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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부키가 시작된 곳에 세워진 오쿠니 동상.
 가부키가 시작된 곳에 세워진 오쿠니 동상.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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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오후 비가 그친 뒤, 교토 시조와 산조를 다녀왔습니다. 시조 가모가와 강가에는  오쿠니(阿国)의 동상이 있고, 산조 강변에는 다카야마 히코쿠로(高山彦九郞) 동상이 있습니다. 이곳에 왜 동상이 세워졌을까요?

교토시를 남북으로 흐르는 가모가와(鴨川) 강을 가로질러 동서로 시조도리(四條通)가 있습니다. 이 시조도리의 동쪽에 시조 가모가와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 동쪽에는 교토시조미나미자(京都四條南座)라고 하는 가부키 상연장이 있습니다. 왜 이곳에 가부키 상연장이 있을까요? 한국에 판소리나 탈춤이 있는 것처럼 일본 전통예능 가운데 가부키(歌舞伎)나 노(能), 교겐(狂言)들이 있습니다. 일본 가부키 상연장은 도쿄나 오사카에도 있지만 이곳 교토의 가부키 상연장은 일본 가부키가 처음 시작된 곳입니다.

  가모가와 강가 오쿠니 동상 앞에서 바라다 본 교토시조미나미자(京都四條南座)
 가모가와 강가 오쿠니 동상 앞에서 바라다 본 교토시조미나미자(京都四條南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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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토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가모가와(鴨川) 강은 강둑이 잘 정비되어 있고 여러 곳에 다리가 있어서 다니기 좋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날씨가 더운 여름철에는 강가에 앉아서 강바람을 쐴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 이 강은 그렇게 잘 정비 되지도 않았고 강둑도 없었습니다. 당시 이 강변에 사람들이 모여들면  장이 서기도 하고 장마당에 사람이 모이면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답니다.

1603년 무렵 당시 벌어지던 춤 가운데 이즈모(出雲)에서 온 오쿠니(阿国) 사람이 분장을 하고 추는 춤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무녀였다는 설도 있는데 자신이 혼자서 춤을 추기도하고 여러 명이 같이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그 여자의 춤은 그 때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하기도 했고 사회에 파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에도 시대(1603.3 - 1868.5)에 들어서 부터는 여자들이 추는 가부키를 금지시켰습니다.

  강가 있는 오쿠니(阿?) 쪽에서 바라다 본 시조 다리와 가모가와 강가 건물들.
 강가 있는 오쿠니(阿?) 쪽에서 바라다 본 시조 다리와 가모가와 강가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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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니(阿国)는 나이가 들어서 고향인 이즈모(出雲, 한국 동해에 면한 일본 시마네켄의 땅이름)로 돌아가서 여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사람들은 오쿠니가 처음 춤을 추던 강변을 가부키가 처음 시작한 곳이라 하여 오쿠니(阿国) 동상을 만들어 놓고, 길 건너편 기온(祇園)에는 가부키 상연장을 짓고 교토시조미나미자(京都四條南座)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가모가와(鴨川) 강을 따라서 한 구역을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산조(三條) 게이한(京阪) 역이 나옵니다. 이 산조게이한 역 옆에 있는 산조 대교는 에도시대 일본 교통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었습니다. 산조 대교 동쪽에 서북쪽을 향해서 머리를 들고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사람 동상이 있습니다. 그는 왜 서북쪽에 무엇이 있어서 그곳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않아있을까요?

  게이한 산조 서북쪽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다카야마 히코쿠로 동상
 게이한 산조 서북쪽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다카야마 히코쿠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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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사람은 다카야마 히코쿠로(高山彦九郞, 1747.6 - 1793.8)입니다. 이 사람은 에도시대 후기 존황(尊皇) 사상가입니다. 존황이라는 말은 존왕(尊王)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존왕은 왕을 존중하는 사상으로 중국 유교에서 패도가 아니고, 왕도를 가지고 백성을 지배하는 왕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말입니다. 일본에서도 처음 존왕이라는 말이 있었으나 에도시대 후기 왕 자를 황 자로 바꿔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조 대교 한 가운데서 바라본 가모가와 강. 비가 내린 뒤라 강물이 많습니다.
 산조 대교 한 가운데서 바라본 가모가와 강. 비가 내린 뒤라 강물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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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야마 히코쿠로가 무릎을 꿇고 쳐다보고 있는 서북쪽에는 천황이 살았던 고쇼(御所)가 있습니다. 즉 천황이 살던 고쇼를 향해서 무릎 꿇고 앉아서 천황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황은 1869 년 에도 지금의 도쿄(東京)로 옮겨갑니다. 여기에 다카야마 동상이 처음 세워진 것은 1928 년이고, 전쟁 말기 쇠가 귀해지자 1944 년 이 동상을 없애버립니다. 그리고 1961 년 다시 동상을 세웁니다. 다카야마는 천황이 도쿄로 떠나 빈 고쇼를 쳐다보면서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교토 사람들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참고자료
http://ja.wikipedia.org/wiki/
http://d.hatena.ne.jp/keyword/
http://www.nhk.or.jp/drama/archives/okuni/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태그:#가부키(歌舞伎), #교토시조미나미자(京都四條南座), #오쿠니(阿?), #가모가와(鴨川) 강 , #다카야마 히코쿠로(高山彦九郞, 17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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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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