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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2006년 3월 26일 경기도
▲ 처녀치마 2006년 3월 26일 경기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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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푸른 이파리가 치마폭을 닮기도 했고, 피어난 보랏빛 꽃이 드레스의 술을 닮은 듯한 봄꽃 처녀치마와 첫 눈맞춤을 한 이후 해마다 봄이면 그와 눈맞춤을 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위의 꽃은 다음 날 다시 보러갔을 때 누군가 캐어갔다. 지금도 어디선가 잘 자라고 있길 바랄뿐이다. 인간의 소유욕이란 결국 자신도 가지지 못하고 남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도감에서 보던 것보다 다리(줄기)가 짧아서 다른 꽃인가 했는데, 그해 겨울 추위가 극심했고, 3월 26일이면 서둘러 피어난 꽃이기에 다리가 짧다고 했다.

처녀치마 2006년 4월 15일, 강원도
▲ 처녀치마 2006년 4월 15일, 강원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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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해 4월 중순, 뜻하지 않은 곳에서 처녀치마를 만났다. 날씨가 따스해진 덕분에 롱다리 처녀치마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한 번 눈맞춤을 하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손짓을 한다.

야생의 들꽃은 첫 눈맞춤하기가 어렵지, 한번 눈맞춤을 하면 쉽게 보인다. 도감으로만 볼 때에는 실물이 가늠이 되지 않다가 실물을 보면 가늠이 되어 잘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처녀치마 2007년 3월 31일 강원도
▲ 처녀치마 2007년 3월 31일 강원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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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해, 처녀치마가 필 무렵이면 그곳으로 달려갔다. 피어나는 꽃들, 작년에 본 꽃이라고 해도 피어날 적에 경이로운 눈으로 봐주고, 박수를 쳐주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았다.

봄이면 수없이 많은 꽃들이 피고진다. 그 누군가의 눈맞춤 없어도 홀로 피고지는 들꽃, 그들은 하늘과 바람과 눈맞춤하는 비결을 알기에 가장 예쁜 모습으로 피어나는 것이리라.

처녀치마 2010년 4월 10일 강원도
▲ 처녀치마 2010년 4월 10일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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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조금씩은 시들해졌ㄴ은지도 모르겠다. 2010년 새해는 무척이나 춥고 폭설이 많이 내려서 산짐승들도 유난히 힘든 겨울을 보냈던 해였다. 봄이 왔을 때, 평상시에는 입을 대지도 않았을 처녀치마 이파리까지 모조리 뜯어 먹었다. 산짐승들이 폭설에 얼마나 굶주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해는 그야말로 하의실종 처녀치마, 추운 만큼 줄기도 단단했다.

처녀치마 2011년 4월 10일 경기도
▲ 처녀치마 2011년 4월 10일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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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해, 올 겨울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더니만 금방 여름이라도 올 것처럼 더워진다. 아직 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이제 겨우 조만큼 피어났는데 벌써 여름이면 안 되지. 아마도 그동안 만났던 처녀치마 가운데 가장 숏다리 처녀치마인듯하다. 줄기라고는 보이지도 않고, 이파리도 냉해로 거반 말라 볼품이 없다.

퇴촌, 유난히 추웠다. 4월 10일, 그늘진 계곡엔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았다. 그만큼 추운 곳이므로, 이렇게 짧디짧은 숏다리로 피어난 것이다.

그들의 피어나는 모습 속에도 지난 계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지난 게절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때 그때 길이가 다른 처녀치마의 다리(줄기)에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있듯, 우리네 사람들의 세월의 흔적도 우리 몸 어딘가에는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 흔적들 어떠하든지 아름답길 바란다.


태그:#처녀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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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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