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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무신론도 존중한다. 근대적 과학의 발달, 특히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기독교의 창조론에 가한 타격은 인류의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중대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이 순간에도 진화론에 대한 창조론의 공격은 거세게 진행되고 있고 진화론자와 무신론자들의 창조론에 대한 비판은 논리와 실증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나는 이 문화 총서를 '인문적 교양'을 위해 쓰고 있다."-<당신의 종교는 옳은가> '머리말' 중에서

 

한평생을 언론에 몸과 마음을 던진 김종철. 그가 바라보는 이 세상은 어떤 곳일까. 이 세상 곳곳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종교는 어떠하며 교육, 글쓰기, 음악, 영화, 언론, 스포츠, 공연예술, 미술, 여행은 어떤 옷을 걸치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    

 

그가 생각하는 '인문적 교양', 그 뿌리는 대체 어디서부터 더듬어야 할까. 먼저 글쓴이와 김종철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부터 살피자. 글쓴이는 1980년대 그가 펴낸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맬컴 엑스> <프랑스혁명사> 등을 읽을 때 그를 처음 알았다. 그렇다고 서로 만나 사이가 아니다. 저자와 독자로 알았단 그 말이다.    

 

그 뒤 여러 행사에서 먼발치로 그를 몇 번 보았고, 간혹 가벼운 인사도 나누었지만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그런 어느 날 하루, 우연하게 그가 '미디어오늘'에 '맬컴 엑스와 알렉스 헤일리의 나라 미국-오바마 시대와 한국 ⑤'에 쓴 글을 읽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글에 글쓴이가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한 시인은 그것을 이렇게 적었다. / 밤을 새워 <뿌리>를 끝까지 다 읽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미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밀가루를 공짜로 나눠주던 그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나라 미국의 속내에서는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아프리카 흑인들에 대한 살인과 착취가 있다는 것을.

(중략)

<뿌리>를 다 읽은 그 다음날 아침 나는 그동안 내가 쓴 글들을 모두 들고  앞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뜬구름 잡는 식의 글이 깨알처럼 박힌 원고지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원고지는 순식간에 까만 재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마치 우리 조상님 제사를 지낸 뒤 지방을 태우는 것처럼"-블로그 '이소리 시인의 글나라'

 

글쓴이는 지금도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를 늘 개인 블로그에 옮기곤 한다. 그랬다. 언론인 김종철이 생각하는 '인문적 교양', 그 뿌리는 하찮은 시인이 쓴 글 한 줄조차도 귀하게 여김에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모두 10권으로 매듭짓고자 하는 인문학 총서 '문화의 바다로'에 어떤 내용이 얼마나 꼼꼼하게 들어 있는지 어림짐작이 가지 않는가.

 

인문학 강좌 많지만 '지적 허영심' 채우는데 '급급'

 

"대학생이나 사회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는 넘쳐나지만 대부분이 흥미 위주에 치우쳐 있고 기성세대들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데 머무른다.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까닭에 10권의 인문학 서적을 직접 쓰기로 계획했다. 청소년부터 기성세대까지 깊이 있는 인문학을 익히고 활용토록 하자는 목표로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언론인 김종철(67)이 5권이나 되는 인문학 총서를 '21세기북스'에서 펴냈다. <당신의 종교는 옳은가>, <교육인가 사육인가> <글쓰기가 삶을 바꾼다> <음악, 삶의 소리를 듣다> <영화, 삶의 풍경을 찍다>가 그것. 이 책들은 지난해부터 10권을 목표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언론, 스포츠, 공연예술, 미술, 여행 편이 더 남은 셈이다.

 

이 책을 받은 그날, 글쓴이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왜 하필이면 종교를 제1권으로 가장 먼저 내세웠을까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혹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일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통성기도 한 '무릎 기도' 사건 때문일까. 아니다. 이 책은 이미 그 이전에 씌였고, 나왔다. 그렇게 단순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글이라는 것이다.

