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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국회 도서관 4층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구제역·AI 피해 축산농 정상화를 위한 긴급 토론회'. 회의실이 협소해서 축산농민들이 바닥에 앉아 토론회를 경청하고 있다.
 28일 국회 도서관 4층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구제역·AI 피해 축산농 정상화를 위한 긴급 토론회'. 회의실이 협소해서 축산농민들이 바닥에 앉아 토론회를 경청하고 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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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국회 도서관 4층 입법조사처 대회의실. '구제역·AI 피해 축산농 정상화를 위한 긴급 토론회' 시작 시각인 오후 1시 30분이 지났지만 대회의실 입구는 자료집을 받으려는 구제역 피해 농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최근에 '이동제한'이 풀린 남양주·연천·포천·파주 등 경기도 지역에서 온 축산농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용가능 인원을 훌쩍 넘는 200여 명의 농민들로 인해 절반 정도는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거나 대회의실 뒤편에 선 채로 토론회를 지켜봐야 했다. 정범구 민주당 의원과 함께 이날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렇게 농민들이 많이 오실 줄 몰랐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바닥에 앉은 농민들은 이후 30분 동안이나 각 당에서 참석한 정치인들의 '인사말'을 들어야만 했다. '인사말'을 했던 대부분의 의원들은 2시가 되자 '대정부 질문'을 위해 자리를 떴다. 

발제자 5명, 토론자 5명이 '제한시간 10분'을 훨씬 넘겨 발언을 하면서 농민들의 피로는 더해갔다. 일부 농민들은 자료집에 꼼꼼하게 메모를 하면서 토론회를 경청했지만, 깜빡 잠이 든 농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바닥에서 일어나 졸음을 쫓는 농민들도 있었다.

"백신 했다고 안심하고 나오면 축산업의 근간이 무너진다" 

이창범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관.
 이창범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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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잠시 후, 농민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발언이 나왔다. 발언의 주인공은 이창범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관.


"이동제한이 해제됐기 때문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사멸됐느냐? 그렇지 않다. 내 농장 안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이 힘들고 우리가 여기 이렇게 모여 있으면 구제역을 확산시킬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거(토론회) 마치고 농장 들어가실 때, 유의를 해 달라."


순간 대회의실이 술렁이기 시작했지만, 이창범 정책관은 개의치 않았다.

"구제역 종식선언을 해야 축산업이 재개하는데 이게 굉장히 어렵다. 백신을 (투약) 하면서 방역을 소홀히 하고 있다. '백신 (투약) 했으니까 내 농장 괜찮겠지' 그러면서 (밖으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백신이라는 게 뭔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만든 게 아니다. 지금 백신은 긴급백신이기 때문에, 가장 잘 듣는 백신을 선택해서 사용했을 뿐, 그 백신이 우리나라 구제역에 맞다고 볼 수 없다. 백신을 (투약) 했다고 안심하고 (밖으로) 다니고 방역을 소홀히 하면 (우리나라) 축산업의 근간이 무너진다."

앞서 이홍재 대한양계협회 부회장은 2008년 AI 발생 당시 경험을 이야기하며 "구제역이 발생하자 정부와 언론이 농민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역시 이날 "정부가 구제역이 농민 탓이라고 한다면 과학적인 입증을 해야 한다"며 "과학적 입증도 없이 이런 식으로 여론몰이를 한다면 앞으로 곤란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관계자인 이 정책관이 구제역의 책임을 농민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하자, 농민들 사이에서는 '와'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여러분은 보상이라도 받지... 사회적 책임 져야"

이 정책관은 이어 "책임문제를 자꾸 이야기하시는데 정부가 '농가책임이다, 농가가 죽일 놈이다' 그렇게 이야기한 적 없다. 누구나 책임이 있다. 농가도 책임이 있고, 정부도 책임이 있고. 농가 탓이다, 정부 탓이다 이럴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농민은 "우리가 (탓)했어? 지들이 했지"라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애"라며 흥분했다. 그러자 이 정책관은 앞서 이창한 정책위원장의 말을 의식한 듯 "다만, 정부가 과학적으로 역학조사를 해보니까 안동의 한 농장에서 구제역이 최초로 발생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 농장주가 베트남을 갔다 왔다. 공항에서 소독을 안 하고 들어왔다. 5일간 자기 농장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또 들어갔다. 이후에 그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그거 외에 어떤 증거가 있겠나. '100% 그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방역도 해야 하고 유입원인도 알아야 한다. 역학 조사를 해서 알려줘야 농가들도 알고 움직일 거 아닌가."

이 정책관의 발언은 지난 14일 이춘석 민주당 의원이 FAO 구제역 공식표준실험실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는 베트남이 아닌 홍콩과 러시아의 바이러스와 99%가량 일치한다"는 주장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구제역 유입원인으로 안동의 한 농가를 지목한 것과 관련, 박상희 정책실장을 비롯한 토론자들이 "안동에서는 지금 그 농민이 자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며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정책관의 '막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여러분들은 그래도 피해에 대해서 보상이라도 받는다. 주변에 있는 영세상인들, 관광업 하시는 분들, 그 분들은 어떻게 할 건가. 우리 축산 농가들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 축산농가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나. 사회적 비용으로 10조가 넘는다. 작년 강화에서 구제역이 발생해서 강화 관광객 수입이 90%가 줄었다. 영세상인들 거의 다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 거기에 대해서 정부가 보상 한 푼도 안 했다. 우리(축산농가들)는 보상이라도 받는다. 거기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에 대회의실 뒤편에 서서 토론회를 지켜보던 한 여성 농민은 "정부가 조기 차단을 제대로 했으면 우리가 왜 살처분 당해서 여기까지 오나"라며 "그렇게 말하시는 거 아니"라고 절규했다. 다른 농민들 역시 "보상받았으니까 조용히 하라는 거 아냐", "저×× 저거, 말 이상하게 하네"라며 분노했다.

정범구 의원 "정부가 농민들 희생양 삼아 구제역 물타기"

이어진 토론에서 경기도 양주시에서 왔다는 한 낙농인은 "금번 구제역 사태는 정부의 초기방역체계가 잘못돼서 발생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 축산 농민들만 죄가 있나. 동남아 지역 방문한 사람이 우리 축산인밖에 없나. 어찌 우리 축산인들만 공항의 방역 소독실로 가야 하나. 그 비행기에 탔던 사람들이 어찌 우리 축산 농민들만 있겠나. 이창범 정책관님, 저희 버스 타고 올 때 버스에 방역소독기가 다 있더라. 가서도 열심히 (방역소독) 하겠다."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토론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정범구 의원 역시 이창범 정책관의 언행에 불쾌함을 표시했다.

정 의원은 "여당과 정부의 고위직에서 이러한 발언이 끝없이 나와서 농민들이 상처받고 불만이 많다. 정부가 농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이 미증유의 재난을 물타기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며 "구제역은 인재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관재다. 정부 당국에서는 좀 더 겸허하게 상처받은 민심을 어루만지기 위해 언행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그:#구제역 , #이창범 축산정책관, #축산정책관, #축산농민 , #정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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