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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에 걸린 희망> 겉그림
 <철조망에 걸린 희망> 겉그림
ⓒ 클리어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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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대인 북쪽 메홍손에서 남쪽의 상글라부라까지, 약 800km에 이르는 이 밀림지역에는 수백 개의 미얀마 난민캠프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 거주하는 난민들의 수는 대략 300만 명.

미얀마 군부의 오랜 독재와 공포정치, 관리들의 부패,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정책 등으로 정치·경제적 소외를 받는 사람들이 생존율 50%라는 위험한 상황을 무릅쓰고 탈출에 성공하여 집단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난민수용소 중 하나인 누포캠프가 형성된 것은 1997년. 살길을 찾아 미얀마를 탈출한 난민들이 하나둘 이 지역에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자 유엔난민기구(UNHCR)와 세계 NGO 단체들이 태국을 설득했고, 태국이 이 산악지대를 절대 벗어나면 안 된다는 조건으로 미얀마인들의 집단거주를 정식으로 허용한 덕분이라고 한다.

누포캠프도 다른 난민 캠프들처럼 철조망으로 바깥 세상과 경계를 짓고 있는데, 사방 2km에 이르는 철조망 속 면적은 대략 10만 평. 이곳에 2만 여명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10만 평에 2만 명? 이해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시설이 괜찮은 18홀 규모의 골프장이 대략 30만 평 정도라고.

누포캠프에서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산 너머가 미얀마'라고 할 정도로 누포캠프는 미얀마 국경 가까이에 있다고 한다. 누포캠프가 있는 반누포 지역에만 이와 같은 난민수용소가 9개, 대략 30만 명 정도가 살 거라고 추산만 할 뿐, 정확한 수치는 모른단다. 

생존율 50%의 위협적인 상황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가면 감옥행이 되고 마는 사람들, 그래서 누구도 미얀마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을은 자체적인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며 가난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난한 것은 물질의 문제이지 정신의 문제는 아니어서 캠프는 오래전 서울의 달동네들처럼 빈궁의 터전에 평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 <철조망에 걸린 희망> 중에서

누포캠프
 누포캠프
ⓒ 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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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일 부분이다.
 본문 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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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포캠프에는 전기나 상하수도와 같은 생활기반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 때문에 거리에는 분뇨 냄새나 음식물 찌꺼기 등과 같은 생활하수 냄새가 진동한다. 이런 거리에서 발가벗고 맨발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징그럽게 못살던 지난날 우리의 생활을 담은 사진들 속 아이들의 모습과 흡사해 콧날이 시큰하기만 하다.

이들의 집도 엉성하기만 하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벽을 만들고 지붕에는 참나무 잎을 겹친 정도인지라 밤새 찬바람에 시달리기 예사다. 한마디로 생활 여건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단 한 건의 목소리 높은 언쟁도, 주먹질이 오가는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단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형태든 싸움이나 언쟁으로 인한 어떤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나마 허락받은 캠프마저 폐쇄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지라 좀 억울하고 불편하고 그래도 스스로 배려하고 절제하기 때문이란다.

누포캠프에는 부모 없이 형제나 남매들만 사는 아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부모들이 사망한 경우도 있고 부모들이 차라리 안전한 곳에 가서 살라고 아이들만 보낸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에게는 돈을 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근 들판이나 야산으로 몰래 가서 마를 캐거나 죽순을 따기도 하고 산나물을 캐기도 합니다. 그게 약간의 돈이 되어 아이들은 군것질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찐 옥수수나 야채 무더기를 앞에 놓고 앉은 아이 몇이 더 보입니다. 땟물 흐르는 얼굴엔 표정이 없습니다. 어른들처럼 이것 좀 사 가라고 소리치지도 않습니다. 어른들의 전포와 어른들의 거래 사이에 들꽃처럼 조그맣게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 어쩌면 이 아이들의 장래에 대해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픕니다. - <철조망에 걸린 희망> 중에서

<철조망에 걸린 희망>(클리어마인드 펴냄)은 누포캠프 미얀마 난민들의 삶과 일상을 사진과 글로 엮은 사진에세이집이다.

이 책에는 눈길 붙잡는 사진들이 유독 많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대부분은 마음 시리다. 사진 속 아이들은 이른 새벽에 나물을 팔러 나온 아이들이다. 외에도 책에는 찐옥수수를 팔고 있는 아이, 댓잎에 싼 찹쌀밥을 팔고 있는 아이 등 무언가 팔고 있는 아이들 사진이 많다. 누포캠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인근 들판에서 뜯어 온 나물을 팔려고 새벽잠을 깨어 나온 아이들. 이걸 다 팔아도 한국돈 1000원이 안된다.
 인근 들판에서 뜯어 온 나물을 팔려고 새벽잠을 깨어 나온 아이들. 이걸 다 팔아도 한국돈 1000원이 안된다.
ⓒ 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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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포캠프의 한 교육현장
 누포캠프의 한 교육현장
ⓒ 이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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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장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가요?"

갑자기 칸 누헤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아차 싶습니다. 너무 막막한 질문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차분히 설명합니다.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 못지않게 이들이 졸업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합니다. 특히 100명에 이르는 고아들의 경우 이 캠프에서 갈 곳이 따로 없습니다.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도 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캠프를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니까요. 그래서 학급을 조절하며 교육과정을 높여가고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그 자신이 고국에 가족을 두고 와 매일 허전한 가슴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교사들은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수업을 진행한답니다. 그들의 생활은 교사라는 직업이 아니라 고국의 민주화된 미래를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명감으로 인해 단단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 번도 미래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 아이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고 꿈이 있으니까요. 저 역시 교사로서 가르치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배움을 멈추는 것은 꿈과 희망을 멈추는 것이니까요" - <철조망에 걸린 희망> 중에서

누포캠프는 한국의 민간단체가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오고 있는 몇 안 되는 미얀마 난민캠프 중 하나란다. <철조망에 걸린, 희망>은 누포캠프를 몇 년간 후원해오고 있는 봉사단체가 바자회 등으로 모아진 성금을 전달하는 길에 한 신문기자와 사진작가가 동행, 누포캠프에 10일 동안 머물며 보고 느낀 미얀마 난민들의 속사정을 전하고 있는 책이다.

그동안 미얀마 난민들의 일상은 간혹 알려졌다. 하지만 이처럼 오랜 시간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미얀마 난민수용소에서 그들과 함께 잠이 들어 새벽을 맞이하고, 거친 음식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실상을 전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어떤 장소를 여행자의 눈으로 스치면서 볼 때와 이처럼 오랜 시간 머물면서 보고 느낄 때의 차이는 엄청나다.

책은 미얀마 군사정권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그들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을 사진으로나마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몇몇 사람들의 일그러진 욕망의 결과인 독재정권의 위험을 고발하고 있다. 동시에 무언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소중함과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절실하게 들려준다.

덧붙이는 글 | <철조망에 걸린, 희망>(임연태 글, 이승현 사진, 클리어마인드 펴냄, 2011년 2월, 14500원)



철조망에 걸린, 희망 - 국내 최초, 미얀마난민수용소 누포캠프를 가다

임연태 지음, 이승현 사진, 클리어마인드(2011)


태그:#미얀마(버마), #난민수용소, #누포캠프, #사진에세이, #클리어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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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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