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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인지(The Change)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는 대규모 이벤트로서의 컨퍼런스가 아니라 매년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담아내고, 컨퍼런스를 계기로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컨퍼런스를 지향합니다. 이와 같은 컨퍼런스의 취지를 살리고 또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도 사전에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먼저 컨퍼런스에서 기조발표를 해주시는 분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기조발표를 해주시는 분들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15가지 주제 테이블의 호스트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과의 인터뷰도 기획 중입니다. 꼭 컨퍼런스의 발표자나 호스트가 아니더라도 컨퍼런스의 주제에 대해 좀 더 다양한 측면에서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와 상상력을 제공해주실 만한 분들과의 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 기조발표자 가운데 세 번째로,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박웅현씨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지난 4월 21일에 진행됐습니다.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박웅현씨.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박웅현씨.
ⓒ 조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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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라는 직업부터 짤막하게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광고물의 퀄리티 관리를 하는 사람입니다. 방송프로그램에는 PD가 있듯이 광고물에는 CD가 있다고 보시면 돼요. 방송 PD가 구성작가를 데리고 카메라맨하고 출연자분들과 함께 프로그램 하나를 완성하잖아요? 그것과 똑같이 제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광고물 하나를 책임지는 거죠."

- 쉽게 말해서 광고를 만드는 작업을 총괄하고 감독하는 사람쯤으로 이해해도 되나요?
"되죠. 근데 그렇게 얘기하면 저 혼자 다 하는 것 같은데 그렇진 않고 되게 세분화되어 있어요. 마케팅기획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클라이언트랑 콜래버레이션(collaboration, 공동작업)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제작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저는 제작 쪽이에요. 이렇게 얘기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지죠."(웃음)

- 선생님은 광고에서 시대를 읽는다든가 광고에 시대정신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통 이해하고 있는 광고의 의미와는 다른 가치가 담겨 있는 것 같은데요,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궁금하더라고요.
"일단 전 광고는 예술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기업의 마케팅 활동입니다. 그래서 예술을 한다고 하면서 이 일을 하면 제가 보기엔 상도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광고주가 나한테 예술 하라고 광고비를 집행하는 건 아니거든요.

광고주는 우리가 보기에는 꽤 큰 금액을 광고라는 커뮤니케이션에 쓰는 거죠. 그 이유는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은 거죠. 그 문제가 소개건, 호감이건 이것을 불특정 다수인 대중들과 소통을 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광고라는 미디어가 필요한 거고, 그걸 만드는 게 제 일이고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하고 소통을 하려면 사람들을 읽어야 되는 거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인드셋에 들어가 있는지 읽지 않으면 그 사람들과 완벽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광고는 시대를 읽어야죠. 시대를 읽지 않는 광고는 사람들 마음속에 안착하기가 쉽지 않죠.

광고란 것은 '법적인 사람'들의 '변호사' 같아요. 모든 기업은 법인, 법적인 사람이잖아요. 법적으로 시민의 형태를 갖춘 거잖아요. 기업도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싶어해요. 왜 그러냐? 그렇게 해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것이고,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에. 무작정 '사람들의 돈을 긁어 모아야겠다', '불필요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해야겠다' 하는 기업은 오래 못 갈 거예요. 사람들이 그렇게 둔하지가 않거든요.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종국적으로는 사회에 대한 올바른 메시지의 발신 기업으로서 자리 잡길 원하고 있고, 그게 광고에 반영이 되어야 하죠. 사실 그런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미디어가 신문은 아니거든요. 신문은 사회의 '목탁'으로서, '공기'로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망하는 '검사'적인 시선이 있는 거고, 기업체에 대한 '변호사'적인 시선이 있는 미디어는 광고죠."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박웅현씨(왼쪽).
 크리에이티브디렉터 박웅현씨(왼쪽).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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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없는 불특정 다수와 나누는 소통

- 정치나 사회운동 쪽은 그런 소통을 잘 못하는 것 같거든요? 뭐가 부족해서 그런 표현들을 잘 못할까요?
"당연한 것 같아요. 저희의 본질은 소통이에요. 저희는 복잡한 생각을 증류하는 일을 하거든요, 복잡한 생각을 증류해서 한마디로 표현하는 일이 내가 쓰는 근육 이에요.

