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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주의 경우 총 13개 지역에서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각 지역의 헤드 스타트는 연방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세부적인 학습 내용을 조정할 수 있다. 사진은 보이지 시에 있는 헤드 스타트의 한 교실 내부(아이들을 촬영할 수 없던 까닭에 수업이 없는 날 사진을 찍었다).
 아이다호 주의 경우 총 13개 지역에서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각 지역의 헤드 스타트는 연방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세부적인 학습 내용을 조정할 수 있다. 사진은 보이지 시에 있는 헤드 스타트의 한 교실 내부(아이들을 촬영할 수 없던 까닭에 수업이 없는 날 사진을 찍었다).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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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 <한국일보>의 보도(한국 유치원만 '나 홀로 문자교육')를 통해 나는 매우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한국의 교육과학기술부가 고시를 통해 "유치원에서는 읽기, 쓰기를 배우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요구가 워낙 거센 까닭에 어린이집 교육이나 학습지 등을 통해 독서 교육과 영어·수학 등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핀란드와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초등학교 취학 전 문자 및 수 교육이 금지돼 있고 일부 국가는 위반 시 형사 처벌까지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한 교육과 교수는 "기본적인 인지능력도 떨어지는 아이에게 문자나 수를 주입하는 것은 정서 발달에도 안 좋고 교육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뜻밖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조기 교육이 매우 강조돼 왔고 특히 문자 사용 능력은 조기 교육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취학 전 어린이들이야말로 문자 교육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때 받은 교육의 경험이 이후 학교생활을 상당 부분 결정짓는다고 미국의 교육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공화당과 2011년 예산안에 합의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약속했던 많은 정책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오바마가 끝까지 지켜낸 것 중 하나가 바로 '헤드 스타트(Head Start)'라는 취학 전의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립 프리스쿨(Preschool) 프로그램이다. 

보이지 시에 있는 헤드 스타트의 한 교실 내부.
 보이지 시에 있는 헤드 스타트의 한 교실 내부.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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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주의 보이지 시에서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수 하포드는 헤드 스타트에서 아이들의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수 하포드가 보여준 커리큘럼에 따르면,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은 아이들을 사회적·정서적·육체적으로 발달시키고 인지 능력을 길러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듣기와 말하기, 읽기와 쓰기 등을 통한 언어 능력 개발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문자 교육을 위해 미국 전역의 소아과를 통해 책읽기 교육을 전파하고 미국 교육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 "손을 뻗어 책을 읽자(Reach Out and Read, 이하 ROR)"라는 유명한 NGO가 있다.

ROR의 설립자인 베리 주커만 박사는 4월 17일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뇌의 발전에 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미루어보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읽기 위한 기술을 배울 수 있다. 특히 태어나서 3세까지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베리 주커만 박사는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언어가 풍부한 환경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지지하는 연구 보고서가 늘고 있다. 그래야만 인지 및 언어 능력을 개발시키고 학교 공부를 위한 준비 수준을 대폭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조기 교육 강조하는 미국... 한국처럼 과도한 학업 경쟁 나타나기도

미국에서 조기 교육은 보통 프리스쿨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뜻한다. 프리스쿨은 5세 미만의 아이들(보통 3~4세)이 다니는 교육 기관으로 의무교육은 아니다. 

그러나 조지아와 일리노이, 오클라호마 등의 일부 주에서는 프리스쿨 교육을 '자발적 의무  교육'으로 적극 권장하며, 만 4세의 모든 아이가 무료로 프리스쿨에 다닐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프리스쿨에는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과 장애 아동을 위해 연방 정부 재원으로 운영되는 헤드 스타트, 각 주의 지원을 받는 여러 종류의 공립 프리스쿨(대부분의 주는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다), 또 사립 프리스쿨 등이 있다.

