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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라면 이가 갈려요. 지난 지방선거 때 송하진 전주시장 선거운동도 했는데 지금 와서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서민을 위한 정당이요? 전혀 와 닿지 않아요."

김윤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준) 전주제일여객 지회 조합원의 말이다. 그는 민주당을 향한 울분에 가득 차 있었다.

송하진 시장의 선거운동원으로 발 벗고 뛰었을 만큼 '열혈 민주당원'이었던 김씨의 마음이 180도 돌아선 것은 민주당의 텃밭 '전주'에서 발생한 버스 파업의 참가자가 되고나서부터다. 사태 해결을 위해 민주당 소속 송 시장도, 김완주 전북도지사도, 전주 지역 국회의원인 정동영·장세환·신건 의원도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는 데 대한 분노였다. 믿었던 도끼에 찍힌 상처는 컸다.

이러한 민주당의 태도에 "2012년 민주당이 집권한다 해도 전주의 확대판일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데 석달 동안 한푼 못 벌어"

 전주버스파업이 80일차를 맞는 25일 오후 3시 전주공설운동장 앞에서 4천여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모여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전주버스파업이 80일차를 맞는 25일 오후 3시 전주공설운동장 앞에서 4천여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모여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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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은 벌써 석달이나 됐다. 노조를 인정해 달라는 '단순한' 요구가 시작이었다. 그동안 파업 참가 노동자들은 벌이 없는 나날에 피가 말라야 했다. 김윤칠씨는 "그 달 벌어 그 달을 사는데 세 달째 한 푼도 벌지 못했다"며 힘겨워했다.

그러나 사측은 달랐다. 지난 2일 전북도가 버스회사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측의 믿는 구석은 '복수노조'다. 오는 7월 1일에야 단위사업장의 복수노조 결성이 인정되므로 그 때까지는 복수노조인, 민주노총 산하 버스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버티는 것. 산별노조나 지역노조의 경우 복수노조가 인정되는 대법 판례들이 존재함에도 사측은 막무가내다.

'복수노조'가 언급되는 것은 지난해 한국노총 버스지회 노조원들이 대거 탈퇴해 민주노총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상당수가 한국노총에 소속돼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한국노총이 전주시·전북도 19개 버스운송사업조합 소속 사업자와의 협상에서 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통상임금을 1/10만 받기로 합의해 버렸다. 800여 명의 노동자들은 "이대로는 빈곤의 굴레에서 못 벗어나겠다"는 생각에 한국노총에서 탈퇴해 민주노총에 본부를 꾸렸다. 그러나 회사는 "한국노총과 이미 교섭을 했다"며 민주노총 지부를 단체교섭의 대상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측의 버티기에 고용노동부는 조합원들의 파업이 위법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노사간 실질적인 교섭이 이뤄지지 않아 노동쟁의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해 9월, 전주지방법원이 민주노총 소속 버스노조를 합법노조로 인정했으므로 사측은 교섭에 응해야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사측이 이들을 노조로 인정하지 않으며 교섭에 나서지 않은 상황에 대한 고려는 없었던 셈이다.

믿을 구석은 민주당뿐이었던 조합원들, 그러나...

 전주 버스 노조 조합원들은 민주당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주 버스 노조 조합원들은 민주당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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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믿을 구석은 '민주당' 뿐이었다. 좌클릭에 한창인 '전라도의 맹주' 민주당이 지역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파업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민주당 소속인 송하진 전주시장이 행사할 수 있는 '면허 취소권·과징금 부과'를 내세워 사측을 압박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좀처럼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조합원들은 급기야 민주당 중앙당사를 점거했다. 당이 움직여 송 시장을 압박해주길 바란 것이다.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환경노동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겼다는 정동영 최고위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전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른 체 하진 않으리라 믿었다. 허나 민주당의 대응 역시 조합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민주당사에서 58일째 농성 중인 임광진 민주노총 제일여객 지회 조합원은 "전라북도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고, 시도지사도 민주당 출신이니 이곳을 통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며 "그러나 의원들도 파업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가 느끼기엔 별다른 진척이 전혀 없어 갑갑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정동영 의원실은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돼 있다"며 "민주당이 도청과 시청을 움직여 버스회사에 지급되는 보조금을 삭감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항변했다. 이어 "남은 카드는 회사의 사업권을 박탈하는 것인데 거기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다"며 "(다른 방안으로) 노사분쟁 사태에 대해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의 청문회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내세우고 있는 '보조금 중단'은 '버스 운행률 80% 미만시'라는 조건이 달려있다. 운행률 80%만 넘기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윤칠씨는 "전주시에서도 사측의 대체인력 투입을 사실상 눈감아 주고 있다"며 "이를 통해 버스 운행률만 높게 나와, 시민들의 불만이 줄어들면 된다는 식"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민주당이 해결의 키는 갖고 있는데도 생색내기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주시청 측에서는 "사측이 대체 인력을 투입해 운행률을 높이면 노동법 위반이고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나올 것"이라며 "대체인력 투입에 대해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이를 두고 시가 실질적인 대처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전주시가 지역구인 장세환 의원은 "국회의원은 다른 권한이 있는 게 아니라, 노사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정치권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수가 있어서 그동안 자제했지만 너무 일이 해결되지 않아 공개적 기자회견을 했는데도 해결의 기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행정(전주시가)이 '노사교섭을 통해 파업사태를 신속히 해결해 달라'는 당론을 안 따라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홍영표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 역시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며 "당에서 시장과 도지사를 압박하는 당론까지 채택했는데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호남집권당 민주당과 기업의 유착이 미진한 대응의 원인"

