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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작품설명을 하고 있는 김종학 화백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작품설명을 하고 있는 김종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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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배순훈)은 2011년 첫 전시로 설악산의 화가 김종학(1937~)展을 6월26일까지 연다. 그의 화업(畵業) 50여 년을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그의 대표작 90여 점을 선보인다. 미공개 인물화도 볼 수 있고 딸에게 보낸 그림이 그려진 편지와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일면도 엿볼 수 있다.

김종학 화백이 작년에 들려준 일화가 생각난다. 그는 청소년기부터 화가지망생이었는데 경기고 다닐 때 학교에서 이 사실을 알고 고2 때부터 정규수업 외 특별수업에는 소설이나 철학책을 읽게 배려해줬단다. 그의 거꾸로 삶은 이렇게 시작됐는데 그 이후에도 추상시대에 구상을, 문명시대에 자연을 택했다. 어쨌든 그는 지금 전성기를 맞고 있다.

김 화백은 화가이면서 또한 민예품수집가로 유명하다. 1989년 6월엔 일부를 중앙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의 친구인 김재준씨는 "우리의 고가구 통해 흡수된 한국미를 간접적으로 그의 그림에 현대적 조형어법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는데 그의 작품이 서양물감을 씀에도 한국적인 이유일 것이다.

1962년 '악튀엘' 회원으로 전위적 추상미술 실험

'작품(Work) 603' 캔버스에 유채 95.2×144cm 1963. 60년대 대표작
 '작품(Work) 603' 캔버스에 유채 95.2×144cm 1963. 60년대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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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이 김 화백의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전에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뜻밖이다. 남녀의 인체를 해체시킨 것 같은 작품인데 60년대 추상화 이렇게 실험적이고 전위적이고 현대적이었다니 지금 봐도 너무 참신하고 충격적이다.

그는 서울미대회화과를 졸업한 1962년에 '악튀엘(Actuel, 현시점)' 창립멤버가 되었다. 이 모임은 당시에 패기만만한 박서보, 윤명로, 김창열, 정영렬, 정상화, 김봉태 등 미래의 블루칩 작가가 대거 포진한 앵포르멜(informel)운동으로 한국전쟁 후 보수화된 국전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앵포르멜(비정형)미술'은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 후 일어난 미술사조로 1950년대 말 우리나라에 들어와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내면의 주관적 의지를 두터운 물감에 격렬한 몸짓과 붓질로 의도성을 배제한 채 그리는 방식이다.

1978년 '회색산' 입체와 추상의 혼합형식

'회색산(Gray Mountain)' 천에 아크릴 175×131cm 1978. 70년대 대표작
 '회색산(Gray Mountain)' 천에 아크릴 175×131cm 1978. 70년대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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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회색산'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풍으로 추상파와 입체파 혼합형식으로 현대미가 넘친다. 설악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여러 차원의 조형언어로 추상을 해볼 만큼 해본 셈이다. 당시 많은 작가들은 추상이 구상보다 물체에 생명과 호흡을 넣어주고 작품에 강력한 운동성과 율동감을 일으킨다고 믿었던 것 같다.

김종학(金宗學 KIM Chong Hak 1937~) 화백 약력
[학력 및 경력] 1937 평북신의주 출생 1956 경기고졸업 1962 서울 미대 서양화과 졸업 1968-1970 동경미술대학 서양화 판화과 연수 1977-1979 뉴욕 프랫(Pratt)대학 판화과 연수 1979 설악산으로 들어감

[개인전] 2011 국립현대미술관(과천) 2008 예화랑(서울) 2007 조현화랑(부산) 2006 가나아트센터(서울) 2004 갤러리현대(서울) 2002 이인성미술상 수상초대전(대구)2001박여숙화랑(서울)1976 LAM Shinno화랑(미국) 1974 무라마쯔 화랑(도쿄)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삼성미술관, 선재미술관, 아라리오갤러리, 토탈미술관, 포스코미술관 [수상] 2001 제2회 이인성미술상 1967 제5회 국제판화비엔날레동경 장려상

