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직장폐쇄, 172명 해고, 고공농성 시위.'

 

이 세 가지 모두 현재 한진중공업 이야기이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경영책임을 노동자들의 구조조정과 공장을 필리핀으로 옮기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에 반대해 파업 투쟁 중이다. 그리고 파업 투쟁 도중 2월 14일 회사는 법적으로 직장폐쇄를 선언했고 172명을 해고했다.

 

노동조합에서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과, 한진지회장이 17호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월 6일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씨가 2003년 한진중공업 노동자였던 김주익 열사가 올라갔던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지금껏 농성중이다.

 

노동자들의 해고통보를 듣고 집회 참가도 해보고 한진중공업의 역사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잠깐 왔다 가는 입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회사 분위기를 자세하게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23일 한진중공업 정문 앞 천막 농성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한진 노동자들의 노래, 흥겹지만 씁쓸

 

 불법 정리해고 박살! 한진 중공업 노동자 노래자랑 문화제
불법 정리해고 박살! 한진 중공업 노동자 노래자랑 문화제 ⓒ 배성민

 

23일 천막에서 잠을 자기 전인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하는 집회에 참석을 했다. 그날 집회는 다른 날과는 좀 달랐다. 파업 투쟁에 지친 노동자들을 위해 17호 크레인 앞에서 '노래자랑'을 하고 있었다.

 

"진지하게 투쟁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과 같이 긴장을 내려놓고 신나게 노는 것도 투쟁입니다."

 

사회자는 파업 투쟁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노동자들도 이날따라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흥겨움 속에 묻어나는 슬픔은 가려지지 않았다.

 

'자옥아'를 부른 노동자의 얼굴에는 파업 투쟁으로 가족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노래를 부르고 나서도 파업 투쟁 빨리 승리하여 마누라를 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다른 노동자들 또한 주로 트로트를 불렀는데 트로트 특유의 애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노래자랑 도중에 17호 크레인에 올라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은 기독교 신자인데 벌써 2주째 교회를 못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투쟁이 빨리 승리하여 예배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총맞지 않은 노동자에게 보내는 편지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 중인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2003년 김주익 열사가 농성했던 그 크레인이다.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 중인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2003년 김주익 열사가 농성했던 그 크레인이다. ⓒ 배성민

17호 크레인에서 노동자들의 노래자랑을 마치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85호 크레인 앞으로 갔다. 김진숙씨는 해고노동자는 아니지만 지금 파업 투쟁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한 노동자에게 쓴 편지를 읽어 주었다.

 

"xx아, 너는 총은 맞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진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 함께 하는 네 모습이 대견스럽다. 앞으로 더 힘들고 아픈 순간들이 많겠지만 너와 함께 일하는 형님, 아저씨들과 승리할 때까지 함께 하자!"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총 맞은 사람(해고 노동자)과 총 맞지 않은 사람. 172명의 노동자들이 총을 맞았지만 나머지 총 맞지 않은 노동자들 또한 투쟁에 함께 하고 있었다. 노동조합에서는 해고자 명단을 조합원들에게는 비밀로 하여 "노동자는 하나다!" 라는 슬로건 아래 해고 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할 것을 강조했다.

 

한진중공업 정문에는 두 가지 풍경이 있다

 

 한진 중공업 본관을 막고 있는 사람들과 차량.
한진 중공업 본관을 막고 있는 사람들과 차량. ⓒ 배성민

 

85호 크레인 앞에서 간략한 집회를 마치고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노동자들은 회사 안 생활관으로 들어가고 외부 단체에서 온 사람들은 귀가하거나 정문 앞 천막 농성장에 옹기종기 모였다.

 

정문 근처에서는 두 가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한진노동자들이 불을 피우며 밤새 정문을 지키고 있는 모습과 본관 건물 앞에 자동차와 노란색 모자를 쓴 사람이 본관 문을 막고 있는 모습이다. 노동자들은 사측 혹은 경찰의 공장 투입을 감시하기 위해 정문 앞에서 밤을 새고 있었고, 사측은 노동자들이 본관에 무단 침입할까봐 밤새 용역들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리고 공장 안 화장실 근처 앞 휴게실에는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는 한진 노동자들의 얼굴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잠 못 이루었던 천막에서의 하룻밤

 

천막 농성장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전기장판 확인이었다. 날씨가 풀려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2월의 새벽에는 등이 추울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 전기장판이 마련돼 있어 따뜻한 밤이 되었다.

 

근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찻길 바로 옆 인도에 천막이 있다 보니 지나가는 차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경찰들이 기웃기웃 거리며 무전기 소리를 이곳저곳에서 울리고 다녀 소음이 심했다. 함께 농성하는 사람들은 "차 소리가 많이 시끄러울 테니 여기 사둔 귀마개를 꼭 착용하고 주무세요"라고 말하며 귀마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평소 귀마개를 착용하고 잠을 잔 적이 없기 때문에 1-2시간은 뒤척였다.

 

천막 농성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이런 고생 한 번 안 해 보고 26년을 너무 곱게 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따뜻한 방에서 편히 잘 때 많은 사람들은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기 위해 이렇게 고생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전 7시 기상해 화장실이 급해 정문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하지만 정문 앞을 지키는 경비 직원이 지금 이 시간에는 직원들 출근 시간이라 출입할 수 없다고 했다. 직장이 폐쇄 되고 더 이상 공장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한진중공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파업투쟁과 상관없이 출근을 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씁쓸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 통보를 받아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출근을 해야만 하다니.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회사가 필리핀으로 이전하게 되면 해고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들은 투쟁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출근을 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늦지 않으려고 횡단보도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화장실이 급했기 때문에 무거운 마음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버스에 탔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해결되기를 기원한다.


#한진중공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