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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카이스트에서 벌어진 연속적인 죽음 앞에 심각한 심리적 공황을 느낀다. 망연자실한 현실 앞에 애도할 기력조차 생기지 않는다. 더더욱 돌연히 일어난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15년 전에도 비슷한 연속적 죽음이 일어났었다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이라 칭송받는 그들에게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우리는 지금 교육에 자본과 경제의 논리를 들이대며 무한경쟁 속으로 아이들을 몰아넣는 대한민국 교육의 병폐가 쓰나미로 덮쳐올 것을 예고하는 '대재앙'의 서막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예감은 초중등학교에서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리라.

 

그렇다. 경쟁이 미덕이 되고, 살가운 인간미보다 고도의 기술만이 추구되며, 따스한 인문학적 정서를 나누기보다 익명성의 문화가 자연스러운 작금, 카이스트가 아니라 여느 대학일지라도 유사한 극단적 죽음의 선택은 일어날 수밖에 없으리라. 해마다 300여 명의 대학생이 자살하는 세계 1위의 자살국이라는 불명예에 자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일까.

 

원인을 알고 해법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하지 않는 한 근본적 문제는 해소될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는 '성적'만을 위해 몸을 학교에 가두어두니 대규모 양계에 가깝고, 지식교육은 창의성이 감금되니 주입식 논리로 비등하고, 감성과 이성의 부조화가 날로 커져 인면수심은 날로 세를 확장해갈 뿐이다. 전인교육의 구호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희망을 담을 수 없는 이같은 현실일진데 당연히 아이들이 숨 쉬고 있는 교육현장은 암울하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다.

 

비애의 또 다른 면은 일선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는 교사가 '희망'을 말하지 못하는 데 있다. 직무유기일까. 더는 이 거대한 경쟁의 벽을 넘어서기 힘들다며 너희들은 약하니 힘을 쥘 때까지 기다리자고 권하는 것은 비교육적인 일이리라. 그 와중에서 멍들어가는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더 이상 비극적인 희생양이 되지 않아야 한다.

 

어른들이 먼저 '고해성사'에 나서야 

 

어찌 이 비극적인 죽음의 행렬 앞에서 생명의 고귀함을 간과할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 지각 있는 기성세대라도 감당하고 막아야 할 일이다. 더는 죽음의 유령이 청소년들의 머리에 어슬렁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기성세대들이 짊어질 최소한의 양심적 책무이다. 언론의 호들갑으로 보아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면 아래로 잠들 것이니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여주는 행동이 섬뜩하여 열거하기조차 부끄러운 사례들이 허다하다. 경쟁의 논리로 이익만을 쫒도록 가르친 결과이다. 그래도 현실을 감안하여 문제를 풀어야 한다. 자신의 손에 들고도 교사에게 당당하게 거짓말을 일삼는 경우, 이성을 잃어버린 채 교사에게 욕하며 밥 한 그릇에 매달리는 경우, 공부만 중요하고 청소 같은 생활 부분은 하찮게 생각하는 경우 등등 이 모두가 학교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기운들이다.

 

어디서 해법을 찾을 것인가. 먼저 어른들의 잘못을 고백하고 청년들의 희망을 빼앗지 말자는 연대적인 고해성사를 하자.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회는 더 큰 불행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이제 감금에서 자유를, 지식교육에서 문화예술교육을, 경쟁에서 상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에게 문화를 살려주고,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끼를 키워주려고 할 때 학교에서 아이들은 삶의 희망을 찾을 것이다.

 

한마디로 무엇보다 학교의 포로가 된 아이들을 풀어주는 일이 희망 그 자체이다. 동아리 활동으로 문화적인 창의성을 보장해 주고, 지식의 포로가 아니라 지혜의 마술가가 되도록 유도하며, 자기정체성을 만들어가도록 사색하고 탐색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해법의 실마리가 있다. "더 많은 죽음에도 끄떡없는 외국의 명문대학이 있다"는 몰상식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영어, 수학 수업 부담만 늘려놓은 집중이수제도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음악, 미술, 체육 과목을 활성화시키고 고민을 풀어낼 수 있는 자기 사색의 시간을 찾아갈 수 있는 인문학적 과목을 강화해야 한다.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을 통해 인간관계를 배우고 가치와 철학을 정립하는 인성 분야를 다룰 수 있는 교육과정이 회복되어야 한다. 독립적인 개체능력을 키우고, 새로운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창의성 교육프로그램이 늘어날 때 아이들의 삶은 학교에서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광주 지역 주간지 <시민의 소리>에도 원고를 보냈습니다.


#카이스트#집중이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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