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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와 엄기영은 비슷하다."

 

이 말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긴 차이가 있다면 있을 수 있다. MB는 표리(表裏)가 동(同) 하고 엄기영씨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비슷하다는 것일까.

 

우선 MB와 엄기영은 평소 정체불명으로 보인다는 것이 닮았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정체'가 곧 드러나고 만다는 점에서 똑같다. 그렇다면 이들 공통의 정체는 무엇일까.

 

집권 초 MB가 얼마나 국민들을 헷갈리게 했는지 생각해보라. 그 중요한 대외관계에 대해서 어제는 "대미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가 오늘은 "외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익"이라며 대중국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MB의 외교정체성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이 있었다. 어디 외교관계뿐이었겠는가.

 

"MB와 엄기영은 비슷하다"

 

오늘 한나라당에 '드디어' 입당한 엄기영씨에 관해 다음 장면이 떠오른다.  2007년, MBC 사장선임관련 논의를 위해 관련자 몇 명이 모인 자리. 일부에서 최문순 사장 연임을 주장하고 있을 때였다. 방문진 이사회는 최문순 사장 연임을 주장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참석자 한 명이 물었다.

 

"엄기영씨에 대한 노조의 태도는 어때요?"

 

사장선임에 있어 노조의 영향력이 강한 MBC 분위기를 염두에 둔 물음이었다.

 

누군가 말을 받았다.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고."

 

또 다른 참석자가 말했다.

 

"엄기영씨가 강원도 출신이지요? 한나라당 쪽 사람들과도 친한 모양입디다"

 

누군가 발끈하며 말했다.

 

"원래 지방은 정치색보다는 학맥과 인맥으로 엮여요. (당시) 여당 쪽 사람들과도 친해요. "

 

엄기영씨가 대체로 무색무취하다는 이야기, 절대로 정치를 안하기로 자신과 약속했다는 한 참석자의 증언까지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딱히 엄기영씨를 차기 사장으로 추천하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또 엄기영씨가 MBC 사장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엄기영씨에 대한 입장은 모두 '흐리멍텅'했다. 자리를 마무리 하면서 참석자 중 한 명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사람 정체가 뭐요?"

 

정연주와 엄기영, 방송장악에 대한 다른 대응

 

어쨌든 엄기영씨가 최문순 사장 후임으로 MBC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뒤 일련의 방송장악 행태가 벌어졌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은 "무조건 노무현 정부와 반대로 간다"는 모토를 정한 듯했고, 방송계 퇴출 1순위로 정연주 사장을 지목했다. 검찰,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과 방통위원회가 총동원되어 정연주 사장 퇴출에 열을 올렸다. 정연주 사장은 이에 대해 자신의 명예와 인생을 걸고 맞섰다.

 

정연주 사장을 불법 퇴출시킨 이 정권은 수순대로 MBC 손보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엄기영 사장의 대응은 정연주 사장과는 사뭇 달랐다. 어떤 때에는 방송장악에 저항할 듯 연기를 풍기다가 이 정권의 MBC 장악에 순종하는 듯한 모호한 행보를 되풀이 했다.

 

촛불집회가 있었고 PD수첩에 대한 이정권의 집요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정권의 MBC 탄압에 '뉴 MBC플랜'을 발표하며 "외부압력에 흔들림없이 MBC를 이끌어 가겠다"고 밝혔던 엄기영 사장은 어느 순간부터 방문진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갔다.

 

그는 2008년 8월 PD수첩으로 하여금 사과방송을 내보내도록 종용했고, 2009년 4월 13일에는 신경민 앵커를 진행하던 방송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20일 손석희 교수가 100분토론 진행을 못하게 되었다.

