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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법살인을 당한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이 52년만인 올해 1월 20일 대법원 법정에서 생환했다. 인천의 정치적 거목 중 한 명인 죽산 선생이 간첩 누명을 벗기까지 그의 가족과 함께 노력한 이들은 많다.

 

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회 관계자, 송영길 인천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지용택(75) 새얼문화재단(이하 새얼재단) 이사장도 오랜 동안 죽산 선생의 무죄 판결을 위해 인천지역 시민사회와 정치권 등을 추동했다.

 

지 이사장은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동북아 최대 화약고로 부각되는 인천에서 반세기 전 평화통일을 주장했다가 북한의 간첩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죽산 조봉암 선생의 평화사상이 더욱 빛난다며, 그의 사상을 후대들이 실천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최근 전국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지 이사장을 새얼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죽산을 인천의 인물로 접근했다"

 

지 이사장은 4·19혁명 때 옥고를 치른 뒤 노동운동에 참여해 1978년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인천에서 새얼재단을 설립했다. 지역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황해문화'와 지난달 300회를 기록한 '새얼아침대화'를 만들어 이끌고 있다.

 

'새얼아침대화'는 1986년 4월부터 25년째 매월 둘째 주 수요일에 열리는 시민 참여형 소통 공간이다. '아침을 여는 열린 대화의 장'이란 모토로 시작, 인천 알기를 비롯해 우리사회의 주요한 이론적 흐름을 조명해왔다.

 

특히 보수와 진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교 역할에 노력해왔다. 보수 논객인 류근일·김대중씨를 비롯해 진보 논객으로 알려진 고 리영희 선생, 홍세화·오연호·박원순·한홍구씨 등이 참석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인천지역에서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공히 '큰 어른'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 이사장은 "몽양 (여운형) 선생도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이지만, 죽산 선생과 비교하면 엘리트였다. 반면 죽산은 초등학교를 나와 독학으로 전생을 독립운동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바친 분으로, 평화통일을 위해 생명을 걸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고 한 뒤 "이승만 정부에 참여한 것도 결국 가난한 농민들을 돕기 위함이었고, 친일파들이 득세함에도 남한에서 토지개혁을 이뤘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실패했지만, 죽산이 농림부장관을 통해 한 남한의 토지 개혁은 6·25때 농촌지대의 공산화를 그나마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정부는 친일인사나 부일(=일제의 문화통치 등에 부응) 인사 중심으로 만들어졌는데, 지지를 못 받으니 좌파라고 알려진 죽산이 농림부장관이 된 것이다. 죽산은 인천의 거목이다. 남북의 대립으로 어느 지역보다 불안한 인천에서 그의 평화통일사상을 우리 후대들이 기억하길 바란다. 인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성장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죽산의 생환 의미에 대해 "인천의 역사를 자긍심이요, 이를 통해 인천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인 인천 사람의 첫 번째 권리와 의무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 이사장은 또한 죽산 선생 생환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했다.

 

"1995년 굴업도 핵 폐기장 반대운동 때 핵에 대해 잘 몰랐다. 내 주변사람도 그랬고, 당시 한국전력의 로비가 엄청났다. 결국 옳은 결정이었다. '인천대교 주경간 폭 확대 시민운동'도 인천의 정체성과 응집력을 자각해 정부 계획을 뒤집었다. 죽산 선생도 인천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생환해 오셨다. 죽산 선생 같은 선각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크고 훌륭한 지도자가 (인천에서) 나오고 그의 사상을 따라 배우기를 바란다. 그래야 죽산 선생이 생환한 의미가 더 클 거다."

 

지 이사장은 인천의 정치적 선각자 중 많은 이들이 불행한 길을 걸었다고 했다. 4·19혁명 후 성립된 민주정부의 내각 수반이던 장면 수상은 5·16군사쿠데타로 실각했고, 북한 부수상까지 오른 이승엽도 미제국주의의 간첩으로 몰려 박헌영과 함께 처형당했다고 설명했다.

