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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상실의 시대'가 오는  4월 21일 영화로 개봉된다.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시클로'의 트란 안홍이 메가폰을 잡고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나리오 작업에 일부 참여한 이 영화는 잔인한 4월, 죽은 라일락 둥치가 찬란한 꽃을 피우는 계절에 펼쳐지는 스무살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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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상실의 시대' 포스터 .
ⓒ 영화 '상실의 시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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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4월, 주인공 와타나베는 죽은 친구의 애인인 미도리와 데이트하고 초록같은 싱그러운 여자 미도리를 만났다. 그 다음해 4월에는 영원히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자살로 떠나 버린 나오코에 대한 그리움과 주체못할 젊음으로 잔인한 4월을 맞으며 청춘의 한 페이지를 넘겼다. 결국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죽음과 더불어 각기 다른 연령대와 성격을 가진 여러 여자들과의 스침을 통해 한뼘 더 성장했을 지도 모른다.

소설'상실의 시대'는 1989년 국내 발매와 더불어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젊은이들과 함께 한 영원 불멸의 청춘소설이다. 1990년대를 관통하며 한국 사회의 모든 문화 코드의 핵심에 있었던 하루키는 각종 미디어에도 지극한 영향을 끼쳤다.

가수 신해철이 오프닝 멘트를 쓰던 자정의 라디오 방송에서 감수성 가득한 멘트들을 듣다보면 "어! 이건 어째 하루키스러운데?" 하는 끄덕임이 일기도 했고, 전문직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SBS드라마 '도시남녀'의 주인공들의 고민과 좌절도 하루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상실의 시대'가 이 드라마의 주요 모티브로 삽입되기도 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 이와 비슷한 카메라 워킹을 선보인 최진실, 김민종, 진희경 주연의 '홀리데이 인 서울', 삼순이 김선아의 신인 시절 모습이 담긴 향수 광고 등등 그 시절 모든 것은 허무를 주제로 한 하루키와 맞닿아 있었다. 구체적 정황 없이 트렌드와 분위기 묘사로 인물의 갈등을 표현하는 하루키 스타일이 영화, 광고, 책 전반에 영향을 끼친 셈이다.

1994년, 김한길 원작의 '여자의 남자'가 출판됐을 때 작가는 여주인공의 입을 빌어 이 소설 '상실의 시대'를 소개했다. '여자의 남자' 속 나약한 남자 주인공은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를, 반면에 아름답고 섬세한 내면과 의지를 가진 여주인공은 미도리와 나오코를 잘 버무려 탄생한 인물인 듯 설정했다. 사실 작가 김한길은 어느 인터뷰 기사를 통해 일본 체류시 읽은 '상실의 시대'를 염두하고 '여자의 남자'를 썼다고 이야기 했었다.

이제 어느 북카페든 '상실의 시대'는 필수 도서 목록이 되었다. 지금 한창 인기있는 하루키의 '1Q84'보다 그를 한국 사회에 가장 열광적으로 알린 책 '상실의 시대'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작대로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한다거나 '개똥벌레 연가'라고 해선 그 애틋했던 푸른 시절의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그건 분명히 '상실의 시대'여야만 하고, 그 안에는 하루키로 인해 행복하고 아팠던 독자들의 젊은 날이 오롯이 녹아있다.

이제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 트란 안훙이 하루키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4월 21일 영화를 통해 재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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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상실의 시대' 중 한 장면 .
ⓒ 영화 '상실의 시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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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첫 느낌을 중시하기 위해 '상실의 시대' 외에는 하루키를 읽지 않았다는 트란 안 훙. 4년 간의 끈질긴 구애로 영화화를 허락받고 '데스노트L' 의 마츠야마 켄이치를 와타나베로 하여  미즈하라 키코, 키쿠치 린코 등의 배우와 함께 이 영화를 풀어나갔다. 원작 출간 24년 만에 영화화된 이 작품은 하루키의 열정도 한몫했다. 감독이 초고 시나리오를 하루키에게 가져갔을 때, 이 꼼꼼한 작가는 원작에도 없는 구절을 하나 삽입했다고 한다. 애인인 기즈키의 자살로 상심에 빠진 나오코가 하는 이 대사는 무언가에 애타하고 갈망하는 스무살 언저리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영원히 열여덟으로 머물고 싶어. 그가 없는 세상에서는 스무살이 되고 싶지가 않아'


태그:#상실의 시대, #트란 안훙,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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