 

2009년 12월 7일 엄기영 사장은 MBC 임원들과 함께 사표를 제출했다. 그해 12월 10일 방문진은 이사회를 열고 엄기영 MBC 사장 및 한귀현 감사, 김종국 기획조정실장, 문장환 기술본부장의 사표를 반려했고, 김세영 부사장 겸 편성본부장, 이재갑 TV제작본부장, 송재종 보도본부장, 박성희 경영본부장의 사표만 수리했다. 이에 대해 MBC 이근행 노조위원장은

"엄기영 사장의 사표가 반려되었다는 것은 정권의 재신임의 방증"이라고 전제하고 "정권의 낙인이 찍힌 엄기영 사장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정권의 탄압에 맞서 2010년 2월 MBC 노조는 농성에 돌입했다. 엄기영 사장은 이들이 농성을 하던 중 돌연 사퇴했다. 조용히 MBC를 물러난 엄기영 사장은 2010년 7월 25일 슬그머니 한나라당 한기호 후보 사무실을 방문하더니 2010년 7월 25일에는 한나라당 염동열 후보 지원활동에 나섰다. 그 후 "엄기영씨가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에 나간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엄기영씨는 '정체불명 엄기영'의 행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는 한편으로 평창올림픽 유치에 관여하고 한나라당 관련자들을 방문하며 '친한나라당 정치행보'를 보이면서 입으로는 "이러면 진짜 중대결심을 할 수 있다"는 등등의 모호한 표현들을 쓰며 사람들을 또다시 헷갈리게 했다.

 

지난 2월 17일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엄기영 전 사장은 지난해 3월 MBC 고문에 추대되었고, 이후 1년 가까이 MBC 고문 자격으로 1억 3800만원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MBC는 엄기영 전 사장에게 에쿠우스 차량과 별도 기사까지 제공했다고 한다. MBC가 이와는 별도로 "엄 전 사장이 지난해 2월8일 사장직을 중도 사퇴하면서 남은 임기에 1년에 대해서도 보수 보전 규정에 따라 '본봉의 절반' 가량을 지급했다"고 <미디어오늘>은 보도하고 있다. 이소식을 알게 된 MBC 직원들은 "엄기영 전사장이 MBC를 정권에 바친 대가가 에쿠스와 억대연봉이냐"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는 한나라당 강원지사 재보궐 선거 후보로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지난 2월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이 그를 공천하기로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하더니 그는 결국 3월 2일 한나라당에 입당해, 강원도지사로 출마하겠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라크채권법을 둘러싼 순복음교회와 MB의 갈등이 장안의 화제이다. MB가 혹 실수할까 우려한 것일까 조선일보가 재빨리 순복음교회를 비난하고 나섰다. 과연 MB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까. 지하철 안에서 40대 남성 두 명이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몇차례 토론이 오가다가 한시민이 이렇게 말했고 모두 폭소를 터뜨리며 웃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MB는 장사꾼이라 정체가 없어. 그러니까 장사하듯 처리할 거야."

 

맞다. "대통령 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는 MB는 정치인이 아니라 장사꾼이다. 초기에 정체불명으로 보였던 것은 그를 정치인적 관점에서 헤아리려 했기 때문이었다. 정치인에게는 개똥철학일지라도 '철학'이 있게 마련이다. 장사꾼에게는 '철학'이 필요 없다. 정체불명 엄기영씨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쯤되고 보면 눈치빠른 독자들은 이미 아셨을 거다. 두사람은 정치친화적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그리고 정치를 하되 '철학'이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우리는 대의 없이 자리를 탐하는 자들을 칭할 때 '꾼'이라는 접미사를 붙인다. 엄기영씨는 MBC를 '으뭉스럽게' 정권에 갖다 바치고 에쿠우스와 억대의 연봉을 챙긴 사람이다. 정치를 할듯 안할듯 연막을 치다가 결국은 한나라당에 입당해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에 출마한단다. 우리는 주저 없이 그를 '정치꾼'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이번 강원도지사 재보궐선거는 단순한 재보궐선거가 아니다. 방송독립과 공공성을 지키려는 자와 MBC를 정권에 갖다 바친 자,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정치를 하려 애쓰는 자와 정치꾼의 한판 승부이다. 강원도민의 선택이 기대된다.


태그:#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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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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