80년대부터 추상에서 벗어나 구상으로 귀결

'숲(Wood)' 캔버스에 유채 194×330cm 1986
 '숲(Wood)' 캔버스에 유채 194×330cm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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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7년 미국에 추상을 공부하려갔다가 서서히 구상으로 방향이 바뀐다. 사람에 관심을 두고 인물화도 그렸지만 왠지 음울하다. 1979년 귀국해 첫 아내와 헤어졌고 심신은 극도로 지쳐 있었다. 그해 그는 결국 현실을 도피하듯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거기가 낯설고 외로웠지만 어머니 품 같은 설악에서 자연을 재발견하고 그 위력에 압도당한다. 그의 고독과 상처를 치유하는데 꽃그림만한 위로가 없었다. '숲'을 보면 '붓꽃, 나팔꽃, 패랭이꽃' 등 다채롭다. 그런데 구상인 그의 꽃그림이 추상화가 칸딘스키를 연상되는 것은 왜 일까. 그의 말대로 "추상에 기초한 구상"이기 때문인가.

1990년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뭔가를 창조한다는 건 작가만의 특권이란다. 물론 외롭고 고달프고 겁도 나지만 오직 자기 홀로 서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아니 길이 없는 길을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재미는 다른 사람들 모를 거야"라고 적고 있는데 이제 그가 설악산에 간지 10년 만에 비로소 자연과의 향연 속에 작가됨의 긍지를 느꼈다는 뜻이리라.

80년대 후반, 도약에서 완숙으로 가는 전환기

'잡초(Weeds)' 천에 아크릴 185.5×223cm 1987
 '잡초(Weeds)' 천에 아크릴 185.5×223cm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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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작 '잡초'는 초록바탕이 너무 참신하여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고조된 감정의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등도 직간접으로 실험한 것 같다. 1987년을 도약기와 완숙기로 나누기도 하는데 당시 민주화의 영향인지 색채와 구성이 더 변화무쌍하고 활기차다.

하여간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계절의 순환만큼 생명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담지 할 수 있은 것이 또 뭐가 있으랴. 그는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빛과 어둠의 미세한 변화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조금씩 다르게 그린 것인가. 그런 과정에서 작가는 자연의 질서와 혼연일체가 되는 교합의 과정을 경험했을 것이다.

90년대, 더 격정적 색채로 화면을 불 지르다

'새와 폭포(Birds and Waterfall)' 캔버스에 유채 165×415cm 1999(위). '백화만발(Flowers in Bloom)' 캔버스에 유채 79×229cm 1998(아래)
 '새와 폭포(Birds and Waterfall)' 캔버스에 유채 165×415cm 1999(위). '백화만발(Flowers in Bloom)' 캔버스에 유채 79×229cm 1998(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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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들어서는 정신착란을 일으킬 것 같은 휘황찬란한 색채를 써 그림분위기를 더 달군다. 가로 415cm인 대형작품을 만들면서는 마치 색채의 방화범이나 된 듯 화폭에 불을 지른다. 깊은 감흥 속에 폭풍우가 일어나고 그런 자유분방함이 관객을 몰아지경으로 이끈다.

이번 전을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이순령씨는 "그의 작품세계를 기운생동의 세계이며 남성적 호쾌함이 넘치는 신명의 세계"라고 말했는데 정말 액션페인팅처럼 그의 붓질은 격렬해 보이고 여성의 꽃그림과는 다르게 남성의 거친 터프함을 느끼게 한다.

2000년대 들어와 구상과 함께 추상 재등장

'산비탈(Mountain Slope in Winter)'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00
 '산비탈(Mountain Slope in Winter)'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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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와서 그린 '설경'을 보면 반추상, 반구상이다. 그의 말처럼 추상과 구상은 서로 영향을 주는 형제인가. 이는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구상의 타성에서 벗어나 생략이나 농축을 활용하는 추상을 뒤섞어 예기치 않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설경을 신록보다 더 풍성하고 생동감 넘치게 그리다니 믿기지 않는다.

