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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일)은 날씨가 따뜻하여 각종 초목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잠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입니다. 24절기에서 3번째 드는 경칩은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로 봄의 중반을 넘어선다는 의미가 담긴 절기이기도 하지요.

 

이 무렵이면 시장에 달래, 냉이, 씀바귀 등 온갖 봄나물들이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달래는 파와 사촌이어서 무치면 상큼한 맛이 그만이고, 냉이는 된장국을 끓이면 입맛을 돋워주며, 씀바귀로 나물을 무쳐먹으면 춘곤증을 이기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씀바귀는 '쓴나물', '쓴냉이'로도 불리는데요. 농가월령가 2월령에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소루장이 물쑥이라"라고 하였듯, 씀바귀는 이른 봄에 나오는 봄나물로 주로 뿌리나 어린잎을 먹었습니다.

 

개구리들이 논바닥 고인 물에 알을 낳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알을 '경칩'이라고 했으며 아저씨들이 함석으로 만든 물동이에 담아 자전거에 싣고 "경칩이요, 경칩!"을 외치며 골목을 누비고 다녔는데요. 몸에 좋다고 소문나서 사 먹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또한, 경칩을 전후해서 흙일을 하면 1년 내내 탈이 없다고 하여 일부러 벽에 황토를 바르기도 했는데요. 황토 냄새만 맡아도 병이 달아났을 것입니다. 옛날 황토는 질그릇을 만드는 찰흙처럼 차졌고, 색깔도 밝았으며 냄새도 구수했거든요.

 

음력 이월 초하루는 '콩 볶아 먹는 날'이자 '머슴들의 날'

 

올해 경칩은 음력으로 2월 초이틀입니다. 설날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 경칩이라니, 세월의 빠름에 또다시 놀라는데요. 옛날 같았으면 어제(음력 2월 초하루)는 '콩 볶아먹는 날'이었습니다. '머슴들의 날'이라고도 했지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세시풍속으로 여겨지는데요. 어렸을 때 이날이면 어머니는 꼭 검정콩(서리태)을 볶아주었습니다. 남 주지 말고 혼자 다 먹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지요. 호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니면서 한두 알씩 꺼내먹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해충과 잡초의 번식을 막고 재액이나 질병을 예방하고 농작물 풍작을 기원하기 위해 콩을 볶아먹었다고 하는데요. 어머니는 아이들이 추운 겨울을 나는 동안 허약해진 몸을 보하기 위해 먹인다고 했습니다. 

 

검정콩을 헌 냄비나 가마솥에 볶았습니다. 솥에 열이 가해지면 따발총 쏘는 것처럼 '따닥, 따다닥'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만 들어도 군침이 돌았지요. '따다닥' 소리가 반가워서 가까이 가려고 하면 주걱을 휘젓던 어머니는 아궁이 근처에 접근을 못 하게 했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이날은 호주머니에 볶은 콩을 갖고 다니며 먹었는데요. 당시 어머니들은 밥해 먹을 쌀은 없어도 콩은 볶아주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어머니들이 그만큼 아이들 건강을 챙겼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옛날 할머니들은 주걱을 휘저으면서 "새알 볶아라, 쥐알 볶아라, 콩알 볶아라···"라고 노래하듯 흥얼거렸습니다. 가락이 봄바람처럼 보드랍고 살랑살랑했는데요. 그냥 젓기만 하면 지루하고 팔이 아프니까 노래를 불렀던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왜놈들 볶는다"라고 흥얼거리면서 울분을 삭이고 일인들이 이 땅에서 물러가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농사지은 맛좋은 쌀은 모두 빼앗기고 콩깻묵도 배급받기 어려운 삶을 살았으니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여유가 있는 집은 뻥튀기 집에서 옥수수처럼 기계에 넣고 튀겨 먹기도 했지요. 집에서 볶는 콩과 달리 껍질이 모두 벗겨져 먹기가 좋았고 단맛도 더했습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으로 후후 불다가 입에 톡 털어 넣으면 꿀맛이었지요.

 

노점상들이 튀긴 검정콩을 쌓아놓고 홉이나 종이 봉지에 담아 팔기도 했습니다. '당원'으로 불리는 '뉴 수거'(new sugar)를 넣고 튀긴 거라서 단맛이 진했는데요. 군것질거리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단단한 생콩을 지니고 다니면서 한 알씩 넣고 오물오물 깨물어 먹는 아저씨도 있었는데요. 역시 허약한 목을 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옛 어른들은 '겨울에 콩 한 말 먹으면 소 한 마리 잡아먹은 거와 같다'는 말을 자주 하셨거든요.

 

# '머슴들의 날'

 

음력 2월에는 경칩과 춘분, 두 절기가 들어 있습니다. 봄기운이 시작되어 논밭을 처음 가는 등 농사 준비를 하는 시기인데요. 2월엔 농사를 짓느라 고생하는 머슴들을 위로하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2월 초하루를 '머슴의 날'이라고 했지요.

 

주인은 머슴들에게 새 옷과 음식을 내주어 하루를 즐겁게 지내게 했습니다. 머슴들은 정월 대보름날처럼 풍물을 치며 마을로 곡식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콩으로 소를 넣어 송편을 만들어 머슴들에게 나이만큼 먹이기도 했고, 힘겨루기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농사철을 앞두고 머슴들을 위로하면서 기력을 보강해주려는 옛 어른들의 지혜와 마음 씀씀이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경칩, #콩 볶아먹는 날, #머슴들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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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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