 임무교대시간이다.
ⓒ 정부흥

관련사진보기


"으 핫하하……핫! 쓰리고에, 흔들고, 피박이니, 팔구 칠십이 칠천 이백 원. 여보! 자네는 죽었네, 으하하하! 돈 떨어 졌으면 꿔줄까?"

주눅 든 집사람에겐 미안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너무도 통쾌하게 웃어보는 웃음이다.

시랑헌(지리산 5평 오두막) 통창으로 스미는 달빛이 좋아 잠을 못 이루다가 둘이서 고스톱 판을 벌렸다. 시랑헌에는 책 외에 놀이 기구가 없다. 결혼 후 처음해보는 시도라 별스런 기대를 않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재밌다. 속내를 드러내고 배꼽을 잡았다.

지금 마련 중인 지리산 터에 본집이 마련되면 주말농장인 시랑헌 생활을 졸업하고 귀농하여 촌부로 살 작정이다. 3월부터 본집을 짓기 위한 제반 절차를 계획하고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는 겨우 겨우 건강을 유지했으나, 나이 들어가면서 급속히 쇠락해가는 육체가 언제까지나 버텨줄 것 같지 않다. 더 늦기 전에 제 2인생을 시작 하려고 조기 퇴직과 귀농을 결심한 거다.

주말농장 시랑헌, 새 삶에 눈을 뜨다

시랑헌은 지리산 터에 2007년 추석 연휴 때부터 나와 집사람 둘이 주말을 이용하여 함께 지은 오두막이다. 집사람이 상주하면서 산동~고달 간 도로공사 때 끊긴 진입로를 복원하는 공사를 채근하고 감독하기 위해 지었다. 도로공사가 끝나고는 주말 별장이 되었다.

시랑헌 주말농장 생활이 시작되면서 농촌 현실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번 주말에는 어느 산에 갈까? 망설일 필요 없이 주말이면 으레 시랑헌을 찾았고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사고 때문에 삶의 지혜를 배우는 도량이 되었다.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면서 자신이 겪는 변화를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시랑헌을 방문하시겠다는 분들도 많아졌다. 주말이면 2~3팀의 손님이 다녀간다. 지난 3월 초에 오신 손님들에겐 고로쇠 수액을 대접했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약수가 되었지만 몇 년 전까지 만해도 백운산과 지리산 일대에 국한된 지역 특산물이었다.

그것을 작년까지는 대부분 가족과 친척,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말았지만 올해는 경제성 정도를 타진해보기 위해 농장 입구에 '주말에는 고로쇠 수액을 판매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나가는 여행객이 고로쇠 수액을 구입하러 시랑헌에 올라왔을 땐 감격스러웠다.

시랑농장에서 최초 수입이고 몇 년 만에 얻은 가시적인 성과다. 집사람은 이때 가슴이 떨려 말을 할 수도 없었단다. 우리가 고로쇠 수액을 판매하여 돈을 벌다니…. 나와 집사람은 고객이 떠나자마자 구례로 달려가 고로쇠 통에 부착할 고로쇠 수액을 판매하는 시랑농장의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계좌 번호까지 적힌 상표를 주문하고 8만원을 지불했다. 고로쇠 수액을 팔아 번 돈은 5만원이었다.

시랑헌을 방문하시는 지인들은 빈 손으로 오질 않는다. 시골까지 오시는 자동차 연료비도 부담스러운데 선물까지 가져오면 시골에서 대접할 게 마땅치 않은 우리로서는 당혹스럽다. 그렇다고 매번 불고기 파티를 할 수도 없다. 처음 몇 번은 막걸리에 불고기 파티로 대접했지만 곧바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한 고기를 먹으려고 산촌으로 들어온 게 아니고, 지인들도 불고기 파티 하러 시랑헌을 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골살이의 즐거움, 지인들과 나누다

시랑헌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산마늘 밭으로 안내한다. 오르내리면서 1시간 가까이 등산도 하고 아직까지 많이 보급되지 않아 귀물인 야생 산마늘을 수확하는 재미도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충분했으면 좋겠는데 야생 산마늘은 귀할 수밖에 없다. 산에 옮겨 심은 지 두 번 겨울이 지났지만 힘을 제대로 못 받은 새싹은 힘이 없다.