'의원들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는 입장에 대해 임광진씨는 "송 시장도 결국 민주당 소속인데 당에서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당론을 따르지 않으면 당원의 자격이 없다고 압박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윤칠씨는 "민주당이 전주에서 수십 년간 집권하면서 발생한 정경유착의 고리가 미진한 대응의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파업 사태에서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김택수 호남고속 회장은 전주의 실세로 전주상공회의소 회장과 전북도민일보 회장직 등을 맡고 있으며, 그가 정치권과도 끈끈한 연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 달 있었던 전라북도의회 긴급현안질문에서 김완주 전북도지사는 선거기간 중 호남고속 등으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실토한 바 있다. 당시 오은미 민주노동당 소속 전북도의원은 "공무원 윤리규정에 보면 업무와 관련해서 거래처나 민원인들로부터 밥도 얻어먹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 후원금을 받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조합원들은 노사협상 때 드러난 송 시장과 김 회장 사이의 '각별한 친밀감'에 허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 조합원은 "지난 1월 12일에 송 시장이 마련한 노사교섭 자리에서 김택수 회장이 송 시장에게 '어이~송 시장 왔는가'라고 했다"며 "노사 교섭위원들이 함께한 공적인 자리에서 그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결국 민주당과 전북 지역 토호와의 특수 관계가 전주버스 파업이 이토록 장기화 된 이유라는 설명이다.

전주시청 측은 "송 시장과 김택수 회장이 아는 사이긴 하지만, 유착관계 등은 어불성설"이라며 "노사 협상 자리를 녹화한 테이프가 있는데, '어이~송 시장'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온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지자체와 지역 세력 간의 유착'에 대해 장세환 의원도 "알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홍영표 의원은 "지자체와 지역토호세력간의 유착관계가 문제해결을 더디게 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런 면이 있다"며 "지자체장들이 의지를 갖고 해결하면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북도청 앞에서 '버스 파업 문제를 해결하라'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오은미 도의원도 "지역 토호세력과 민주당의 유착은 고질적인 문제로 부패의 온상이 돼 왔다"며 "버스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행정 지도 감독을 잘해야 할 시도가 사측 눈치를 보며 오히려 사측을 대변하고 옹호하다보니 사측이 큰 소리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의원은 "여객자동차사업법에 따르면 자치단체장이 버스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아 교통편의를 해치는 경우 면허취소를 할 수 있다"면서 "전주시도 인천 버스 파업 때 인천시가 했던 것처럼 사측에 과징금 부과·면허 취소까지도 할 각오를 가지고 있어야 현 사태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원 탈퇴서 제출한 조합원들

 민주당사 앞에 걸린 플래카드.
 민주당사 앞에 걸린 플래카드.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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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광진씨는 "복지를 한다고 무상급식이네 서민을 위한 정당입네 해도 우리가 보기에는 한나라당과 다를 바가 없다"며 "민주당에 너무 실망을 해서 당원 탈퇴서를 냈다"고 말했다. 임씨 뿐 아니라 민주당 당원이었던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당원 탈퇴서를 제출한 상태다.

그는 "선거가 있을 때마다 민주당은 꼭 찍었는데 다음 선거 때는 우리 삶을 위해서라도 정확히 (반대) 의사를 표할 것"이라며 "내 자식도 결국 노동자가 될 텐데 확실히 우리에게 득이 되는지를 따져봐야겠다"고 강조했다.


#전주 버스 파업#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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