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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마트가 국민들에게 통 크게 치킨을 쏩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통큰치킨 소동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너도나도 롯데마트를 찾았다. 안타깝게도(?) 치킨프랜차이즈의 아우성과 SSM 규제 논란이 불거지면서 통큰치킨의 야심찬 7일천하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육류, 커피 등의 일상식품은 물론 넷북 같은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최저가격을 내세우는 대형마트의 '통큰 마케팅'은 계속되고 있다.

찰스 피시먼은 책 <월마트 이펙트>에서 대형 마트의 최저가격 전략이 궁극적으로 시장 경제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월마트는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대형마트다. 생활용품을 고객들에게 최저가로 공급하고, 업계 경쟁을 부추긴다. 그렇다면 월마트가 들어서면 정말 지역사회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까? 소비자들은 얼마나 절약할 수 있을까? 월마트의 상품은 정확히 누가 어디에서 만들까?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어렴풋하게 짐작만 해오던 질문들에 답한다.

우선 영세 상인을 죽인다는 점. 월마트는 자사의 일자리를 늘릴 뿐, 그 규모와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소매업체들의 일자리를 창출을 막는다. 월마트 진출 이후 몇 년 동안 지역의 경쟁 소매업은 일자리와 매출 감소를 보였으며, 일부는 문을 닫았다. 또한 소비자의 과소비를 부추긴다. 싸니까 괜찮다는 심리로 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과소비와 충동구매를 해, 불필요한 가계 지출을 늘린다. 폭탄 세일에 혹해 잔뜩 사다놓은 음식들을 먹지도 못하고 버린 기억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대형마트 중독에서 빠져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이어서 그동안 월마트라는 슈퍼자본이 미국의 시장 질서를 파괴해온 과정을 낱낱이 파헤친다. 가격은 단순히 싸고 비싼지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공급과 수요, 인지도, 제조 환경 등의 정보를 반영한다. 그러나 월마트가 책정한 가격은 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단지 월마트가 부여한 가격일 뿐. 대형마트를 대신할 거래처를 찾을 수 없는 공급자들은 최저가 압박에 속수무책이다. 심지어 거래관계가 아닌 기업들의 경쟁 환경과 성장까지 저절로 조절된다. 자본주의원칙이 아닌 월마트가 시장을 지배한 것이다.

오직 비용 낮추기에만 집중하다보니, 월마트와 거래하는 제조, 공급업체들은 모순되게도 거래를 많이 할수록 이윤이 감소해 난항을 겪었다. 최저가격 압력에 부응하기 위해서, 거래량을 파격적으로 늘리기 위해서 일부러 손실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월마트 역시 막대한 이익을 내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롯데마트의 통큰 마케팅 이후 매출은 전년 대비 6% 증가했다고 한다. 비슷한 기간 다른 경쟁업체들이 각각 9.6%와 6.2%의 매출을 올린 것을 보면 그 효과가 의외로 미비한 것을 알 수 있다.

월마트는 최저가격을 제시하기만 할 뿐 직접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공급, 가공업체가 알아서 월마트가 제시한 가격을 맞추기 위해 생산단가를 낮춰야 한다. 그러다보니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된다. 개발도상국 공장에서는 노동 시간, 임금, 위생 규정 등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노동력 착취와 환경오염이 발생한다.

"월마트는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형태다. 물건을 살 때마다 월마트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표를 던진다. 저가에 찬성표를 던지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이 무엇을 찬성하는지 모른다."

월마트는 온전히 소비자에게 선택 받아 성공했다. 이 때문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바로 현명한 '소비자들'이다. 기업 스스로는 그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투명한 정보공개를 해야 한다. 정부에서 규제하는 안정규정, 오염규정도 필요하다. 언론에서도 대형마트가 출시하는 통큰 시리즈에 홍보성 기사만 쓰기보다는 그 이면에 감춰진 시장생태계의 질서에 주목해야 한다.

책은 복잡한 통계보다는 비교적 쉬운 일화들을 소개해 이해를 돕는다. 한국에서 대형마트의 영향력이 미국 월마트와 꼭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효과를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통큰 마케팅에 현혹되어 싼값에 심리적인 보상을 느끼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머지않아 이 땅에도 책의 경고가 반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민주언론시민연합 소식지 날자꾸나 민언련 3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태그:#통큰, #월마트, #대형마트, #S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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