근데 사회단체는 소통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올바른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을 중심에 두고 있잖아요. 엑스퍼티즈(expertise, 전문기술)가 아닌 거죠. 저는 부동산을 모르잖아요? 그래서 중개업자 찾아가잖아요. 부동산이 내 일의 본질이 아니니까. 이런 거랑 똑같은 거 같아요. 저희는 소통이 본질이니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소통할 것인가를 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고민하는 거죠."

- 정치도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잘 안 되는 거잖아요.
"맞죠. 근데 그 사람들은 사회의 비전을 만드는 게 먼저잖아요. 만약 어떤 정치집단이 소통만 생각한다면 본질이 허약해질 것 같거든요. 소통이야 다 필요하죠.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필요한 건데, 그게 누구에게나 본질로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죠.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거죠.

조국 교수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정치는 우리 생활 전반이다. 정치가 관여 안 하는 것이 있느냐' 하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맞아요. 맞는데,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정치가가 될 수는 없잖아요? 정치도 소통이고 강의도 소통이고 비즈니스도 소통이고, 다 맞는데, 그게 다는 아니죠. 중요한 한 부분인 거죠.

정치하는 사람들의 본질은 정치인 거고, 저희들의 본질은 소통인 거죠. 기업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길거리를 다니는 아무 관심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긍정적 소통을 하는 게, 말하자면 저희들의 엑스퍼티인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소통을 발달시킬 수밖에 없죠."

-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은 정치나 사회운동이 제대로 된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저는 제대로 된 콘텐츠를 제대로 된 부동산업자에게 맡기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내가 집을 사겠다고 100일 동안 뛰어다닌 노력이 엑스퍼티즈 있는 사람이 하루 들인 노력보다 못하거든요. 그래서 정치권이나 사회단체들이 하는 걸 보면 올바른 메시지들을 만드는 것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올바른 메시지가 제대로 소통되지 못하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그거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좀 받아야 되지 않나 생각해요."

- 5월 13일 대화 주제로 저희가 드린 것은 '공존'입니다. 우리가 선생님께 적절한 주제를 드린 것인지 궁금하기도 한데요.
"저한테 바다를 던져주신 거지요.(웃음) 공존은 바다죠. '이 넓은 바다에서 어떻게 헤엄을 칠래?' 하는 거는 당연히 적절한 거고요. 여기서 어떤 부분을 조망할 것이냐 하는 선택이 필요한데, 저는 넓게 해석을 하고 싶어요.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인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환경이나 다른 생명체와의 공존이 요즘 관심사예요."

- 저희 표현으로는 '생태적 가치'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저는 '홍익인간'이란 말을 해볼까 싶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홍익인간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가 불편했었거든요. 나이가 들어서 보니까 이제 알겠어요. 왜 홍익인간이냐, '홍익생명'이 되어야 하는데. 왜 사람만 중요하냐, 모든 생명이 중요한데. 이런 가치관의 전환이 일어나야 될 거 같아요. 아마 포커스는 그리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에 대한 공부 없이 소통은 없다

-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변화의 지점에 있다면 그런 변화의 내용을 잘 읽어내야 하잖아요. 요즘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스마트폰에 적응해야 할 거 같아요. 그것 때문에 놓치는 가치들도 있고 반대로 얻는 가치들이 있겠죠. 분명한 사실은 지금 우리는 롤러코스터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거예요. 롤러코스터처럼 뒤집혀서 돌고 있어요. 단지 우리가 이 안에 있어서 못 느낄 뿐이지. 미친 시대예요.

1380년에 살던 사람이 500년 지나 1880년에 와서 못 살 이유가 없었어요. 왕조가 바뀌고, 사람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공동체 내의 생활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거든요. 근데 1880년에 살던 사람이 1980년에 오면 머리에 쥐가 나서 이게 뭐냐고 할 거란 말이에요. 이 단위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거죠.

우리 어머니가 그래요. 우리 어머니가 80댄데, 그 당시 전문대를 나와서 선생님을 하시던 지식인이신데, 지금은 영어 때문에 생활이 안 돼요. 독일어를 공부하셨고 영어는 공부한 적이 없어요. 어머니가 60대 정도 때부터 영어의 공습이 시작된 거죠. 어머니만 봐도 '야 진짜 20년 30년 차이만 되어도 이렇게 무서워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느리게 가는 기차에서는 뛰어내릴 수라도 있는데 롤러코스터는 워낙 빨리 돌고 있기 때문에 뛰어내리기도 겁나는 거 같아요."