 

김종철은 "우선 종교라고 하면 내 머리에는 부정적 인식이 먼저 떠오른다"라고 말한다. 그는 "오늘날의 한국현실만 보더라도 개신교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일부 보수적 교파들과 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과는 달리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치외법권 같은 '성역' 안에서 천문학적 액수의 헌금을 모아 크고 넓은 교회 건물을 짓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는 "그들은 아무리 불의한 짓을 일삼는 권력자들이라 하더라도 자기와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지지하거나 감싸고 있지 않은가"라며 "불교에서도 권세를 잡은 소수의 승려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어기고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거나 권력과 야합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못 박았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인이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비록 적은 사람이지만 민주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는 종교인들도 있다. 김종철은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의 역사가 이만큼 발전했고 당장은 민주주의와 평화가 위협을 받고 있더라도 소생할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덴마크에서는 모든 사람이 직함이 아니라 이름 부른다

 

"어린이들까지 제물로 삼은 십자군 전쟁은 무엇을 남겼는가? 그것은 성전인가 운동인가, 아니면 종교의 이름을 빌린 침략인가? / 십자군은 '성지 예루살렘'을 모슬렘들에게서 탈환하고 이슬람 세계의 '악행'을 응징하자는 종교적 명분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2세기에 걸쳐 진행된 십자군과 이슬람 세력의 전쟁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십자군의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이었다." <당신의 종교는 옳은가> 중에서

 

제1권 <당신의 종교는 옳은가>는 '종교란 무엇인가'를 주춧돌로 삼아 지구촌에 있는 모든 종교, 그 속내를 차분히 파헤치고 있다. 제1부 '종교란 무엇인가'에 있는 '종교의 기원',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 '유교', '도교', '한국의 자생적 종교'와 제2부 '당신의 종교는 옳은가'에는 '종교끼리 왜 싸우는가', '신은 있는가 없는가', '민중과 함께한 진보적 기독교인들', '생명을 섬기는 종교인'들이 그것.

 

"덴마크에서는 직업학교만 나와서 일찍 취업하면 대학에 다니는 기간만큼 소득을 먼저 올릴 수 있어 대학 졸업자와 경제력이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 직업에 따른 신분 차이가 덴마크에 전혀 없지는 않지만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덴마크 사회에서는 마을이나 직장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직함이 아니라 이름을 부른다." <교육인가 사육인가> 중에서

 

제2권 <교육인가 사육인가>는 승자 독식과 학벌주의가 판을 치고 약자들에게 패배의식을 안겨주는 우리 교육 문제를 정치, 사회, 역사란 눈으로 꼬집으며, 교육 선진국들 정책에 비춰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교육의 길'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교육은 '우리 속의 짐승'을 다루듯이 청소년들을 '사육'하려 들고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빨리 빨리'... 50년 동안 국민들 성격 조급하게 만들어

 

"시는 그 자체로 순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관해서 발언하면서 불의와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가? / 나는 이 물음에 대해 양자택일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가 순수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불의와 모순에 눈을 감는 '순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비순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삶을 바꾼다> 중에서

 

제3권 <글쓰기가 삶을 바꾼다>는 지은이가 어릴 때부터 글을 쓰면서 깨달은 점과 특히 언론인으로서 기사와 논설을 쓰면서 느낀 사실, 문학평론과 번역을 하던 시절에 겪은 일들을 징검다리로 삼아 글쓰기 이론과 실제를 날실과 씨실로 엮었다. 신문사 초년기자 때 기사가 시뻘겋게 고쳐진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던 일, 사건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사와 논평을 쓰던 일 등이 그것. 