참고로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는 아이가 만 5세가 되면 의무교육을 시작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 의무교육은 유치원(Kindergarten)에서 시작한다. 이후 초등(Elementary School)-중등(Junior High School)-고등학교(High School)로 이어지는 12년간의 의무교육으로 구성된 까닭에 미국에서는 의무교육 시스템을 'K-12'라고 부른다.

조기 교육을 강조한 나머지, 미국 일부에서는 한국의 사교육 시장에서처럼 프리스쿨 과정부터 과도한 학업 경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올해 3월 뉴욕 맨해튼에 사는 니콜 임프레시아라는 여성은 요크 에버뉴라는 프리스쿨을 법원에 고소했다. 뉴욕의 이른바 명문 사립 유치원에 들어가려면 ERB(Educational Records Bureau)라는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요크 에버뉴 프리스쿨이 약속과 달리 자신의 네 살배기 딸에게 시험 준비를 제대로 시켜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임프레시아는 고소장에서 "이 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단지 하나의 거대한 놀이방임이 증명됐다"며 1년 등록금인 1만9000달러를 환불해달라고 요구했다.

임프레시아는 또한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가 프리스쿨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며 "좋은 프리스쿨에 들어가는 것이 보통 수준의 프리스쿨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보장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내에서 대도시의 유명 프리스쿨에 보내기 위해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대기 명단에 올려놓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기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여기서 소외되는 많은 아이들, 특히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무료 공립 프리스쿨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보이지 시의 한 사립 프리스쿨. 일주일에 5일, 하루에 6시간의 수업을 하며 한 달에 625달러(약 69만 원)를 받는다.
 보이지 시의 한 사립 프리스쿨. 일주일에 5일, 하루에 6시간의 수업을 하며 한 달에 625달러(약 69만 원)를 받는다.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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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아이들 위한 무료 공립 프리스쿨 확대해야"

베티 하트 교수와 토드 리슬리 교수는 16년 전 <미국 아동이 일상에서 겪는 의미 있는 차이들(Meaningful Differences in the Everyday Experience of Young American Children)>이라는 저서를 출간해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이들은 이 책에서 "교육적으로 또 언어학적으로 저소득층의 아이들은 시작부터 뒤처져 있다"는 관찰 결과를 내놓으며, 계층에 따른 조기 문자 교육의 차이가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모들은 2~3세의 자녀와 대화할 때 1시간 동안 약 2100개의 단어를 사용한 반면, 빈곤층에 속한 부모들은 약 600개의 단어만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이가 4세가 될 때까지 "부모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가정의 아이는 대략 4500 개의 단어를, 부모가 일반 노동자인 가정의 아이는 약 2600 개의 단어를, 저소득층 부모의 아이는 약 1300 개의 단어를 경험하게 된다"고 이 두 교수는 설명했다.

이 두 교수는 이러한 막대한 양의 단어 차이, 즉 문자 교육의 차이가 아이들이 의무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쯤이면 고착화돼, 어릴 때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이후 그 차이를 메우려 노력해도 부분적인 성공밖에는 거두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아동 건강 및 인간 개발 국립연구소'의 제임스 그리핀도 "조기 교육을 위한 약간의 투자만으로도 아이의 평생에 걸쳐 큰 이익을 낼 수 있다"며,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이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에 뒤처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올해 2월 미네소타주립대학의 아서 레이놀드 교수는 <아동 발달(Child Development)>이라는 학술지에 연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저소득층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시카고 소재 '아동 부모 센터(Child Parent Centers, 이하 CPCs)'가 어떤 교육적 효과를 일궈냈는지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연구 결과를 실었다. 이 연구를 위해 레이놀드 교수는 CPCs에 다녔던 학생 1500명(이들 중 93%는 흑인, 7%는 히스패닉)이 졸업 후 최고 26세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추적했다.

