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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고물했던 아이가 책가방을 메고 초등학생이 되면 집안의 공기는 활기가 넘친다. 질서와 규칙을 배우고 책임감을 갖기 시작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신기하고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반항하며 고집을 피우는 아이를 상대하기 시작해야하고 이 땅에서 학부모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해야하기 때문이다.

"엄마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시험을 망칠 것 같아! 꽝!"

닫힌 문 앞에 아들의 목소리가 남는다. 오늘 아침도 좋은 얼굴로 등교시키지 못한 미안함이 앞서지만 녀석은 집에 남은 엄마의 기분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몰랐었다. 열한 살 된 아들과의 소통이 이렇듯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 거라는 사실을. 세상엔 엄마가 돼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나 보다. 지혜로운 엄마가 되기 위해 누군가 하얀 깃발을 들고 있어주기라도 한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의미

3월 2일 오전 10시, 구산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신입생 입학식 모습. 설렘과 긴장으로 내내 무표정했던 아이들은 홍미영 구청장의 실감나는 구연동화가 이어지자 이내 환한 웃음을 보였다.
 3월 2일 오전 10시, 구산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신입생 입학식 모습. 설렘과 긴장으로 내내 무표정했던 아이들은 홍미영 구청장의 실감나는 구연동화가 이어지자 이내 환한 웃음을 보였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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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된 여자가 엄마가 되고 또 학부모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의 시작을 의미한다. 인간관계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의 엄마들로 새롭게 형성되고 유지된다. 그리고 둘 이상의 엄마들이 모여서 하는 말은 한결같다.

말 안 듣는 아이를 어떤 방법으로 훈육해야 하는지부터다. 구구절절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우리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위로가 된다. 하지만 그 위로가 걱정으로 바뀌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바로 사교육의 이야기다.

어디 학원이 영어를 잘 가르치고 논술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떤 코스로 학원을 보내야 한다는 말들이 시작된다.  방학이 되면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보낼 거라는 얘기도 한번 쯤 나온다. 어느 중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할 거라는 말로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들을 계획하는 엄마도 있었다.

처음엔 그랬다. 나와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기분을 느꼈다. '아이들은 뛰어 놀아야 한다'고 말하던 나름의 목소리는 조금씩 더 작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사교육은 이러했지만 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됐다. 사교육의 기준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보고 듣는 것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여러 학원들을 전전하는 친구들을 접하는 아이는 그런 친구들의 모습이 기준이 되어 있었고 자신을 그러한 주위 환경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다 학원에 다니는데 난 왜 다니지 않느냐는 말을 한다면 부모는 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순간부터다. 달라진 교육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아들과의 바람직한 소통만을 바라던 내가 해야 할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의 사교육에도 가벼워지는 월급봉투

안양 평촌 학원가
 안양 평촌 학원가
ⓒ 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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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초등학생이 된 작은 딸의 반에는 외동아이가 많았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려는 엄마들의 열의는 남달랐다. 고액의 영어학원은 필수고 친구 몇몇과 짝을 지어 보내는 운동학원과 음악이나 미술학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나있는 아이에게 원 없이 투자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맞춰 살면 된다는 인생철학을 가진 내가, 끝을 알 수 없는 사교육비 걱정을 해야한다는 교육현실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2학년이 된 딸과 4학년이 된 아들이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1년 전 부터다.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버린 환경 속에서 내 의지대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학원생활은 지금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했다.

문제는 학원비다. 두 아이 모두 학원을 보내려면 가계에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다 새 학기가 되면서 줄줄이 학원비가 올랐다. 치솟는 물가에 학원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널을 뛰듯 오르는 물가 속에서 유일하게 오르지 않는 것은 매달 들어오는 고정 수입의 금액뿐이다. 큰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려 했다.

헌데 어느 날 전화를 해온 학원장은 말했다. 남매를 보내고 있고 현찰로 학원비를 냈으니 할인을 해 주겠다는 것이다. 부득이 학원비를 많이 올리는 이유는 학원비를 카드로 결제하는 엄마들이 많아서 카드결제 수수료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순간 망설였지만 아이가 악기 하나쯤은 완벽히 다룰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누군간 말했다. 피아노 학원을 보내느니 영어 학원을 보내지 그러냐고. 안다. 하지만 한 달에 몇 십만 원씩 하는 영어 학원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고액을 들여 사교육을 해야만 잘 살 수 있다고?

이제 사교육을 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영어 조기교육 열풍으로 내몬 것은 정부의 탓일망정 그것을 힘 모아 따르려는 부모들의 열정 또한 뒤쫓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게 어찌 교육열 높은 엄마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땅에 뿌리박힌 교육제도가 문제일 뿐.

잘사는 집 아이가 명문대를 가는 이유는 '부모의 교육열망과 양육관행의 차이'라는 점을 강조한 기사를 보았다.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에게 학력자본의 가치는 더 높이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대우나 명성이 뒤따르는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살았던 사람일수록 학력 자본에 대한 교육열망은 더 크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기사를 접한 후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보자면 고액의 돈을 들여 사교육을 하지 못하는 가정의 아이들은 결국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힘들다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환경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가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정책이 아닐까.

또한 그렇게 모든 아이가  자라서 기득권층으로 살아남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면 그에 맞는 교육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반에 36명의 아이들이 똑같은 목표만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각기 다른 서른여섯 가지의 꿈을 키워줄 수 있는 그런 교육정책을 말이다.


태그:#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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