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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 <김광수 경제연구소> 부소장이 출간한 <프리 라이더(Free Rider, 무임승차자)>(더팩트 펴냄).
 선대인 <김광수 경제연구소> 부소장이 출간한 <프리 라이더(Free Rider, 무임승차자)>(더팩트 펴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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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 부소장님, 세금과 예산에 관한 탁월한 고발서 <프리 라이더: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 편> 잘 읽었습니다. 세금은 공권력이 강제로 걷는 돈이고 예산은 주인 없는 돈입니다. 그래서 세금을 덜 내고 예산을 많이 할당 받는 것은 공돈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책 제목을 <프리 라이더>(무임승차자)라고 하신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

저는 대학에서 행정학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론 중심의 교과서나 현장감이 부족한 제 강의를 보완하는 좋은 참고서로 이 책을 학생들에게 권할 예정입니다. 다만, 조금 더 같이 생각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부소장님은 조세 정책의 기본 원칙을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조세 정책의 기본 원칙은 세 부담 주체 간 형평성 확보, 세제의 간소화, 경제 발전 촉진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형평성의 확보는 소득의 종류에 상관없이 동일한 소득액에 대해서는 비슷한 세금을 부담하도록 하고, 소득 수준에 비례해서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197쪽)

여기에서 "소득의 종류에 상관없이 동일한 소득액에 대해서는 비슷한 세금을 부담"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소장님의 의도와는 달리 독자가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동일 소득액, 동일 세금'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먼저 오해에 대해 말씀드릴까요? 양도소득세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부동산 양도소득세는 일반 소득세보다 무거워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고 선 부소장님도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우리나라는 양도소득세나 종합소득세나 세율이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즉 "동일한 소득액에 대해서는 비슷한 세금을 부담"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선 부소장님은 "자산 경제에서 발생하는 소득은 대부분 불로소득에 가깝다…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칼 같은 정부가 막대한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느슨하기 한이 없다"(26~27쪽)고 하셨고 또 "한국은 자산경제와 생산경제 부분에서 세 부담 형평성이 매우 심각하게 훼손돼 있다"(197쪽)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는 '선대인 부소장은 동일한 소득액에 대해서 비슷한 세금을 부담시키는 현행 양도소득세에 만족하겠네'라고 오해하지 않을까요?

둘째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제시하자면 "동일한 소득액에 대해서는 비슷한 세금을 부담"시키기보다는, 소득의 종류에 따라 징수의 우선순위가 달라야 한다는 것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특권 이익부터 징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지, 환경 등 '특권 소득'에 대한 세금부터 징수해야

소득에 영향을 주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노력, 능력, 운이 있고 그밖에 특권(또는 차별)도 원인이 됩니다. 각 원인에 의한 소득의 정당성에 대해 공개 토론을 벌인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력해서 얻은 소득이 정당하다는 데는 거의 만장일치로 합의할 것입니다. 능력에는 본인의 노력과 무관한 부분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능력에 의한 소득은 대체로 정당하다고 할 것입니다. 순전한 운은 능력보다 덜 떳떳한 원인이라는 점에는 합의하겠지만, 운에 의한 소득을 세금으로 징수하자는 데는 반대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정부 개입을 싫어하는 사람, 정부에게 운의 영향을 측정하는 권한을 주면 권한 남용 등 부작용이 생길 것으로 염려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권에서 생기는 소득을 정당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속마음으로는 특권의 존속을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간이 평등하게 존엄하다면 원론적으로 특권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근대 국가에서는 봉건시대의 신분제도가 철폐된 것이지요. 그러나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특권을 설정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쉬운 예로 토지사유제를 들 수 있습니다. 아무도 생산하지 않는 토지 등 자연은 당연히 국민의 공동자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특정인에게 소유권 등 우선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또 이를 불가피한 제도로 (아니면 적어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제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불가피한 특권은 많이 있습니다. 천연자원, 환경 등 자연도 토지와 다름없지만 특정인에게 채취권, 오염권 등의 특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정책적 이유로 특정 기업에게 부여하는 독과점권이나 특혜도 특권의 예입니다.

특권은 불로소득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특권의 취득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동시에 특권의 이익을 환수해야만 특권과 평등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특권 이익부터 징수하고 그걸로 부족하면 운에 의한 소득을 징수하고 그걸로 부족하면 능력 중 본인의 노력과 무관한 부분에 의한 소득을 징수하고…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토지가 아무런 조건 없이 사유화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사회경제 변화나 정부 조치 등 토지소유자의 노력이나 기여와는 무관하게 오른 땅값까지 소유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배출권거래제라는 이름으로 환경의 사유화가 시작되고 있는데도 그 불공정성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특권 이익에 대해서는 소득으로 실현된 가치만이 아니라 실현될 수 있는 잠재적 가치도 환수해야 합니다. 소득의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특권은 그 자체로 다른 사람의 평등한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특권을 차지하면서 행사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 알박기와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특권 이익 중에서도 최우선으로 환수해야 할 대상은 토지소유 이익이라고 봅니다. 토지가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크고 또 우리 사회가 토지 문제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겪어 왔기 때문입니다. 토지는 우리나라 양극화의 중요 원인이고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도 부동산에서 비롯된 것 아닙니까?

토지소유 이익을 환수하는 최적의 수단은 토지보유세입니다. 토지보유세는 부소장님의 세 가지 기본 원칙 중 형평성은 말할 것도 없고, "세제의 간소화, 경제 발전 촉진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원칙에도 다른 어느 세금보다 잘 맞습니다. 이 점은 부소장님도 물론 잘 아실 것이고 또 모든 관련 교과서에서 인정하는 사실이므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저 같은 책상물림에 비해 여론 호소력이 훨씬 강한 선대인 부소장님께 부탁드립니다. '동일한 소득액에 동일한 세금'이 문제 있다는 제 지적에 동의하신다면, 앞으로는 '세금도 순서가 있다. 특권 이익부터 환수해야 한다'고 해주십시오.


태그:#선대인, #세금, #동일 소득 동일 세금, #세금 순서, #토지보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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