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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공연, 그리고 감동

일요일(27일) 오후, 오랜만에 등산을 다녀온 뒤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고 있던 날 아내가 흔들어 깨었다. MBC <나는 가수다> 할 시간이라며 대뜸 TV를 켜는 아내.

오전만 하더라도 <나는 가수다> 본방을 사수해야 하는지 조금 갈등했더랬다. 1주일간 워낙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나는 가수다>이기에 정나미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마녀사냥이라도 하는 듯 담당 PD와 김건모를 몰아붙이는 사람들과 거기에 부화뇌동하여 PD마저 교체시키는 한심한 MBC.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가수다>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 사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정상급 가수들의 주옥같은 노래는 포기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들은 오늘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1주일간 그토록 매를 맞았는데 담당 PD 쌀집 아저씨는 그가 마지막으로 연출한 <나는 가수다>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열창하는 그들
▲ 가수들의 향연 열창하는 그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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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여 TV를 보기 시작했다. 아니 들었다는 표현이 맞을 테다. <나는 가수다>는 가수의 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해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니까. 저번 주와 같은 포맷의 내용들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가수들이 각기 다른 가수들의 대표곡을 선택했고, 중간점검에서는 역시 자기들끼리 노래를 부르고 서로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7명 가수들의 본 공연.

이소라의 '멋진 하루'부터 시작해서 백지영의 '약속', 김건모의 '유 아 마이 레이디(You Are My Lady)', 김범수의 '제발', 윤도현의 '대쉬(Dash)', 박정현의 '첫인상', 정엽의 '잊을게'까지 공연은 너무도 훌륭했다. 가수들은 모두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그들을 보는 청중평가단은 물론 시청자들 역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브라운관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그들의 진정성.

그래도 백미는 역시 김건모였다. 저번 주 7등을 해서 탈락해야 함에도 재도전이라는 무리수를 받아들여 많은 누리꾼들의 공적이 되어버린 그. 기존의 진지하지 않고 조금은 건방진 이미지까지 겹쳐 몇 배는 고생했을 20년차 가수 김건모는 무대에 나와 사과를 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데뷔 때부터 해서 과연 김건모가 이렇게 긴장하고 열심히 노래한 적이 있었을까. 그의 떨림은 분명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그를 맹비난했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혹자들은 김건모의 재도전을 정치인들의 거짓말과도 비교하는데 정치인들이 기존의 룰을 바꿔 이렇게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만큼 정치를 잘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굳이 룰의 변화를 마다할 필요가 있겠는가. 

비록 7위를 차지한 정엽이 첫 번째 탈락자가 되었지만, <나는 가수다>는 담당PD 쌀집 아저씨가 애초부터 밝힌 프로그램의 취지를 분명 전달했다. 비록 프로그램이 서바이벌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축제가 되어 대중들이 좋은 가수들의 좋은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그리고 그것이 대중음악 발전에 보탬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아직도 난 김건모의 '유 아 마이 레이디(You Are My Lady)'를 절로 흥얼거리고 있는 중이다.)

자충수를 둔 못난 MBC

벌써부터 아쉽다
▲ 주말의 화제 <나는 가수다> 벌써부터 아쉽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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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자 정엽의 '잊을게'가 다시 한 번 불려지고, MBC는 더 감동적인 공연으로 돌아오겠다며 한 달 간의 방송 재정비를 자막으로 올려 보냈다. MBC의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시청률을 견인하고 광고도 '완판'했던 주말 예능을 스스로 유보시킨 꼴이 된 것이다. 자충수를 두고만 못난 MBC.

1주일 전, 김건모의 재도전 결정으로 많은 누리꾼들이 <나는 가수다>를 비난했을 때, MBC는 이를 조금 더 지켜봐야 했다. 비록 여론은 그들을 뭇매질했지만, 이번 방송 후 게시판에 들어가면 볼 수 있듯이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이 <나는 가수다>의 재도전 결정에 대해 유보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주와 같은 반전은 시청자들의 욕구가 서바이벌이 아닌 제대로 된 가수들의 공연 관람에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그리고 다음 방송분으로 프로그램의 기본 취지를 대중에게 설득시킬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만 있다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수가 노래로 말하듯이, 담당 PD에게도 프로그램을 통해 말할 기회만 주어줬더라면 쉽게 풀릴 수 있었던 일인 것이다.

그런데도 MBC는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담당PD의 전격적인 교체와 한 달 불방이라는 최악의 강수를 두었다. 겨우 잡았던 기회를 스스로 버린 것이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

결국 이번 <나는 가수다> 사태는 최근의 MBC 분위기를 설명하는 하나의 징표이다. 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몇 달 동안 애정을 쏟아 부은 현장의 이야기보다는, 대중들의 작은 욕지거리 하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여 담당 PD마저 바꿔버리는 MBC 정책 결정자들의 비겁하고 졸렬한 모습이 까발려진 것이다.

1주일 간 계속되는 대중들의 비난도 참지 못하는 그들. 하물며 그들이 정권의 계속되는 비난을 견딜 수 있을까? <PD수첩>의 PD가 원칙 없이 바뀌고, 끊임없이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한낱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PD의 교체 소문이 떠도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로 이와 같은 MBC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게다가 대중들이 <나는 가수다>를 하필 정치권에 빗대지 않는가. 그러니 더욱 예민할 수밖에)

<나는 가수다 - 시즌2>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어쨌든 버스는 이미 떠났다. 개인적으로는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돌아오고 자진사퇴한 김건모의 노래 역시 다시 듣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어려울 듯 싶다. 그렇다면 <나는 가수다>는 어떻게 변할까?

본 기자는 이전 글에서 <나는 가수다>가 서바이벌에서 공존으로 진화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워낙 분야가 다르고 쟁쟁한 각각의 가수가 한데 모였기 때문에 진화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생각은 지금도 다를 바 없다. 비록 내상을 많이 입고 존폐의 위기까지 몰렸지만, <나는 가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방영된다면 이 프로그램은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할 것이다. 2주 전 재도전이 진화의 조건으로 첨가되었다면,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나는 가수다>는 시청자들의 관심과 신뢰를 그 새로운 조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서바이벌이 공존으로 가는 길에는 그만큼의 시련이 필요하며 더 많은 룰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혹자는 <나는 가수다>에 박수칠 때 떠나라고 한다. 서바이벌 형식을 벗지 않고서는 가수들의 열정을 끌어내기 어렵고, 그렇다고 서바이벌을 붙잡고 있으면 가수들의 참여가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보라. 이미 프로그램은 서바이벌에서 축제로 옮겨가고 있으며, 가수들은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많은 실력 있는 가수들이 그 마음 놓고 노래할 수 있는 자리를 탐낼 것이며, 그 무대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 들 것이다. 현재 왜곡된 우리의 음반시장에서 이와 같은 무대를 만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직 우리가 서바이벌을 통해서만 가수들의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한경쟁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디 <나는 가수다>가 계속 진화해주기를 바란다. 이 지긋지긋한 무한경쟁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균열해 가는지 궁금하다.


태그:#나는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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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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