 

"그 음악실에는 요즘 같은 DJ가 없었다. 넓은 벽면 앞에 흑판을 세워두고 들려주는 곡이 바뀔 때마다 40대 중반의 금테 안경을 쓴 남자가 분필로 거기에 작곡자와 곡 이름을 적곤 했다. 음악실에 들어간 사람들이 신청곡을 써서 계산대에 내면 '걸어 다니는 그 DJ'가 적절히 선곡해서 들려주었다. 그는 순전히 로마자로 흑판을 메웠다." <음악, 삶의 소리를 듣다> 중에서

 

제4권 <음악, 삶의 소리를 듣다>는 코흘리개 시절 아버지 무릎을 베고 처음 들은 유행가 '낙화유수'로 문을 연다. 중학교 2학년 때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미국 팝 음악 가수들 노래에 빠져 어른들만 다니던 음악감상실을 기웃거리던 추억과 대학 때 좋아했던 '고전음악' 등이 음악 전문가들 이야기, 역사적 사실과 맞물린다.

 

"'워낭소리'의 가장 큰 매력과 힘은 '느림의 미학'이다. 이 작품은 일부를 빼고는 '슬로모션'의 느낌을 준다. 원래 우리의 조상들은 '빨리빨리'와는 거리가 멀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육자배기와 판소리의 진양조가 풍기는 느긋하고 애잔한 정서가 한국 전통음악의 진수라고 본다. 그런데 1961년의 5·16 군사쿠데타 이후 '민족중흥'과 '조국 근대화'를 외치면서 군사작전 하듯이 사회의 모든 부문을 몰아붙인 박정희 정권의 '빨리 빨리'가 50년 동안 많은 국민의 성격을 조급하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 삶의 풍경을 찍다> 중에서

 

제5권 <영화, 삶의 풍경을 찍다>는 '좋은 영화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란 물음표에 보내는 성실하고 따뜻한 느낌표다. 이 책은 1895년에 태어난 무성영화부터 21세기 블록버스터까지, 우리 영화뿐만 아니라 세계영화까지 골고루 건드린다. 특히 할리우드가 미국 '일국 패권주의'를 알리는 매개로 영화를 이용한 속내를 툭툭 건드리며 참 영화를 바로 세우는 지름길을 닦는다.

 

언론 전선에 서서 몸과 마음으로 새긴 '한국문화백과사전'

 

"진정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면 보수가 적더라도 진보적인 신문, 인터넷매체를 지원하라. 주간지에도 좋은 기자가 많이 있다. 기자가 되고 싶다면 세속적인 기준으로 유명한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명예욕에 사로잡혀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내 경험상 기자가 능력을 인정받는 데는 오랜 시간 걸리지 않는다."

 

언론인 김종철이 '종교'로 문을 연 뒤 교육, 글쓰기, 음악, 영화, 언론, 스포츠, 공연예술, 미술, 여행 등 모두 10권으로 매듭짓는 '문화의 바다로' 총서는 여러 사람이 내놓은 자잘한 이론을 긁어모아 새롭게 짜깁기 한 책이 아니다. 이 총서는 그가 언론 전선에 서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입으로 맛보고 몸과 마음으로 느낀 20~21세기 한국문화백과사전이다. 

 

언론인 김종철은 1944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1967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으나 1975년 자유언론실천운동 주동자라는 까닭으로 강제 해직당한 뒤 문학평론과 번역 일을 했다. 1984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았고, 1985년부터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민통련) 대변인과 사무처장을 지냈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해 논설간사와 편집부위원장,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그 뒤 연합통신(연합뉴스로 바뀜) 대표이사, 사단법인 한국-베트남 함께 가는 모임 이사장,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 아태 민주지도자회의 이사, 국제언론인협의회 이사, 한국신문협회 감사 등을 맡았다.

 

펴낸 책으로는 <저 가면 속에는 어떤 얼굴이 숨어 있을까>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지역감정 연구>(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맬컴 엑스>(공동번역) <프랑스혁명사> <인도의 발견> <마호메트>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 등 20여 권이 있다. 지금은 재능대학교 초빙교수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시민단체 '민주통일시민행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김종철#문화의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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