 

지 이사장의 인천 애정은 남다르다. 그는 '인천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최근에는 김일성 주석의 동상을 최초로 조각한 인천 출신의 조각가 조규봉 선생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몇 년 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이를 확인하기 위해 김 주석의 동상에 뛰어올라 남북한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한때 '노조 사관생' 별명까지

 

창영초등학교와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사장은 경희대학교 법대 재학시절, 4·19 시기에 옛 신흥초등학교에서 국회의원 7명을 불러 '이권분배분식고발청년대회'와 '혁신보수경제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인천고 재학시절 또래 친구들을 규합해 만든 '창사회'라는 단체는 3·15 부정선거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인천 최초로 인천공회당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삐라(=유인물)'를 뿌리기도 했다.

 

결국 5.16 직후 군부에 의해 투옥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옥살이를 한 후 대부분의 친구들이 국회의원 보좌관 등 정치계로 입문할 때, 그는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한화갑·조홍래 등이 당시 활동하던 동지들이다. 그때부터 지 이사장은 동향이고 정치적 지향이 비슷한 죽산을 따랐다. 죽산 재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지 이사장은 1963년 전국자동차노동조합 경기지부 교육선전부장으로 노동운동에 처음 뛰어들었다. 78년엔 한국노총 사무총장 등을 맡았다. 당시 지 이사장은 한국노동계에 큰 획을 긋는 두 가지 일을 주도했다.

 

"자동차노조인데, 당시 운전기사들이 사고만 나면 구속됐다. 상주 구속자가 700명 정도는 됐다. 가장이 일할 때는 생활이 넉넉했지만 구속되면 아이들이 학교도 못가는 경우가 많아, 장학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운수회사 사장들로부터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지 이사장은 이 일로 당시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장학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당시 박 전 대통령은 한국노총에 15억원을 지원했고, 이를 통해 한국노동운동사 최초로 노조에 장학금시스템이 도입됐다.

 

"영세업체 대변해주니, 나중에 장학금도 내놔"

 

지 이사장은 2000년 이후에나 노동계에서 진행한 이른바 '준법투쟁'을 당시 선보였다. 노조 사관생 별명을 얻은 게 이때다. 그는 자동차노조 경기지부에서 일할 때 '인천 월미도~서울 용산'을 운행하던 운수회사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운수노동자들을 탄압하자, 운수노동자들에게 제한속도를 엄격히 지키고 학교 앞마다 정지하는 준법운행을 지시했다.

 

운행시간이 두 배로 늘어 수입이 줄고,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결국 운수회사는 임금을 인상했다. 이 지사장은 당시 업무방해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또한 그는 당시 퇴직금을 관행적으로 주지 않던 운수업계를 흔들어 퇴직금제도를 정착시키기도 했다.

 

노동자들뿐 아니라, 영세운수업체들을 대변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경기도 노동위원으로 대형 운수업체들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등 대형운수업체들의 횡포를 막아주기도 했다. 이는 노동자 장학 사업을 벌이고 장학재단을 만드는 데 힘이 됐다. 영세운수업체들의 재정후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 이사장은 "노동운동, 사회운동 한다고 내가 옳으니 나를 따라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함께 하는 이가 없으면 안 된다. 죽산이 왜 죽었겠느냐"며 노동계와 시민사회 후배들에게 대중성을 주문했다.

 

  

"평화만이 인천과 한국 발전, 황해를 평화 바다로"

 

지 이사장은 서해 앞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 인천사람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50년 전 북진통일, 멸공통일을 국시로 할 때 평화통일을 주장한 분이 인천에 있었다. 그 분이 간첩 누명을 쓰고 죽었다가 52년 만에 생환했다. 평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인천은 발전할 수 없고, 한국도 발전할 수 없다. 조금 더 나가면 눈에 보일 것이다."

 

그는 인천은 항구이며 국제공항이 있는 물류도시인만큼, 남북간 긴장 고조는 인천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개성공단이 현재 '10분의 1' 밖에 활용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개성공단이 활성화돼 북한의 개풍군에서 강화를 거쳐 서울로 물류가 이어질 수 있도록, 서해 앞바다가 평화의 바다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봉암, #죽산 ,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평화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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