지난 초봄, 지게로 퇴비를 져 올려 뿌려주면서 올해는 건강하게 자라도록 잎을 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수확철인 4월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500여 평의 산마늘 밭에는 제대로 두 잎을 달고 있는 산마늘을 보기 어렵다.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최소 여건인 1잎으로 버티고 있다. '봄나들이 지인들에게 드릴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 나에게도 구차스런 변명은 있다. 허지만 미안하다.

4월은 두릅이 나는 계절이다. 성장점의 새순인 야생두릅은 씁쓰름하면서 독특한 향을 지닌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막걸리 한잔과 곁들이는 맛이란 별미 중 별미이다. 50여 그루에서 딸 수 있지만 너무 부족하여 꼭 나눠먹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차 다 돌리지 못했다.

고도가 낮은 시랑헌에서는 한 달 전에 두릅을 땄지만, 지대가 높은 산마늘 밭 부근의 두릅은 요즈음이 수확 철이다. 산마늘 밭 올라가는 길목 곳곳에 두릅을 심으면 한 달 정도 두릅을 채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즈음은 또 곰취와 곤드레 철이다. 시랑헌 주변에도 곰취를 심었지만 고로쇠나무 아래서 자라는 곰취와 비교할 수 없다. 곰취와 곤드레는 큰 나무 그늘에서 잘 자라는 산나물이다. 하기에 곤드레 나물밥이 유명하다. 여행길 강원도에서 곤드레 나물밥을 주문해 먹었던 경험이 있지만 예상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부담스러워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5월부터 밤을 줍는 9월까지는 시랑헌을 방문할 지인들에게 대접할 메뉴가 마땅하지 않다. 매실이 있지만 아직은 너무 소량이다. 어찌됐던 시랑농장에는 포도, 블루베리, 배, 감, 사과, 복숭아, 체리, 으름, 무화과, 호도. 오렌지나무, 살구, 다래, 복분자, 보리수,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아직 열매가 한두 개 달리는 정도다.

해가 넘어갈 때까지 일하면서 퇴비를 듬뿍 뿌려 줄 수는 있어도 벼 이삭이 더디 자란다고 마디를 쭉 뽑아 올려놓은 바보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농사와 수행(先農一如)은 서로 같다고 얘기하는 모양이다.

노후 귀농, 일만 하며 보내긴 아깝지요

은퇴 후 삶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제 2인생 생활을 누리기 위해 귀농을 선택한다면 소일거리 주제를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행복과 즐거움이 묻어나는 소일거리 없이 힘든 노동만 계속되고 수입마저 형편없다면 고립된 답답함에서 오는 외로움 때문에 정신적 공황상태로 내몰릴 수도 있다. 농촌생활은 자연과 일치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이를 보상 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절대로 필요하다.

나와 집사람은 일주일 중 2일 동안은 농사와 숲가꾸기, 목공하면서 보내고 3일간은 철저하게 자신의 성장을 위한 공부와 수행에 정진하고 주말에는 젊은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성을 되찾기 위한 교육과 정보를 공유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삶의 기본 틀이 무너져 무질서한 생활이 된다면 모두를 잃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진정한 보람과 승리는 도전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불안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툭툭 털고 일어서 갈 길을 가련다.

덧붙이는 글 | 농산물을 친환경 농사로 성공하고 상품화하기 위해서는 젊음과 열정을 갖춘 지성인들이 전문적인 지식과 비결을 갖춘 경험을 쌓아야한다. 농수산식품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싸이트 농수산사업정보시스템(http://www.agrix.go.kr) 방문하여 관심 있고 흥미로운 사업을 고르고 이를 위해 모든 역량을 모은 다면 괄목할 만한 성공가능성이 높다. 지금이 적기이다. 아직까지 귀농을 지원하는 젊은이들에게 특별혜택이라고 생각되는 정부지원사업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태그:#귀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