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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김좌진 장군의 옛집을 재현해 놓은 '산시 한중우의공원'을 둘러보고 목단강(牡丹江)으로 이동하던 중 잠시 산시역(山市驛)에 들렀다. 중국의 시골역 구경도 처음이지만, 건물 기둥이 고대 유럽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어 이채로웠다.

 

성냥갑 모형의 작은 역사(驛舍)는 오래되어 꾀죄죄했지만, 볼수록 이색적이었다. 하얼빈에서 동남쪽으로 300km 가까이 떨어진 '산시'도 하얼빈처럼 한때는 러시아 영향권에 속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불이 환하기에 들어갔더니 역무원 대여섯이 근무하고 있었다. 썰렁한 대합실은 한국의 시골 간이역을 떠오르게 했다. 벽에 걸린 열차요금표와 시간표가 대련(다롄), 심양(선양), 단동(단둥) 등 중국의 대도시와 연결되는 역임을 말해주었다.

 

박영희 시인은 "산시역은 백야 장군과 전술 전략을 의논하던 '한족총연합회' 소속 팔로(八老: 8명의 원로)들이 자주 이용하던 역이었습니다. 또한, 백야는 이 역을 통과하는 열차를 보면서 고향과 조국 광복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을 것이고요"라고 말했다.  

 

버스에서 보는 만주의 야경(夜景)

 

어둠이 깊어가는 산시역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몹시 추웠다. 버스는 오늘도 사람 덕을 보려고 했다. 산시에서 목단강까지는 약 55km 정도. 박 시인은 여행사와 기사에게도 빨리 가는 것보다 안전운행을 당부했다며 한 시간 남짓 걸릴 거라고 했다.

 

박 시인은 목적지 목단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흑룡강성(헤이룽장성) 동남부에 위치한 목단강은 말 그대로 도시 이름이며, '구불구불 흐른다'는 뜻을 지닌 강 이름이기도 하단다. 기후는 겨울엔 혹독한 추위가 오래 지속되고 여름엔 상대적으로 서늘하다고.

 

선조들의 눈물과 애환이 깃든 목단강에는 조선족 5만 명이 살고 있다. 해서 중국 어느 지역보다 우리 동포를 쉽게 만날 수 있고, 전통문화도 자주 접할 수 있다고. 한때는 발해국의 영토여서 온돌과 디딜방아 등 우리의 고유 문화유산들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동청철도'(중동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인가가 드문 외진 마을이었다고. 그러나 1932년 괴뢰 정권인 만주국을 세운 일본이 지배하면서 바둑판 모형의 도시계획이 이루어져 현대식 도시로 발전했단다. 도시 규모는 하얼빈의 절반 정도.

 

광활한 만주 벌판의 밤은 밤대로 멋이 있었다. 굽은 길을 돌아 나오는 자동차 불빛은 멋진 야경을 만들어 주었다. 환한 불빛이 반원을 그리며 지나가면 그 사이로 자작나무 숲도 보이고, 마을도 보였기 때문. 가끔 만나는 삼륜차는 정겨움을 더했다.

 

예서체 기본 필법 '잠두안미'(蠶頭雁尾:누에 머리와 기러기 꼬리)가 떠올랐다. 뽕잎 위를 기어가는 누에 모습과 흡사한 능선이 오래된 화선지에 담묵으로 그려낸 수묵화처럼 느껴졌다. 산등성이들이 첩첩이 이어져 마치 주름을 잡아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그러나 멋진 야경도 잠시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황소바람이 들어오면서 목이 움츠러들어서였다. 머플러를 입 주위에 두르고, 벗고 있던 방한모를 눌러썼다. 밤이 되니까 추위가 심술을 부리는 모양이라고 했더니 옆에 앉았던 일행이 웃었다.  

 

버스 기사는 고객이 추위로 고생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운전을 하면서도 휴대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언성을 높이면서 신경질 내는 것으로 보아 즐거운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잖아도 시끄러운 중국말, 큰소리를 치니까 더욱 짜증 나고 불안했다. '아저씨, 안전운전!'이 목에서 나왔지만, 참았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불고기'

 

추위와 싸우면서 야경을 감상하는 사이에 버스는 목단강 시내로 들어서더니 식당 앞에 내려주었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이름난 불고기 전문 식당이라고 했다. 넓은 홀과 통로는 물론 방에도 한국 풍속화를 걸어놓고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불고기도 불고기지만, 따뜻해서 좋았다. 방으로 안내되어 자리를 잡고 앉으니까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조금 있으니까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곱상한 아줌마가 들어왔다. 박 시인이 반가이 맞으며 "제 '여친'입니다!"라며 소개했다. 양로원 원장이라는 그는 조용하고 정숙하게 보였다.

 

조금 있으니 돼지 삼겹살, 오겹살, 양고기, 쇠고기 등이 야채와 함께 차려 나왔다. 학생들은 "야 맛있겠다!"라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양념 불고기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컬러풀한 고기와 싱싱한 야채가 잠도 달아나게 했다.

 

인사를 나누고 일행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양로원 원장은 집을 치워놓겠으니 저녁 자리가 끝나면 꼭 들르라고 당부하고 돌아갔다. 목단강 시내에 사는 모양이었다. 박 시인은 또 폐를 끼치게 되어서 죄송하다며 시간을 내서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불판에서 '지지~직'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달콤한 양념과 고기 냄새는 나를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박 시인이 맥주를 몇 병 가져와 한 잔씩 권했다. 고생이 많았다며 학생들에게도 권했다. 박 시인의 선창으로 백야 장군의 명복을 비는 '위하여!'를 외쳤다.

 

"백야를!"

"위하여!"

 

만주에 도착해서 몸조심하느라 맥주도 마시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폭탄주를 한 잔 마셨다. 두 잔을 마시니까 순간의 실수로 날아간 사진 40장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까지 말끔히 해소되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고 사흘 동안 쌓였던 피로도 풀리는 것 같았다. 

 

싱싱한 상추와 맛깔나게 버무려진 쌈장은 쇠고기 양념 불고기와 돼지고기 삼겹살 맛을 돋워주었다. 특히 로스로는 처음 맛보는 양고기는 별미였다. 고소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았고, 육질도 연하면서 쫄깃했다. 다른 고기와 달리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욕심 같아서는 느긋하게 앉아 불고기와 만주 이야기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날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고, 자리가 끝나면 양로원에도 가야 하기 때문에 무한정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불고기를 맛있게 먹고 호텔로 이동해서 711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준비해간 김을 한 톳 챙겨 방문을 나섰다. 박 시인을 비롯한 일행 몇 명과 양로원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10일부터 17일까지 항일유적과 함께 하는 만주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불고기, #목단강, #산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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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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