겨울 찬바람에 나리는 나뭇가지가 미묘한 율동과 리듬감을 주어 사람마음을 설레게 한다. 하얀 눈빛이 무척 청량하고 아래 하얀 눈길은 여백의 미마저 느끼게 한다. 당긴 고무줄 같은 긴장감도 일어나고 소나무가 눈이 살짝 덮었을 때 감칠맛도 난다.

현란한 색동의 몰아지경 속에 피는 생태예술

'여름 냇가(Summer Stream)' 캔버스에 유채 197×256cm 2005 국립민속박물관소장
 '여름 냇가(Summer Stream)' 캔버스에 유채 197×256cm 2005 국립민속박물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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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2005년 여름풍경으로 설악산 꽃그림의 원숙함을 넘어 그 절정에 도달하고 있다. 그가 평생 갈고닦은 꽃그림의 성과인가. 이런 그림은 그린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넘실대는 녹음방초(綠陰芳草)에 그림을 보는 이들을 경탄을 자아낸다.

그야말로 무념무상에 도달한 생태예술이다. 마음을 비우니 더 충만해 지는 건가. 이런 화풍은 그야말로 '김종학표' 꽃그림이라 할만하다. 우리가 언제 저렇게 현란한 적청록(赤靑綠)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유려한 색감에 녹아든 꽃향기와 냇물이 협주를 하는 듯하다.

근작들 추상 같은 구상, 서양화 같은 동양화

'설경(Snowy Mountain)' 캔버스에 유채 130.3×162cm 2006. '흰산(White Mountain)'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08
 '설경(Snowy Mountain)' 캔버스에 유채 130.3×162cm 2006. '흰산(White Mountain)'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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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인 '설경'과 '흰눈'을 보니 2001년 초대전 도록에 쓴 김종학 화백의 글이 떠오른다.

"동양화에서 숭상하는 것이 기운생동이다. 내 경우 기법은 서양화지만 동양화를 그리는 셈이다. 사생한 것은 일일이 그리고 있으니 기운생동이 약해진다. 그래서 "꽃을 한참 보고 또 보고 머릿속에 집어넣었다가 화폭만 보고 쏟아 넣는다"

그의 그림은 눈과 머리로 그리는 서양화기법보다는 마음으로 그리는 동양의 사의화(寫意畵)에 가깝다. 고미술수집가의 안목을 갖춘 선비가 그린 산수화 같다고 할까. 이런 그림은 어린아이처럼 그 영혼이 맑고 순수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는 것이다.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림일 뿐이야"라고 말에서 그가 추구한 미학을 엿볼 수 있다. 하여간 그는 설악산 끝자락에서 조국의 산하를 관조하며 민족의 색채로 이를 화폭에 마냥 수놓았다. 이제 그의 작품이 좀 더 많은 세계인과 소통하는 일만 남았다. 국가적 지원이 아쉽다. 끝으로 금강산이 열렸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사뭇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큐레이터와 대화 4월 8일 오후 3시-5월 13일 오후 3시 제2전시실
[전시설명회] 평일 오후 2시, 4시. 주말 2시, 4시, 6시
[좌담회] 김종학과 친구들 (김종학, 송영방, 김봉태, 윤명로, 김형국) 4월15일 오후3시-5시
[작가론특강] 이태호(명지대교수) '한국의 전통색과 김종학의 채색화' 5월11일 오후3시-5시
[수화전시설명회] 매우 화요일(예약제) 청각언어장애인 예약 이은수 02)2188-6226
[더 많은 정보] 국립현대미술관홈페이지 www.moca.go.kr 입장료 성인기준 3000원



태그:#김종학, #설악산화가, #악튀엘, #구상,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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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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