레이놀드 교수는 그 결과 CPCs에서 아이 한 명에게 1달러를 투자하면 4~11달러의 이득을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CPCs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잘 마치고 주변 동료들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았으며, 경찰에 체포되거나 우울증에 빠지고 약물 중독자가 되는 일이 훨씬 더 적었다는 것이다.

레이놀드 교수는 "우리가 발견한 것은 지속적인 양질의 조기 교육 프로그램이 개인에게는 물론 우리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것을 강력히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으로 조기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물론 납세자들에게도 이롭다는 분석이다.  

보이지 시에 있는 헤드 스타트의 한 교실 내부.
 보이지 시에 있는 헤드 스타트의 한 교실 내부.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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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재 미국의 공립 조기 교육 프로그램, 즉 공립 프리스쿨에 등록된 아이들의 비율은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4월 26일 미국 교육부는 산하기관인 '국립 조기 교육 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Early Education Research, 이하 NIEER)'가 조사한 "2010년 프리스쿨 상황(The State of Preschool 2010)"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4세 아동 중 약 26%(약 130만 명)가 주에서 지원하는 공립 프리스쿨에 다니고 있으며, 3세 아동을 포함하면 이 비율은 약 15%로 낮아진다. 특수교육 등록학생까지 합치면 4세 아동 중 약 31%가 주에서 지원하는 공립 프리스쿨에 다니고 있으며,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에 등록된 아이들을 다 합쳐도 공립 프리스쿨에 다니는 아이들은 40%에 조금 못 미쳤다.

주별로 보면, 오클라호마와 플로리다, 웨스트버지니아 등의 주에서는 4세 아동의 75% 이상이 주 정부가 지원하는 공립 프리스쿨에 등록돼 있지만 아이다호, 와이오밍, 유타 등에는 주 정부가 지원하는 공립 프리스쿨이 없다.

이와 관련, 수 하포드는 아이다호 주 상원의원 중 한 명이 아이들의 조기 교육은 엄마가 담당해야 한다며, 자식이 있는 여성은 집에서 양육에만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이다호의 경우 연방 정부 기금으로만 운영되는 헤드 스타트가 주의 공립 프리스쿨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아이다호 주의 4세 아동 중 약 14.7%, 3세 아동의 6.7%(여기에는 특수교육도 포함)만이 공립 프리스쿨의 혜택을 받고 있다.

각 주 정부에서 지원하는 공립 프리스쿨 등록률.
 각 주 정부에서 지원하는 공립 프리스쿨 등록률.
ⓒ NIEER 2010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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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교육·소득 수준에 따라 조기 교육 기회에 적잖은 격차

무상으로 운영되는 이러한 보편적 프리스쿨이 여의치 않은 지역에서는 부모가 조기 교육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2002년에 출간된 <출발문의 불평등: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 성취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배경 차이(Inequality at the starting gate : Social background differences in achievement as children begin school)>라는 책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자녀가 보육원 또는 프리스쿨에 다닐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그런데 미국의 중산층 가정은 양질의 프리스쿨 프로그램에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들의 소득은 자녀를 값비싼 사립 프리스쿨에 보내기엔 적지만, 소득 수준에 따라 무상으로 다니거나 저렴한 비용만 내면 되는 공립 프리스쿨에 보내기엔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빈곤선 아래 계층에 속한 아이들이 빈곤선 바로 위 계층의 아이들보다 프리스쿨 프로그램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난 NIEER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다.

이번 2010년 NIEER 보고서는 주 정부의 재정으로 많은 저소득 가정을 지원하는 공립 프리스쿨이 현재 재원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으며 따라서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 정부는 프리스쿨에 대한 지원을 삭감했다. 안 던컨 미국 교육부 장관의 말을 빌리면 프리스쿨의 상황이 '경기 침체'에서 '경제 공황'으로 악화된 꼴이다.

보이지 시의 한 사립 프리스쿨.
 보이지 시의 한 사립 프리스쿨.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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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기 교육, #문자, #프리스쿨, #헤드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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