 박웅현씨가 쓴 책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겉그림.
 박웅현씨가 쓴 책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겉그림.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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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라는 책을 내셨는데, 인문학과 광고라는 개념의 조합도 좀 낯선 것 같습니다.
"광고는 인문학일 수밖에 없어요. 광고는 불특정 다수의 아무 관심 없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어떤 메시지를 안착시키는 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을 공부해야 되는 거잖아요. 기업을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건 크게 어렵지 않아요. 기업은 페이퍼 몇 장이면 딱 정리가 되잖아요. 이 기업이나 이 브랜드나 이 상품을 저 사람들하고 다리를 놔주려고 하는데, 어려운 건 저쪽(사람들)이에요. 사람들은 다 다르고 늘 변하니까.

그러니까 '사람공부' 해야 되잖아요. 저는 그게 인문학이라고 봐요. 인문학이란 단어를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로만 볼 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길거리 가다가 본 말싸움 하는 사람들의 모습, 지금 선생님과 나누는 이런 대화가 몇 년 후에 광고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건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살다가 보면 '아 그때 선생님이랑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은행나무 저 쪼그만 거 좋았는데' 하는 생각이 딱 잡혀서 그게 광고가 될 수 있거든요.

소설, 음악, 미술 다 그렇지 않아요? 에드워드 호프는 길거리 지나가다가 주유소에서 영감을 잡아가지고 그림을 그렸단 말예요. 인문학을 '우리가 사는 삶 전체'라고 해석을 해주지 않으면, 광고가 비빌 언덕이 없어요.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이 나간 다음에 한 후배가 인터뷰를 하러 왔는데, '그럼 여태까지 광고는 인문학이 아니었단 말이에요?' 하고 묻는 거예요. 속으로 '어, 이 친구 봐라?' 싶었죠. 그것도 맞는 말이거든요. 인문학이 아니면 광고가 뭘 하겠냔 말이에요."

- 인문학은 사람을 중심에 놓는 것이니까, 인문학의 영역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으로 넓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난 인문학이 뭔지 모르겠어요, 아직도요. 국문학자들이 들으면 '이놈!' 할지 모르겠지만, 문사철만 인문학인가요? 그럼 물리학 같은 건 인문학이 아닌가요? 결국 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이런 대화, 시장 아줌마의 살아나가는 모습, 요즘 뜨는 음악의 패턴, 현대 그림의 흐름 이런 게 다 인문학적인 것 같아요."

- 광고 쪽으로 나오려고 하는 젊은 사람들을 위한 교육과정이 있나요?
"광고홍보학과가 있죠. 그런데 저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 같지 않아요. 그런 기술들은 1~2년이면 다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의 깊이를 보고 싶어요. 어떤 감정적 경험을 해왔는지가 더 중요해요.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울고, 많이 웃으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어떤 직간접적인 경험들을 했느냐가 중요하죠. 그 축적이 능력으로 발산돼 나올 거거든요.

컨텐츠를 생산하는 일에 대해 압박감이 왔을 때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발산되어서 나올 텐데, 그래서 공부만 잘하는 사람들보다 경험의 폭이 넓은 사람들이 이 일을 잘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무조건 많이 뛰어다니라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감성적 경험을 많이 하라는 거거든요. 똑같은 이 거리를 걸어가도 감수성이 있는 친구들은 뭔가를 딱딱 잡아내서 머릿속에 집어넣을 거고요,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아무것도 못 볼 거란 말이죠."

- 그건 어느 영역으로 나가도 문제일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생들이 '저는 광고를 하겠습니다' 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아요. '왜 인생 그렇게 사냐? 그러다가 만약에 네가 광고회사 못 들어가면 실패한 인생이 되는 거 아니냐? 그러지 마라' 하고 얘기해주죠. 광고가 되었건 기자가 되었건 작가가 되었건 게임프로그래머가 되었건, 이 영역에서 잘하는 사람들은 어딜 가도 잘할 거예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http://thinkcafe.org/conference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씽크카페#박웅현#오마이뉴스10만인클럽#씽크카페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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