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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학습관(화천군 하남면 위라리 소재)
 화천학습관(화천군 하남면 위라리 소재)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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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가 학습관에서 나오고 싶다고 그러네."
"뭐야! 이 자식이 복에 겨워도 유분수지. 절대로 안 된다고 그래!"

며칠 전 집사람이 근심스런 얼굴로 아들(형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대꾸할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대화를 단절해 버렸습니다.

학습관은 이런 곳

학습관 내부
 학습관 내부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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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관이란 곳은, 시골학교 출신들도 인 서울 인류대에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군(郡에)서 세운 기숙형 학습공간입니다. 입교는 지역 내(고등학교 4개교, 중학교 5개교) 중학교 3학년생부터 고교 3학년생 학생들에 대해 6개월 단위로 입사시험을 치러 학년별 20등까지 입교 자격이 주어집니다.

인류대학 진학이 목적이다 보니 대도시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강사를 데려와 국영수 위주의 수업방식으로 진행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것이구요. 이러다보니 강사들도 성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후 6시, 학습관 학생들은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후 12시까지 학습관 수업에 매달리고, 다음날 오전 6시 기상과 동시에 아침식사에 이어 학교 등교. 집에는 한달에 두 번(토요일)만 허락될 정도로 그야말로 스파르타식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입교한 학생들의 실력이 수직으로 상승되는 것이 보여질 정도이고, 부모 입장에서는 사교육비가 전혀 들어가지 않으니 비입교 학생을 둔 학부모나 저학년 학생의 부모들은 어떻게든 아이의 학습관 입교를 위해 경쟁적으로 학원에 보내는 등 아이들 교육에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또 과거 입학철만 되면 보다 나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 도시로 전학을 시키면서 인구가 감소되던 풍조가 사라짐은 물론, 학습관 입교를 목적으로 도시에서 이곳 시골로 전학을 오는 역현상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학습관 효과는 아이들의 성적상승 외에 소폭이나마 농촌지역 인구의 증가 원인도 되고 있습니다.   

학습관 자퇴 반대는 과연 아들을 위한 것이었던가?

원어민과의 프로토킹을 통해 외국의 문화도 배운다
▲ 학습관 수업장면 원어민과의 프로토킹을 통해 외국의 문화도 배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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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지금 고1인 아들 녀석은 중학교 3학년 초에 입교해서 상위권 성적을 늘 유지해 왔습니다. 따라서 아빠인 내 입장에서도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났을 때 '우리 아들이 학습관에 있다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참 폼 나는 일이겠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학습관을 나오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아빠에게는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으니까 엄마에게만 이야기를 했던 모양인데, "힘들면 모든 학생들이 힘들지 지가 뭔데 나오겠다는 거야.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해!"라고 말하고 며칠이 지난 25일. 퇴근 후 집에 돌아왔는데, 집사람이 울었는지 표정이 영 아닙니다.

"무슨 일 있었어?"
"실은 조금 전에 형주 다녀갔어."
"걔 도대체 뭐가 문제래? 왜 그런데?"

"집에 와서 애가 눈물만 글썽이고 말을 하지 않기에 물었더니, 수학이 다른 과목에 비해 성적이 떨어져서 학습관 국어, 영어 수업시간에도 수학공부를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답답한가봐. 그래서 집에 와서 부족한 수학과목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다음 7월에 시험을 봐서 다시 학습관 들어가도 전체 진도가 뒤처질 것 같고, 자기도 엄청 괴로운가봐."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학습관 못 들어가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서 나와? 그건 말도 안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밖으로 나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밖에서 '과연 무조건적인 학습관 퇴실 반대가 아이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지금까지 내 아들은 학습관에 있다'라고 자랑했던 것이 사라진다는 두려움? '아들이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면서요?'라는 주위의 말에 우쭐해 하던 것이 없어진다는 것?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집으로 들어온 내게 집사람은 저녁때 학습관 선생님과 상담을 좀 해 보겠다고 합니다. "나도 같이 가서 형주 좀 만나보면 안 될까?"라고 했더니 집사람은 일을 더 악화시키지 말고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나서지 말라고 합니다.

"애를 본 지도 오래됐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야기나 좀 들어볼게."

그깟 인류대가 뭔 대수냐!

학습관 현장체험
 학습관 현장체험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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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쯤 학습관 앞에서 아들을 만났습니다. 2주 만에 만났는데, 녀석이 왜 그렇게 초췌해졌는지 참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녀석 얼굴을 보니 '엄마에게 무슨 말을 듣고 야단치러왔구나'라는 표정입니다.

"힘들지? 아빠가 너한테 부탁하나 할 게 있어 왔는데, 절대로 말이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형주야!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학습관 나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집으로 와라."

녀석을 보니 눈물을 글썽입니다. 되돌아오는 길, '이럴 걸 왜 진작에 말을 하지 않아서 아이를 힘들게 했을까. 내가 참 못할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아들아! 그깟 일류대학이 뭔 대수냐! 네가 무엇을 결정하든지 아빠는 너를 믿는다!' 


태그:#화천군, #화천학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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