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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폐지돼야 한다. 이런 빤한 얘기를 구구절절 할 필요는 없다. 이런 반인륜적인 구석기 시대의 법률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필자가 이번 '자본주의 연구회' 사건을 보면서 놀란 것은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아직 법 조항으로서 명백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나? 오히려 이번 자본주의 연구회 사건을 보면서 필자가 충격을 받은 것은 공안기관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자신들의 무기를 휘두르는 '과감함'에 있다.

 

'자본주의 연구회'는 그야말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누구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동아리이다. 그 무슨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사실 공산주의를 연구하면 어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연구하는데다가, 모여서 읽는 책들이라고는 언론에서 보도한 대로 필자의 책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나 <88만원 세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쾌도난마 한국경제>같은 사회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들이다.

 

필자도 자본주의 연구회의 요청으로 수차례 연구회 소속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고 도움이 필요하면 자문을 주기도 했다. 이런 활동을 하는 동아리? 대학에 널리고 널렸다. 굳이 기존 동아리와 차이점을 찾자면, 자본주의 연구회는 매우 단시일 안에 급성장을 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연구회가 개최한 대안경제캠프이나 대안경제포럼에는 수백 명의 대학생들이 몰려서 김수행 교수, 이해영 교수 같은 경제 분야의 권위자들에게 강의를 듣고, 그 중에 자본주의 연구회의 활동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은 가입을 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연구회는 학기 중에도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하면서 대학에서 제공하는 강의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지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자본주의 연구회는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필요할 때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동안 대학에서 이런 진지한 모임에 목말라 하던 학생들은 자본주의 연구회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에 주목을 하게 됐고 그것이 단시일에 자본주의 연구회를 성장시킨 동력이었다. 그저 자기 자신의 스펙 쌓기와 기업 맞춤형 휴머노이드가 되기 위해 눈과 귀와 입을 막은 학생들에 비하면, 자본주의 연구회의 대학생들은 얼마나 진취적인가?

 

대학생들 활동이 불안했던 이들이 비상식적인 방법 동원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대학생들의 이런 활동이 매우 불안했던 것 같다.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고용해서 이익을 얻고 청년들을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으로 밀어 넣어서 이득을 얻고 엄청난 빈부격차와 약육강식의 아수라장 속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미래를 짊어질 대학생들이 사회를 좀 더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자신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학생의 고민과 행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정당하고 상식적인 것 아닌가? 이런 자연스럽고 정당하고 상식적인 행위를 막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자연스럽고 부당하고 비상식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으니 그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급할수록 무리수를 두기 마련이다. 이번 자본주의 연구회 사건의 경우는 그들의 만능무기인 '국가보안법' 조항으로도 걸고넘어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건이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서점에서 버젓이 판매하고 있는 책을 모여서 읽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고민하는 학생들의 모임에 그 무슨 고무 찬양이고 그 무슨 이적단체냐 말이다.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추진하는 것을 보면 급해도 무척 급한 모양이다. 민생파탄으로 인해 MB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벌써부터 이곳저곳에서 레임덕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과연 2012년 선거 이후 자신들의 운명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절박한 상황이 이러한 무리수를 두게 만든 것 아닐까?

 

하지만 알아야 한다. 만약 이번 '자본주의 연구회'를 국가보안법으로 걸 수 있다면 그 누구의 어떤 활동이라도 국가보안법으로 걸 수 있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 말이다. 모여서 베스트셀러 읽고 토론하고 학술캠프를 여는 것이 감옥에 가야 하는 일이라면 다른 무슨 일을 하든 잡아넣지 못할까? 이것이 우리가 자본주의 연구회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중의 소리>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송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본주의 연구회,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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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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